ADVERTISEMENT

반군에 피살된 예멘의 살레 … 사우디·이란 대리전 희생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알리 압둘라 살레

알리 압둘라 살레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예멘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사진) 전 대통령이 한때 손을 잡았던 후티 반군에 살해당했다. 쫓겨난 독재자였지만 최근 휴전 협상을 도모했던 그가 사라지면서 내전과 기근, 콜레라로 세계 최악 수준의 인도주의 위기를 맞고 있는 예멘의 미래가 더 어두워졌다.

사우디와 휴전협상 모색 중 당해 #내전 중 8600명 죽고 2000만 명 기근 #BBC “예멘 위기 상황 악화 가능성”

후티 반군은 지난 4일(현지시간) 자신들이 통제하는 알마시라TV 등을 통해 “반역자의 우두머리가 죽었다”고 밝혔다. 반군 측은 살레 전 대통령이 차량으로 예멘 수도 사나를 빠져나가려 하자 로켓포를 쏜 뒤 총격을 가해 살해했다.

살레 전 대통령은 2011년 중동권 ‘아랍의 봄’ 여파로 예멘에서 반정부 운동이 거세게 일자 2012년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1978년 북예멘 대통령에 오른 이후 33년간 독재자로 군림한 그는 스스로 “뱀이 머리 위에서 춤을 췄다”고 말할 정도로 권력 유지에 능했던 모략가다. 90년 남예멘과 통일을 이뤄냈지만 2004년 후티족 지도자를 암살토록 하는 등 내전의 뿌리가 된 후티족 탄압을 주도했다.

살레 전 대통령이 죽음을 맞은 과정에는 시아파 이란과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리전이 된 예멘 내전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2012년 살레 정권이 무너진 뒤 예멘 정국은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현 대통령의 집권으로 정상화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높은 실업률과 정부의 연료비 인상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 힘입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2014년 하디 정부를 쫓아내고 수도 사나를 점령했다. 살레는 이 과정에서 후티 반군과 연대해 하디 정권에 반기를 들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예멘 내전은 2015년 사우디가 군사 개입에 나서면서 국제전 양상으로 본격화했다. 시아파 이란의 영향력이 자국 뒷마당인 예멘에서 커질 것을 우려한 사우디가 아랍권 수니파 국가들과 동맹군을 결성해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내전이 교착 상태에 빠진 지난해 말부터 후티 반군과 살레 사이에는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 2일 살레는 사우디 동맹군이 예멘 봉쇄를 풀고 공습을 중단하면 휴전 중재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후티 반군이 그를 반역자라고 비난하며 공격에 나섰다.

이 사이 예멘은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로 치달았다. 유엔에 따르면 예멘 인구 2800만 명의 4분의 3이 물과 식량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예멘에선 8600여 명이 폭격과 교전 등으로 숨졌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은 사우디에 무기 판매로 이익을 챙기면서 예멘 강공책을 주도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편에 서있는 모양새다. BBC는 “살레의 뛰어난 협상력이 없이는 예멘 내전과 인도적 위기 양상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예멘 내전 일지

● 2012년 2월 ‘아랍의 봄’으로 독재자 살레 대통령 사임.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의 과도정부 출범
● 2014년 8월 북부 시아파 후티 반군, 연료비 인상 반대시위 주도하고 수도 사나 공격
● 2015년 1월 후티 반군이 대통령궁 등 장악하자 하디 대통령은 남부 아덴으로 피신해 수도로 선포
● 2015년 3월 사우디 주도 아랍동맹군, 후티 반군 대상 군사 개입
● 2017년 11월 후티 반군, 사우디 공항에 미사일 발사. 사우디, 예멘 해상 봉쇄
● 2017년 12월 3일 수도 사나 교전 격화. 살레 전 대통령, 중재 제안
● 2017년 12월 4일 후티 반군 살레 전 대통령 살해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