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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밤' 장항준 감독이 강하늘을 선택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기억의 밤' 장항준 감독 인터뷰

‘기억의 밤’ 장항준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기억의 밤’ 장항준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매거진M] 충무로의 이야기꾼 장항준(48) 감독이 돌아왔다. 그가 9년 만에 연출한 ‘기억의 밤’(11월 29일 개봉)은 기억을 잃고 변해버린 형 유석(김무열)과 그런 형의 흔적을 쫓다 자신의 기억조차 의심하는 동생 진석(강하늘)의 엇갈린 기억 속 진실을 그린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영화다. ‘가출했다 돌아온 우리 형이, 내가 알던 형이 아니라면?’이란 상상에서 출발한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기존 스릴러영화와 다른 성격의 장르영화 매력을 선보인다. 인터뷰 전, 관객의 반응을 살피던 장항준 감독은 “오랜만에 영화를 개봉해서 설레고, 기대가 된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투의 매너’(2008) 이후 9년 만에 영화 연출이다.
“항상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설레고, 기대가 된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어서 다음 작품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많은 연출 제의가 들어왔을 거 같은데.
“대부분 코미디영화여서 고사를 했다. 예전엔 코미디가 좋았는데, 이젠 어렵게 느껴지고 흥미를 잘 못 느끼겠더라. 그보단 스릴러가 재미있다. 드라마 ‘싸인’(2011, SBS)의 각본과 연출을 맡기 전부터 스릴러에 관심이 있었는데, 해보니까 긴장감을 조성하고, 몰아가고 휘몰아치는 매력이 상당하더라. 그래서 무조건 스릴러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몇 년 전부터 아예 모든 아이템을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만 쏟아부었을 정도다.”

-영화 연출을 하지 않았던 9년 동안 드라마 연출부터, 극본, 영화 각색, 각종 드라마와 영화 카메오 출연, 예능까지 다양한 작업을 했다. 그래서 영화 연출에 대한 조급함은 조금 덜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솔직히 많이 지쳐있었다.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는 경우가 몇 번 있었거든. 내가 하고 싶은 건 영화인데 그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게 힘들더라. 그런 와중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게 됐고, 돈을 많이 벌었다(웃음). 지금은 하고 싶었던 영화를 완성해서 개봉을 앞뒀다는 게 최고로 행복하다.”

‘기억의 밤’

‘기억의 밤’

-영화의 시작이 2014년 우연히 ‘만약에 우리 형이 내가 알던 형이 아니라면?’ 이란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술자리에서 누가 ‘자기 사촌 형이 집을 나갔다가 한달 만에 돌아왔는데, 오랜만에 만났더니 서먹하고 낯설었다. 사람이 이상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 내가 ‘그거 그 형 아니야’라고 했더니 사람들이 다 웃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만약에 사촌 형이 아니라 같은 방을 쓰는 친형인데, 가출한 게 아니고 납치를 당했다 돌아왔다. 그런데 형은 무슨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한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생활하는데 이상하게 우리 형이 아닌 거 같다’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다 소름이 돋는다고 하더라. 가장 익숙하고 친숙한 대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공포심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장르적으로도 흥미로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반전이 있는 영화다. 반전 후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말이 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왜 이걸 해야 하는가, 무엇을 담을 것인가’가 중요했다. 창작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다. ‘왜 2017년 겨울에 이 영화가 필요한가’ ‘왜 나여야 하는가’를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이 확고해지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건 어렵지 않다. 오히려 재미있다. ‘기억의 밤’에선 최면이나 진석이 먹는 약 등 논리, 아귀를 맞추기 위해서 넣은 요소가 많았다. 그중에 무엇을 뺄 것인가, 무엇을 축약하고, 생략하고, 집요하게 보여줄 건가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게 훨씬 힘들었다.”

-배경을 1997년도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 초반에 단란한 가족이 나오지만 가짜다. 영화 후반에 두 가족이 등장하지만 곧 사라진다. 이 영화엔 가족이 없다. 상실된 가족, 비극인 거다. 가족 상실의 비극이 시작됐던 시기를 따져보니, 중산층이 무너진 1997년 IMF 사태라고 생각했다.”

‘기억의 밤’

‘기억의 밤’

-극 초반부터 진석의 내레이션이 많이 나온다. 장황하게 설명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믿게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진석의 내레이션은 과거 회상이 아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이다. 그래서 장면으로 보여줄 수가 없다. 관객은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객관성을 확보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석의 내레이션을 들은 관객은 그 상황을 100% 믿을 수밖에 없다. 생각해봐라. 주인공이 내레이션으로 거짓말을 하는 영화는 아마 없을 거다. ‘나는 슬펐다’ ‘그는 왜 그랬을까’ ‘슬픔에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 등 주인공이 이야기하는 건 진실이다. 우리 영화는 그걸 역이용한 거다. 본 적은 없지만 진석의 내레이션으로 관객은 ‘자상하고, 수재인 유석이 사고로 장애가 생겼다’고 믿는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관객은 유석을 순간 의심했을 거다.”

-관객을 어디까지 혼란스럽게 만들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을 거 같다.
“영화를 보면 유석이 나쁜 놈 같은데, 아닌 거 같기도 하다. 혹은 진석이 느끼는 불안감이 약을 잘 못 먹어서인지, 아니면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건지 헷갈린다. 이렇게 혼동시킬 수 있고, 호기심을 갖을 만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게 제일 중요했고, 고민이었다.”

-관객을 모두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한순간에 공포영화가 된다. 영화 톤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이것도 혼동시키기 위한 장치였나. 
“작은 방을 강조하고, 공포스럽게 만든 건, 가족들을 의심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방에 신경을 집중시켜서 논점을 흐리는 방법이지. ‘저 방에 무엇이 있나’를 집중하게 만들면 아빠와 엄마가 수상해 보이지 않거든. 또한 작은 방은 진석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간이자, 괴롭고 공포스러워서 잊고 싶은 장소다. 무의식이긴 하지만 자신이 가장 두렵고 무서워하는 존재가 형체가 돼 나타나는 거라고 설정했다.”

‘기억의 밤’

‘기억의 밤’

‘기억의 밤’

‘기억의 밤’

-진석은 왜 강하늘이어야 했나.
“‘동주’(2016, 이준익 감독)를 보고 정말 연기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꼭 함께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마침 ‘기억의 밤’ 진석과 강하늘의 나잇대가 비슷해서 바로 시나리오를 전달했다. 무조건 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본인에게 잘 맞는 역할이라는 걸 바로 알아봤던 거 같다. 함께 일해보니, 역시 똑똑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 재능을 타고 났더라. 얼마 전에 연락 와서 군 제대 후 복귀작을 함께 하자고 이야기했다. 열심히 준비해야지(웃음).”

-김무열의 야누스적 매력도 돋보이더라. 
“사실 나에게 김무열은 독보적인 이미지가 없는 배우였다. 그래서 신비감이 있었다. ‘은교’(2012, 정지우 감독)에서 모범생 제자의 첫인상과 뒤에 나오는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나. 웃고 있어도 완전히 웃는 것 같지 않은, 착해 보여도 뭔가 감추고 있는 거 같은 느낌이 있는 배우라서 유석을 잘 표현해줄 거라고 믿었다. 촬영하면서 김무열은 저평가된 배우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김무열이란 배우의 능력과 매력을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모든 캐릭터가 초반과 후반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배우들이 연기하기 어려워했을 거 같은데.
“촬영 전 강하늘과 김무열 씨를 각각 내 작업실로 불러서 시나리오를 보며 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장면에서 무슨 감정이 드니, 나는 이렇게 찍고 싶은데 어떠니, 이럴 때 어떤 말투를 쓰니’ 등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캐릭터를 이해시키고, 모자란 부분을 수정했다. 처음으로 해본 방식인데, 감독과 배우가 그 신에 대한 목표가 같아진다는 점에서 굉장히 만족했다. 문성근, 나영희 선배님과는 그런 시간을 갖진 못했지만,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그때 내가 하고 가장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았으니까.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잘 안 되더라도 끝까지 했다. 하는 것마다 되는 게 아니라 될 때까지 했던 거다. 물론 운도 좋았다. 궁핍과 결핍에 둔감한 사람이라서 가능했던 거 같기도 하고.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믿는다. 차기작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 아이템 단계인 게 하나 있고, 예전에 써놓은 시나리오도 있다. 군대 내무반을 배경으로 하는 스릴러를 해볼까 생각 중이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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