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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러슨의 해상차단 PSI와 다르다

중앙일보

입력 2017.12.05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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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1팀장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해상차단(Maritime Interdiction)’ 구상은 세계적인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보다 1991~2003년 이라크 원유 수출 차단과 닮았다. 1차 걸프전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이행을 위해 미국이 주도한 16개 다국적 해군은 이라크의 60㎞도 되지 않는 짧은 해안선부터 시작해 좁은 페르시아만 끝 호르무즈 해협까지 1000㎞를 차단했다. 12년간 다국적군은 3000회 이상 이라크를 오가는 선박의 승선·검색 작전을 벌였다. 틸러슨 장관의 제안도 한반도 동·서해, 남해상에서 북한 화물선 검색을 벌이겠다는 게 기본적인 목적이다.

하지만 이라크 해상차단과 기본적인 목적과 활동 내용이 유사해도 대북 해상차단 작전이 훨씬 힘들다. 미 해군연구소(USNI)에 따르면 이라크는 제재 대상인 원유를 유조선으로 이동시킬 수밖에 없었지만 북한은 바닷길 외에도 중국과 러시아로 육로 교통이 열려 있다. 또 북한은 직선 기준으로 동·서해 해안선만 1000㎞가 넘고 수십 개 항만과 수로를 갖고 있다. 이를 24시간 감시하려면 필요한 함정 및 감시자산의 규모는 페르시아만보다 훨씬 커야 한다.

또 북한과 전략적 관계인 중국·러시아가 각각 서해와 동해에서 북한을 도울 경우 제재를 회피할 여지는 훨씬 넓어진다. 여름철엔 동해·오호츠크해를 거쳐 러시아 북극항로를 통해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갈 수 있다. 실제 지난 8월엔 북한 선박이 쇄빙선 없이 북극항로를 통과해 노르웨이까지 화물을 운송한 적도 있다고 한다.

대북 해상차단의 국제법적 근거는 지난 9월 15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75호다. 결의안은 제재 위반의 증거가 있고, 선적국의 동의가 있어야 북한을 오가는 화물선 검색을 가능하도록 하는 대신 검색을 거부할 경우 무력 사용은 허용하지 않았다. 중국·러시아가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틸러슨 장관은 이달 25일 유엔 안보리 전체회의에 참석해 강제 검색권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설득에 나선다.

문제는 틸러슨 장관이 유엔과 별도로 캐나다 등 한국전 참전 유엔사령부 16개국과 한국·일본의 동참으로 해상차단을 추진하면서 한국 정부를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했다는 점이다. 북한이 “PSI 참여는 대북 선전포고”라고 위협하면서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직후 PSI 가입까지 6년 걸렸던 것 같은 남남 갈등이 재연될 판이다. 지금은 동맹국을 상대로 시간을 끌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매일 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건 엄살이 아니다. 해상차단은 제재 국면의 마지막일 수 있다.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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