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감형한 ‘주취감경’ … 폐지론 확산 속 법조계 신중론도

중앙일보

입력 2017.12.0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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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조두순의 만기 출소시기가 3년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국민청원운동이 2라운드를 맞고 있다. 지난 9월 시작된 ‘재심으로 조두순의 출소를 막아 달라’는 청원에 동참한 사람이 6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달 4일 시작된 ‘주취(酒醉) 감경 폐지’ 청원에 한 달 동안 참여한 사람이 20만 명을 넘었다. 이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상 재심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청원이 ‘제2의 조두순 재판’을 막자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성범죄에 대해선 인정 안 되는 추세
아동학대·살인 등엔 감경 요인으로
19대 국회부터 법 개정안 계속 발의
국민청원 “감경 폐지” 20만 돌파
법조계선 “폐지 땐 형벌 체계 혼란”

2009년 검찰은 조두순에게 강간상해 혐의로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징역 12년형을 확정했다. 범행 당시 만취 상태였다는 조두순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심신미약으로 인정되면 판사는 반드시 형량을 감경해야 하고(형법 10조) ‘술에 취한 상태’는 어떤 범죄에서든 대표적인 심신미약 사유로 인정됐다.

진행 중인 국민청원은 모든 범죄에서 ‘주취 감경’을 폐지해 또 다른 조두순이 법 감정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다. 범행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술을 먹으면 감형된다’는 인식이 오히려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2009년 조두순의 재판과 2012년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오원춘 사건에서 주취 감경 논란이 일면서 국회는 2013년 6월 성폭력특례법을 개정했다. 성범죄에 관한 한 판사가 재량에 따라 음주나 약물로 인한 심신미약 주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2014년 1월 대전고법 청주 형사1부는 변경된 규정을 근거로 만취 상태에서 미성년인 조카를 강간·살해한 오모씨의 심신미약 주장을 배척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법원은 성범죄자의 “술에 취해서…”라는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추세다.

그러나 성폭력을 동반하지 않는 아동학대·가정폭력 및 살인·강도 등의 범죄에선 여전히 ‘술에 취한 상태’가 감경요인으로 작동한다.

지난해 3월 창원지법 전주지원은 만취 상태에서 주택에 침입해 잠자던 60대 남성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강모씨에 대해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감경해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지난 7월 서울남부지법은 소주 5병을 나눠 먹은 동료 노숙인을 벽돌로 내리쳐 숨지게 한 박모(51)씨에게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살인 후 노숙인 B씨의 방에서 잠드는 등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게 판결문에 제시된 이유다.

이 같은 판결에 국민의 불만이 커지자 19대 국회 때부터 아예 ‘음주’를 심신미약 인정 사유에서 배제하자는 형법 개정안부터 아동학대특례법이나 가정폭력특례법에 주취 감경을 배제할 수 있는 근거를 두자는 법 개정안 등이 계속 발의됐다.

그러나 법조계의 반응은 신중하다. ‘책임이 없으면 형벌이 없다’는 책임주의가 범죄와 형벌을 다루는 형사법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즉 사리 분별 능력을 상실해 어떤 법적 책임을 질 거라고 생각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책임 능력이 제한된다고 보고 법적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하는 게 형벌 체계의 뼈대인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기 의지대로 술을 마셨어도 범죄 의도 없이 결과를 발생시킨 경우는 범죄를 예견하면서 술을 마신 사람과는 달리 봐야 한다는 게 책임 원칙의 의미”라며 “주취 감경을 폐지하는 것은 형벌 체계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 김진숙 변호사는 “조두순은 범죄를 예견하면서 술을 마셨다고 볼 여지가 있어 논란이 됐지만 이 때문에 형벌의 대원칙을 손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알코올 의존증이 심각한 범죄자들은 형벌보다는 치료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범죄를 예방하는 길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장혁·김선미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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