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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모사드 국장 평균 5년6개월 재임 … 정권 관계없이 자리 지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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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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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상>

‘침묵의 구원자’ 이스라엘 정보기관 수장 

국가정보원이 숨 돌릴 틈 없이 펀치를 맞고 있다. 예산 삭감에 조직과 역할 축소, 명칭 변경까지 요구받는다. 전직 원장들이 줄줄이 구속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여당은 국정원이 이전 정권에서 정치 개입에 나섰다고 비난한다. 반면 야당은 정보기관 본연의 정보 능력 저하와 활동 침체를 우려한다. 서로 할 말이 많다.

국민이 정권보다 더 믿고 지지 #접근 힘든 각국 은밀한 정보 보유 #미·러 등 강대국도 함부로 못해 #어떠한 도덕보다 안보·국익 우선 #철저한 정치 중립, 해외 작전만 수행 #국제적 비난 땐 국가 차원 적극 방어 #대부분 군에서 전공 쌓은 ‘무골’ #실로아흐 초대 국장 독립전쟁 영웅 #3대 아미트 ‘6일전쟁’ 승리 기여 #5대 호피는 엔테베 작전 주도

이런 상황에서 바람직한 정보기관과 그 수장의 자격·업무, 자세를 해외 사례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 정보기관은 서로 장단점이 있지만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벤치마킹 대상이다. 모사드는 대부분의 국가 정보기관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국민과 국가를 위해 묵묵히 할 일을 할 뿐이다. 피 냄새를 마다치 않고 은밀하고 살벌한 정보와 공작의 세계를 지켜온 모사드 국장은 정권 교체와 별 상관없이 임무를 수행해 왔다. 국가의 사활이 걸린 정보 수집과 정세 판단으로 국가 안보를 지킴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선출된 권력인 정치권조차 모사드를 비롯한 정보기관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한정된 기간 권력을 위임받은 정권보다 국가와 운명을 함께하는 정보기관을 국민이 더 믿고 지지하기 때문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요원들 덕분에 서방의 접근이 극히 어려운 이란·시리아 등에 침투해 얻은 고급 정보를 풍부하게 보유해 국제적으로도 경외의 대상이다. 미국이나 러시아가 이스라엘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대 모사드 국장

역대 모사드 국장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공작기관이다. 국경 밖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모든 정보 수집과 암살·납치, 역정보 흘리기 등 공작활동을 담당한다. 국내 보안국인 신베트, 군정보국인 아만과 함께 국가 정보라는 ‘음지’를 책임진다. 국내와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골란고원에서 벌이는 모든 임무는 신베트의 관할이다. 군은 별도로 활동한다.

모사드는 1947년부터 활동해 왔지만 공식 창설은 49년이다. 이후 68년간 12명의 국장이 정보와 공작이라는 양날의 칼을 들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관’을 이끌어 왔다. 국민 안전과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은 뭐든지 수행하고 절대 입을 열지 않아 ‘침묵의 구원자’로 통한다.

이스라엘에선 좌우할 것 없이 모든 정권이 모사드 국장 자리를 안정적으로 보장해 왔다. 모사드가 해외에서 벌인 ‘잔혹하고 비도덕적인 사건’으로 국제적으로 비난받거나 국제법적 사법처리 가능성이 생기면 오히려 정치권이 나서 방어하고 보호해 왔다. 어떠한 도덕이나 국제법도 국민의 안위나 국익보다 위에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8년간 12명의 국장 중 2년간 재임한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4~10년씩 자리를 지켰다. 평균 5년6개월 재임했다. 모사드 국장은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용기, 정보·작전 능력과 경험, 그리고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사지에 뛰어들게 만드는 리더십이 충만한 인물이 맡아 왔다. 49년 취임한 초대 레우벤 실로아흐 국장부터 89년 물러난 6대 나훔 아드모니 국장까지는 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참전용사다. ‘이스라엘-아랍전쟁’ ‘제1차 중동전쟁’으로도 불리는 전쟁이다. 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이를 분쇄하려고 인근 이집트·시리아·요르단·레바논은 물론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수단·예멘 등 이슬람권 대부분이 공격에 나섰다. 신생국 이스라엘의 국민은 자국을 포위한 아랍·이슬람권 국가들과 온몸으로 맞서며 독립을 지켜냈다.

이뿐만 아니다. 모사드 수장 대부분은 군에서 상당한 전공을 쌓은 ‘무골’이다. 역대 국장 12명 중 4명이 군 고위 장성 출신이다. 6대 아드모니 국장은 군 정보기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모사드 부국장을 거쳐 국장을 맡았다. 5대 이츠하크 호피 국장은 73년 소련제 최신 무기를 갖추고 기습한 아랍권에 밀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던 ‘욤키푸르 전쟁’ 당시 북부군 사령관으로서 전세 역전에 기여한 전쟁영웅이다. 전쟁 직후 국장을 맡아 조직과 임무를 대대적으로 개혁했다. 모사드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정보 당국이 연이은 승리에 취해 아랍권을 얕잡아 보는 바람에 기습 징후를 조기 경보하지 못한 ‘정보 실패’로 이어졌다는 처절한 반성 때문이었다. 정보 실패로 군이 적군에 유린당하고 장병이 희생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한 호피가 국장을 맡음으로써 개혁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었다는 평가다.

역대 모사드 국장은 성과로 말한다. 대부분 재임 중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초대 실로아흐 국장은 모사드가 창설되기도 전인 이스라엘 독립전쟁 당시 아랍권의 침공계획을 입수해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에게 전달했다. 정보의 중요성을 절감한 벤구리온은 모사드 창설을 결심했다. 2대 이세르 하렐 국장은 모사드란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기획자’ 아돌프 아이히만을 60년 도피지인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로 압송했다.

역대 이스라엘 총리

역대 이스라엘 총리

3대 메이르 아미트는 ‘전설의 스파이’ 엘리 코헨을 시리아의 고위층 깊숙이 침투시켜 ‘6일전쟁’ 당시 적의 일거수일투족을 손금 보듯 하며 정보전과 전쟁에서 완승하는 데 기여했다. 4대 즈비 자미르는 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의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학살한 데 대한 보복인 ‘신의 분노’ 작전을 기획했다. 영화 ‘뮌헨’으로 유명한 이 작전은 도덕적인 비난을 받았지만 이스라엘의 의지와 집념, 모사드의 작전 능력을 잘 보여줬다.

5대 호피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에 납치돼 우간다에 기착해 있던 여객기 승객을 구출한 ‘엔테베 작전’을 주도했다. 이라크가 핵시설을 가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 군이 이를 폭격해 파괴한 ‘오페라 작전’에도 기여했다. 이라크 폭격이라는 정치적 결단읕 정치권이 내렸지만 이를 차질 없이 하기 위한 정확한 정보 수집과 작전 지원은 모사드의 작품일 수밖에 없다. 뮌헨 학살 기획자로 ‘검은 9월단의 황태자’로 알려진 알리 하산 살라메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제거한 작전도 기획했다. 모사드는 이 모든 작전 개입을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으로 대응할 뿐이다. 모든 작전은 비밀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모사드가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내부의 의지와 정치권의 정보기관 명예 존중, 그리고 국민의 지지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권은 물론 ‘신의 분노’도 두렵지 않았다. 두려운 건 국가 안보가 위태로운 것뿐이었다.

[S BOX] 이스라엘판 델타포스 ‘사예렛 메트칼’ 출신 국장 3명

역대 모사드 국장들의 경력 중 특이한 것은 이스라엘군 엘리트 특수부대인 ‘사예렛 메트칼’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7대 샤브타이 샤비트, 8대 다니 야톰, 10대 메이르 다간, 11대 타미르 파르도가 이 부대 출신이다. 사예렛 메트칼은 한마디로 목숨을 내놓고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전 부대다. 별명이 ‘이스라엘판 델타포스’로 적 후방 깊숙이 침투해 수색정찰을 수행한다. 전선의 현장 정보를 입수하고 국경 너머에서 인질을 구출하거나 요인을 저격하는 임무를 맡는다. 목숨이 오가는 ‘불가능한 작전(Mission Impossible)’을 숱하게 성공시켜 조국을 더욱 안전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이와 함께 작전 내용은 일절 비밀에 부친다는 점에서 모사드와 성격이 통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엔테베 작전의 영웅으로 현장에서 전사한 요나단 네타냐후 형제, 에후드 바라크 전 총리 등도 이 부대에서 근무했다. 파르도 국장은 군 복무 시절 엔테베 작전에 직접 참여했다. 모사드 국장 중에는 군 장성 출신도 4명에 이른다. 군 장성 출신이 아닌 모사드 국장은 모두 현장요원 출신이다. 행정공무원 출신이나 특정 정당 지지자나 조력자가 정치권과 코드가 통한다고 해서 이 자리를 맡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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