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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기생문화, 식민지 조선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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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화중선을 찾아서

화중선을 찾아서

화중선을 찾아서
김진송 지음, 푸른역사

1923년 월간 ‘시사평론’에 도발적 글이 실렸다. 기생 화중선의 ‘기생생활이 신성하다면 신성합니다’였다. 위선과 패악의 남성들, 특히 지식인이라 불리는 ‘먹물’을 공격했다. 명문가 무남독녀 출신을 내세운 화중선은 남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남성을 적으로 설정했고, 그들을 사로잡는 ‘복수전사’를 자처했다.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꽤 급진적이다.

화중선은 누구일까. 왜 그런 독기 어린 글을 썼을까. 1920~30년대 풍속사를 되돌아본 이 책의 출발점이다. 화류계를 대변하는 기생을 가운데에 놓고, 밀려드는 서구문화와 강압적인 일제통치 사이에서 휘청대던 조선의 뒷골목에 확대경을 들이댄다. 성문화로 보는 식민지 조선의 그늘이다. 하지만 오해 마시길! 흥미 본위의 에피소드 모음이 아니다. 당대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에 따른 남녀상열지사의 치사한 얼굴을 훑는다.

기생은 해어화(解語花)라 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꽃이다. 하지만 이는 특권층이 덧씌운 이미지에 불과했다. 기생은 예나 지금이나 남성중심사회의 주변부였다. 이 책의 표현을 빌리면 ‘식민지 안의 또 다른 식민지’였다. 돈푼이나 있고, 책 좀 읽었다는 식자(識者)들은 겉으로는 기생들과의 하룻밤을 꿈꾸고 또 이를 과시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들을 무시하고, 심지어 쓰레기처럼 다뤘다. 한마디로 “황진이 같은 기생은 없었다”.

목수이자 글쟁이인 저자는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1999)로 근대문화연구의 물꼬를 튼 적이 있다. 이번에는 화중선의 정체를 추적하는 소설 형식을 빌렸다. 그래도 본령은 꼼꼼한 문헌 검토다. 부제 ‘기생과 룸펜의 사회사’처럼 잡지·문학 등에 나타난 기생을 조목조목 살폈다. 30년대 여급(女給)문화, 대중문화의 발흥도 짚어본다. 그 자취는 지금 여기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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