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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피 흘릴 때 쓰는 약방문은 이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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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야흐로 동의보감 권1을 마치고, 권2에 들어간다. 목차를 쭉 따라가면서 동의보감 본래의 의미가  현대적으로 어떻게 해석되는지, 인체에서 적용은 어떤 식으로 할지 계속 알아보려 한다. 많은 분이 글을 읽고 고맙다며 보내는 응원의 말씀에 감사드린다. 간혹 한의학 고유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가 있긴 하지만.

박용환의 동의보감 건강스쿨(11) #피와 관련된 치료의 근간을 이루는 사물탕 #숙지황·백작약·천궁·당귀를 조합해 만들어

권2의 첫 장인 혈 문에서도 그런 것이 발견된다. 혈은 결국 피로 드러나는데, 생리적인 해석은 양의학의 생물학적 논리와는 다르게 전개한다. 양의학에서는 조혈모세포라는 것이 골수의 대부분을 자리 잡고 있으며, 여기서 혈장·혈구가 분화돼 나와 피를 이룬다고 한다. 이런 세포학적 설명과 달리 한의학의 해석은 지극히 관념적인 부분이 있다.

원반 모양의 적혈구가 이동하고 있는 혈관 내부의 상상도. [중앙포토]

원반 모양의 적혈구가 이동하고 있는 혈관 내부의 상상도. [중앙포토]

혈과 기는 짝

한의학에서 말하는 혈이란 음식물의 정기가 ‘영(榮)’이 된 후 기와 짝이 돼 온몸으로 흘러간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열의 현상이 혈을 상하게 해 소위 어혈을 만들어 낸다. 이로 인한 병리적인 형태가 출혈로 나타나 코피, 잇몸출혈, 소변출혈, 변혈 등 여러 형태로 드러난다. 병리적인 현상이 같다고 해도 생리적인 해석이 다르니 수십 년 동안 양방 생물학적인 이론만 익힌 분들이 처음에는 이해 못 할 부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동양학을 공부하다 보니 음양, 기혈, 표리 같은 용어가 너무나 익숙해 이런 해석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어릴 때는 생물학을 접하고 대학 때 양의학의 생리, 병리학의 기초는 익히니 두 가지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두 가지의 이론이 처음에는 모순돼 보이지만 차차 사람의 몸을 치료하는 귀결점에서는 맞아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수 천 년 동안 효능이 입증되고 현대에서도 훌륭히 사람들의 몸을 치료하는 의학인 만큼 설명하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귀착지가 같은 것은 당연하다. 동의보감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한의학을 최대한 쉽게 전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처음에는 쉽지 않더라도 차근차근 읽으면서 받아들이다 보면 언젠가는 ‘아, 이런 것이 한의학이구나’ ‘이런 식으로 인체를 바라보고 치료하는구나’ 는 깨달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의학에서 혈을 설명하려면 필연적으로 지난번 살펴봤던 기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 혈은 영양분이고, 기는 통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언가를 보내고 싶을 때 도로가 있어야 한다. 도로를 닦는 작업은 기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도로 위의 화물은 영양분이다. 이 화물이 각 장기나 기관에 도착토록 하는 것이 혈이다. 혈액순환이 잘 된다는 것은 영양분 수송이 원활하다는 뜻이다.

심장에서 나온 혈관은 전신을 돌며 영양분을 공급한다. 그 중 한 군데가 막히면 혈액의 흐름이 끊겨 사망하거나 기능이 크게 저하된다. [중앙포토]

심장에서 나온 혈관은 전신을 돌며 영양분을 공급한다. 그 중 한 군데가 막히면 혈액의 흐름이 끊겨 사망하거나 기능이 크게 저하된다. [중앙포토]

기가 가는 곳에 혈이 있고, 혈이 있는 곳에 기가 통한다는 말은 이런 모습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기와 혈의 상호작용이 원활하면 몸이 편안하게 된다. 몸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기 따로 혈 따로 놀거나, 기와 혈이 상호작용을 못 할 때다. 이때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통칭해 ‘어혈(瘀血)’이라고 한다.

한의학 치료의 근간은 기와 혈의 조화 

민간에선 어혈이라고 하면 죽은 피를 말한다. 타박상에 의한 피멍, 혹은 산후에 있는 오로 등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민간의 처치와 한의학을 혼동해선 안 되지만, 이것은 아주 좁은 의미의 어혈이다. 어혈은 혈과 관련된 것은 물론 혈과 기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문제를 모두 포함한다. 혈액 자체가 혼탁한 것도 어혈이고, 순환이 안 되는 것도, 기능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도 어혈이다. 건강검진 때 나오는 고지혈증, 간 수치인 AST와 ALT 등이 어혈이다. 신장 기능이 떨어진 단백뇨, 크레아티닌 문제도 어혈이다.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린는 부정맥이라는 것도 어혈이다.

이러다 보니, 한의사의 진단에는 유독 어혈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민간에 설명하려고 어혈이라는 것이지 한의학의 진단용어는 아니다. 한의학 진단 용어를 제대로 쓰자면 양의학에서 라틴어로 적듯이 해야 하므로 더 소통이 안 된다. 기와 혈의 아주 기본적인 개념도 전달이 힘든데, 기혈휴손·혈울·혈허생풍·영혈허손·비불통혈 같은 단어는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옛날에는 겉으로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이 매우 큰 병이었다. 그러니 혈문에는 출혈에 관한 치료가 유독 많다. 현대인들은 출혈문제가 적고 내적인 순환문제로 인한 어혈 증상이 많다. 이 부분은 다른 곳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으니 혈문에서는 혈의 기본적인 뜻과 어혈의 개념, 그리고 출혈문제와 유명한 처방 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가자.

스트레스. [중앙포토]

스트레스. [중앙포토]

한의학에서 출혈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몸에서 일어나는 열의 문제라고 본다. 열은 기의 다른 표현이다. 마치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듯 기가 너무 많이 움직이게 되면 열의 형태로 표현된다. 화기와 열기가 몸에 많아지면 혈관 벽을 상하게 해 출혈이라는 형태로 나오게 된다.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도 열을 만들어내는 주요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치료할 때 찬 성질의 약을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약간 서늘한 약재에 더운 기운을 불어넣어서 써야 제대로 된 치료가 된다. 이것이 기와 혈을 함께 생각하는 치료다. 코피·토혈(피를 토하는 것)·각혈(기침하며 피가 나오는 것)·뇨혈(소변에 피가 섞이는 것)·변혈과 장벽(대변에 피가 섞이는 것)·치뉵(잇몸출혈)·설뉵(혀에서 피가 나는 것)· 혈한(피 같은 땀이 나는 것)·구규출혈(여러 곳에서 피가 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출혈 원인 중 가장 많은 것이 외상에 의한 출혈이다. 현대 의학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가 외과 수술에서 나왔다. 예전에는 피를 철철 흘리고 뼈가 부러지는 것에는 지금의 응급처치 수준의 처치만 가능했다.

당귀. [중앙포토]

당귀. [중앙포토]

한의학의 여러 유명한 처방 중 이곳에 등장하는 것이 사물탕이다. 네 가지 약재로 구성돼 혈에 관련된 치료 처방의 근간을 이루는 약방문이다. 수많은 어혈 치료가 이 처방을 기본으로 응용돼 가지로 뻗어 나간다. 네 가지는 숙지황, 백작약, 천궁, 당귀다. 이 네 가지 약재는 혈 생성에 도움이 되고 기순환도 잘 시켜줌으로써 기와 혈의 문제를 골고루 돌봐주고 균형을 맞춰준다. 동의보감 건강스쿨을 읽는 분이라면 이 정도 처방 하나쯤은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한다.

우리 몸의 건강은 기와 혈의 조화 속에 균형을 찾아가고자 하는 무수한 노력의 결과다. 이번 편에서는 한의학의 기본 개념인 기와 혈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전하고자 했다. 앞으로도 한의학 용어와 양의학 용어 간의 차이가 크게 나올 텐데 한의학은 한의학대로 인정하면서 접근해야 오해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한의학을 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다면 아마도 양의학을 하는 분들이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용환 하랑한의원 원장 hambakusm@hanmail.net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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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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