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수대

국정원법 유감

중앙일보

입력 2017.12.01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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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정애 정치부 차장

고정애 정치부 차장

5년도 넘은 얘기니 공개해도 되겠다. 국가정보원 요원 K와의 대화다. “국정원이 원래 대학생은 수사를 안 했는데 주사파가 나오면서 하게 됐다”며 해 준 얘기다.

“조사 대학생이 주체사상을 많이 안다고 자부하더라. 마침 옆방에 북한 고위층 자제가 있었다. 탈북이 역공작일 수 있어 조사 중이었는데, 탁아소부터 김일성대까지 주체사상 교육을 받았다더라. 장난기가 동해 둘이 대화하게 했다. 배경 정보는 안 줬다. 대학생이 나중에 ‘그 사람 누구냐. 주체사상을 많이 안다더니 제대로 모르던데’라고 했다. 어느 정도 수준이더냐고 물었더니 ‘중학생’이라고 답하더라.”

북한 청년의 평가가 궁금했다. K는 “‘많이 알더라’고 했다”며 “우리 대학생들이 그만큼 주사 공부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석기 전 의원이 떠오를 수 있겠다. 국정원이 3년여 추적했다. 2015년 대법원은 “이 전 의원이 전쟁이 발발할 것을 예상하고 회합 참석자들에게 남한 혁명을 책임지는 세력으로서 국가시설 파괴 등 구체적인 실행 행위를 촉구했다”고 판단했다.

“간첩은 누가 잡나.”

이어지는 우려다. 대공(對共) 수사권을 포기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마련하겠다는 국정원 발표를 두고서다. 우려할 만하다. 개정안대로 확정되면 국정원은 더 이상 이석기류의 사건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더한 우려는 ‘공백’이다. 서훈 원장은 앞서 “대공 수사를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은 국정원”이라면서도 “수사권은 국가 전체 차원에서 재편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로 재편 논의가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검·경·군 어딘가가 대신하겠지만 그네들도 묵사발난 상태다. 한동안 칼자루를 쥘 곳이 없단 의미다. 누가 좋아할지 뻔하다.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에 개정안이 안(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 때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처럼 말이다. 국정원이 더 잘 분석하고 있을 게다.

그럼에도 국정원은 북한이 ‘초강력’ 미사일을 쏜 날, 대공 수사권 포기를 발표했다. 청와대 등의 눈치를 더 본 것이다. 이젠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여전히 정치의 플레이어로 행동한 셈이다. 그러므로 진정 우려는 이거다. “국정원마저 계속 정치하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

고정애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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