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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KTX 뚫리는 강릉, 미식여행 떠나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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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일일오끼 ④ 강원도 강릉

백사장이 깨끗한 강릉 사천해변.

백사장이 깨끗한 강릉 사천해변.

“기차 좋습니까?” 11월 21일 시험 운행 중인 KTX를 타고 강원도 강릉에 갔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물었다. 그동안 서울 청량리에서 강릉 정동진까지 다섯 시간도 더 걸리는 무궁화호밖에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두 시간으로 가까워진 강릉행 열차에 몸을 싣고 강릉의 맛을 탐닉하고 왔다. 초당순두부와 옹심이는 포기하고 바다 먹거리에만 집중했다.

22일 개통, 서울역서 1시간54분 #물망치·도루묵 … 겨울 진미 가득 #해풍에 말린 복어·장치찜도 별미

12:00 물망치, 인상 험악한데 탕은 진국

강릉에서도 파는 식당이 드문 물망치탕. 물망치는 아귀 친척뻘 되는 어종으로, 몸에 진액이 많아 끓일수록 깊은 맛이 난다.

강릉에서도 파는 식당이 드문 물망치탕. 물망치는 아귀 친척뻘 되는 어종으로, 몸에 진액이 많아 끓일수록 깊은 맛이 난다.

서울역에서 오전 9시 출발한 기차가 11시 강릉역에 도착했다. 예약해 둔 렌터카 픽업 장소로 이동해 포남동으로 차를 몰았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물망치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한성먹거리식당(033-643-7892)에 가기 위해서다.

이름이 조폭 행동대장 같은 이 녀석의 학명은 고무꺽정이로, 강릉·동해·삼척 앞바다 수심 30~50m에 사는 심해어다. 촌스러운 이름, 험악한 인상과 달리 맛은 좋다. 알이 잔뜩 밴 겨울이 돼야 진미를 알 수 있다.

얇게 채 썬 물가자미회. 초고추장에 버무린 채소와 함께 먹는다.

얇게 채 썬 물가자미회. 초고추장에 버무린 채소와 함께 먹는다.

매운탕 소(1만5000원)를 시켰더니 두 명 먹기에도 넉넉한 양이 나왔다. 고기는 아귀보다 쫄깃했고 국물은 진득했다. 박영철(54) 한성먹거리식당 사장은 “바닷고기는 진이 많아야 탕으로 끓였을 때 맛있는데 물망치가 그렇다”고 말했다. 이 식당은 가자미회(소 2만원)도 판다. 얼린 물가자미를 뼈째 썰어 초고추장에 버무린 채소와 함께 먹는다.

14:00 안목해변 피해 찾아간 카페

사천해변에 있는 쉘리스커피.

사천해변에 있는 쉘리스커피.

카페인이 당기는 시간. 바다로 향했다. 어느 순간부터 서울의 여느 카페 골목 같아진 안목해변에서 예전 같은 운치를 느끼긴 어려웠다. 강릉에서 시작해 서울까지 영역을 넓힌 유명 카페나 세계적인 체인 카페를 갈 일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커피트럭을 몰고 전국을 휘젓는 바리스타 이담씨에게 물었다. 한가하면서 커피 맛 좋은 카페가 없는지. 이씨는 강릉시내와 정동진, 사천해변 등에 있는 카페 몇 곳을 추천했다. 이 중 동선을 고려해 사천해변 쪽으로 향했다.

쉘리스 커피(033-644-2355). 목 좋은 해변에 고풍스러운 2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고목(古木)을 활용한 인테리어 때문인지 유럽의 오래된 카페 같았다. 화목난로가 있는 1층에 앉아 쿠바 크리스탈마운틴 드립커피(8000원)를 마셨다. 아늑하고 한갓진 카페 창가에 앉아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마신 커피가 유난히 향긋했다.

 쉘리스커피에서 마신 쿠바 크리스탈마운틴 드립커피.

쉘리스커피에서 마신 쿠바 크리스탈마운틴 드립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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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 바람이 선물한 복찜

주문진항에는 요즘 복어가 많다. 12월 1~3일 복어축제도 열린다.

주문진항에는 요즘 복어가 많다. 12월 1~3일 복어축제도 열린다.

주문진으로 향했다. 특별한 횟집 주문진항구회센터(033-661-0722)에 가려고. 이 집에는 광어·참돔 위주의 1인 3만원짜리 세트메뉴도 있지만 홍인표(46) 사장에게 부탁하면 가격에 맞춰 그날 아침 어시장에서 떼온 제철 해산물을 내준다. 이날은 개복치 숙회와 새끼 방어, 참가자미 세꼬시를 내줬다. 쫀득한 개복치, 부드러운 방어, 고소한 가자미를 한 젓가락씩 집어 먹는 재미가 남달랐다.

강릉 제사상에 오르는 귀한 음식 복찜.

강릉 제사상에 오르는 귀한 음식 복찜.

생선회보다 더 인상적인 음식이 있었다. 강릉 제사상에 오르는 귀한 음식 복찜이었다. 홍 사장은 신선한 복어를 해체해 2~10일 바닷바람에 말린 뒤 쪄 먹는다고 한다. 밀복과 까치복을 먹었는데 아무 간을 하지 않았는데도 감칠맛이 강렬했다. 홍 사장은 “바람이 만든 맛”이라고 말했다. 복어찜은 2~3마리에 3만원 선이다.

다음날 8:00 서민 보양식 우럭미역국

옛 태광식당에서 먹은 우럭미역국과 밑반찬. 우럭을 사골처럼 푹 고아 살점이 거의 바스러져 있다.

옛 태광식당에서 먹은 우럭미역국과 밑반찬. 우럭을 사골처럼 푹 고아 살점이 거의 바스러져 있다.

아침밥 메뉴는 진즉 정했다.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에 실린 단편 ‘가리는 손’을 읽고서였다. “비늘과 내장을 제거한 우럭을 들통에 깐다. 거기에 대파와 생강·청주를 넣고 팔팔 끓인다. 익은 살은 따로 발라 한곳에 두고, 몸통 뼈와 대가리만 다시 삶는다.” 주인공은 강릉 출신 어머니가 끓여주던 맛을 기억하며 생일을 맞은 아들을 위해 국을 끓인다. 우럭미역국이 나오는 대목마다 절로 침이 고였다.

우럭미역국을 잘한다는 옛태광식당(033-653-9612)은 숙소가 있는 경포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았다. 손님 대부분이 미역국을 먹고 있었다. 우럭미역국(8000원)을 주문했더니 오징어젓갈 등 손수 만든 여섯 가지 반찬과 함께 나왔다. 국물을 뜰 때마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구수하고 개운한 맛이 소고기미역국과는 결이 달랐다.

12:00 시장 구경하고 장치찜 먹고

요즘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한 도루묵.

요즘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한 도루묵.

만나야 할 겨울 진미가 더 있어 주문진항을 다시 찾았다. 강원도 음식 전문가인 황영철 강원외식저널 대표와 함께 시장 투어에 나섰다. 주차장 앞 건어물시장과 회센터뿐 아니라 어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난전,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종합시장까지 주문진항 주변엔 큰 시장이 여럿 있다. 어시장을 들렀다. 배가 터질 듯 알을 품은 도루묵 암놈이 1만원에 10~15마리였다. 석쇠에 구운 도루묵을 파는 집도 있었다. 주문진을 상징하던 오징어는 요즘 금징어로 불린다. 그래도 제법 큼직한 두 마리를 1만원에 살 수 있다. 까치복·밀복 등 겨울철 강릉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복어도 많았다.

도루묵은 알이 그득 밴 암놈을 구워 먹는 맛이 일품이다.

도루묵은 알이 그득 밴 암놈을 구워 먹는 맛이 일품이다.

어시장 뒷골목 삼미식당(033-661-0223)에서 장치찜을 먹었다. 장치는 표준어로는 벌레문치라 부르는데, 도치·물망치 못지않게 외모가 비호감형이다. 황 대표는 “옛날 뱃사람들은 뱀처럼 기분 나쁘게 생겼다며 장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며 “1년 내내 잡히지만 찬바람에 말려 먹는 겨울이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매콤한 장치찜(1인 1만1000원)은 명태 코다리와 비슷하면서도 살집이 두툼했다. 이 식당도 반찬을 허투루 내지 않았다. 특히 강릉 전통음식인 햇데기밥 식해는 주인공 장치를 위협하는 밥도둑이었다.

매콤한 장치찜. 해풍에 말린 장치는 명태 코다리보다 살집이 두툼해 씹는 맛이 좋다.

매콤한 장치찜. 해풍에 말린 장치는 명태 코다리보다 살집이 두툼해 씹는 맛이 좋다.

◆여행정보

KTX 경강선은 오는 22일 개통한다. 서울역에서 강릉역까지 1시간54분. 올림픽 기간(2018년 2월 9~25일)에는 인천공항·서울·청량리·상봉역에서 강릉까지 가는 기차를 하루 51편 운행한다. 서울역 출발 기준 어른 2만7600원. 강릉역에서 내린 뒤 경포해수욕장·주문진 등 강릉 주요 명소를 가려면 버스·택시를 타거나 렌터카를 이용하면 된다. 코레일 측은 “열차 개통에 맞춰 강릉역에서 현대카드와 함께 운영하는 KTX딜카와 그린카·쏘카 등 카셰어링 서비스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TX 강릉역. 열차 개통을 앞두고 막바지 정비 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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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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