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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영유의 직격 인터뷰

“고령화 한국의 노인 차별, 토인비도 깜짝 놀랄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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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근홍 한국노년학회장이 진단한 고령사회의 그늘

김근홍 한국노년학회장은 ’세계 최고속의 고령화가 부른 세대 간 갈등과 노인 차별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 회복 운동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종택 기자]

김근홍 한국노년학회장은 ’세계 최고속의 고령화가 부른 세대 간 갈등과 노인 차별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 회복 운동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종택 기자]

우리 국민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65세 이상 노인이 0~14세 유소년보다 많은 노인 추월시대가 됐다. 올 8월에는 노인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런 과정에서 노인에 대한 차별과 홀대가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한국노년학회 김근홍(56·강남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 회장은 “한국의 생명수는 효(孝)라고 극찬했던 영국의 인류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지하에서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최단 기간의 고령사회 진입이 우리 사회의 경로(敬老)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가장 큰 부작용으로 ‘에이지즘(ageism, 노인 차별)’을 주목했다.

프랑스 115년, 일본 26년 걸린 #고령사회 한국 17년 만에 진입 #돈과 외모로 노인 차별하는 건 #젊은 세대가 효 경험 없는 탓 #공짜 복지가 가장 추한 복지 #노인 65 → 70세 점진 상향하고 #공동체 회복 교육 시스템 절실 #베이비부머가 구심점 역할 해야

토인비(1889~1975)가 한국의 효를 그 정도로 극찬한 적이 있나.
“그가 생을 마감하기 2년 전인 1973년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만약 지구가 멸망해 인류가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면 꼭 가지고 가야 할 문화가 바로 한국의 효’라고 했다. 대가족 체제에서 어른 공경을 제일 덕목으로 여겼던 우리의 효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당시 우리 국민의 평균 수명은 63세였다. 지금은 어떤가. 평균 82세를 넘어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로 가고 있다. 토인비도 상상 못했을 거다.”
노인이 많아져 공경심이 약해졌단 말인가.
“현재 65세 이상 노인이 677만5000명인데 연말에는 700만 명을 넘어선다. 머지않아 1000만 명 시대가 된다. 노인이 많다 보니 젊은 세대가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공경심은 별다른 게 아니다. 노인을 구석으로 내몰지 않고,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인정해 주는 게 공경심이다. 그런 공감대가 없는 상태에서 고령화 쓰나미를 맞았다. 부작용이 발생한 원인이다.”
에이지즘의 개념부터 정리하자.
“간단히 ‘노인 차별’ 또는 ‘연령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영국의 노인의학 전문의인 로버트 버틀러가 1969년 만든 용어다. 노인 편견과 무시로 특징되는 사회 현상을 꼬집은 말인데 정작 유럽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령화가 천천히 진행돼 체감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방예의지국’이라던 우리나라가 더 뚜렷해진 것이다. ‘노인불경지국(老人不敬之國)’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왜 토인비도 놀랄 그런 일이 생기나.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인 고령화 사회에서 14%인 고령사회로 가는 데 우리는 17년이 걸렸다. 세계 신기록이다. 프랑스는 115년, ‘노인의 나라’ 일본은 26년이 걸렸다. 서서히 고령사회에 진입해 노인 정책과 인프라 구축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시간도, 준비도 부족했다.”
그렇게 된 주요 원인을 뭐라 보나.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됐기 때문이다. 압축·고속 성장 속에 전통적인 가치였던 존중감·사명감·의무감이 퇴색됐다. 경제적 효과와 개인주의만 추구하다 보니 부작용이 나타난 거다. 노인을 왜 존중해야 하는지 젊은 세대들은 잘 이해 못 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
에이지즘의 실태가 어떤가.
“택시를 안 태워주고, 식당·카페에서 ‘물 흐린다’며 나가라 하고, 의사가 ‘그 나이엔 원래 아파요’라고 하는 것은 가벼운 상처에 불과하다. 문제는 마음의 깊은 상처다. 노인들은 격변기를 살아온 세대다. 부모 부양하고, 자녀 키우느라 노후 준비를 못했다. 막연하게 후세들이 떠받쳐 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렇지가 않은 거다. 젊은 사람들은 노인의 경제력과 외모만 보고 판단한다. 돈 많고 옷 잘 입는 노인이 푸대접 받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그게 가장 마음이 아픈 거다.”
어르신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80세 노인이라면 자신이 화려했던 시절만 회상한다. 고정관념과 나이로만 권위를 앞세워 대접 받으려 하니 ‘꼰대’라는 말을 듣는다. 노인이라는 걸 잊고 사회 변화에도 둔감해 차별 아닌 것도 차별이라고 느끼게 된다. 어른이라고 윽박지르며 가르치려고만 해선 안 된다.”
젊은 세대도 문제 아닌가.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보편화한 시대에 공경이 뭔지를 잘 모른다. 대가족으로 살며 자연스럽게 밥상머리에서 배우던 예전과 달라졌다. 직접 보고 배우지 못했다. 제대로 가르친 적도 없으면서 ‘왜 너는 불경스럽냐’고 질타하는 건 모순이다. 어릴 때부터 경로 교육을 못 받아 그런 문제가 생겼다. 세대 간 소통하며 이해하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적 환경이 중요할 것 같다.
“우리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한다. 반면 선진국 노인들은 자신의 여가와 삶의 만족을 위해 일을 한다. 인생 이모작, 삼모작 하면 차별을 덜 느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차별을 받으면서 일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과 여건을 바꿔줘야 한다. 소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하는 환경이 존재하는 한 노인 차별은 없어지지 않는다.”
선진국의 시스템은 어떤가.
“사회 보장 시스템으로 일정 소득 수준을 보장한다. 젊은 세대도 노인을 무시할 이유가 없다. 개념 자체가 다르다. 내가 보장을 받고 효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나이 드신 분들을 조금 대접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는 해도 우리처럼 심하지는 않다. 유산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도 거의 없다. 문화적 차이가 크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노인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짐 같은 존재, 귀찮은 존재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인식 개선 운동과 함께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의무적으로 인성교육을 반영해야 한다. 지금의 도덕 과목만으론 부족하다. 중·고교와 대학도 마찬가지다. 교육을 통한 의식 개혁이 가장 효과적이다.”
노인 정책을 잘 가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다. 공짜 복지가 가장 저급한 복지인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노인에게 돈을 주면서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한다. 돈이 필요할 때 쓰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한데 우리의 ‘공짜’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모두 떨어뜨린다. ‘돈 내고 밥 먹으러 왔다’ ‘돈 내고 지하철 탄다’며 당당히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지공거사(地空居士)’가 대표적인 게 아닌가. 그건 진정한 복지가 아니다. 선택의 폭을 넓혀 줘야 한다.”
공짜 지하철이 이슈가 되면서 만 65세 노인 기준이 논란이 됐다.
“노인 정의에 연령을 기준 삼은 것은 1889년 세계 최초로 만든 독일 연금보험법이 시초다. 당시 연금 수급 연령 기준이 70세였다. 독일의 평균 수명이 50세를 넘지 않던 시절이다. 연금을 수령하고 싶어도 수령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그러다가 1916년에 수급 연령을 65세로 바꿨다. 그 기준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다. 우리도 그걸 준용하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 어디에도 만 65세가 노인이라는 규정은 없다. ‘65세 대중교통 무료’ 같은 규정만 있을 뿐 노인의 정의에 대한 건 따로 없다. 대한노인회 정관에 ‘회원은 65세로 한다’가 유일한 조항이라고나 할까.”
선진국의 노인 기준은 어떤가.
“2005년부터 65세 기준을 67세로 점차 바꾸고 있다. 독일·스웨덴·스페인도 다 바꾸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고 있는 백세시대에 적절한 조치일 수 있다.” 
이심 전 대한노인회 회장이 노인 기준을 70세로 바꾸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공감이 가는 제안이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선진국은 노인 기준을 65세에서 67세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사회 보장 시스템을 제대로 갖췄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시스템이 미흡하다. 기초연금 20만원이 고작인데 이마저도 정권에 따라 기준 연령과 액수가 바뀐다. 선진국은 보수·진보 정권과 관계없이 사회 보장 시스템을 작동한다. 독일의 경우 2029년까지 67세로 점진적으로 바꾼다. 우리가 급진적으로 바꾸는 건 무리다.”
노인을 위한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다.
“각 시·군·구에 노인복지관을 하나씩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강제성은 없다.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시행하니 제대로 안 된다. 중앙정부의 기준이 필요하다. 노인들도 권리를 주장하고 권리를 내세워야 한다. 노인 교육도 ‘권장’이 아닌 ‘의무’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상대적 노인빈곤율이 4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고령자는 돈·소득·친구가 없는 3무(無)에 시달린다고 한다.
“OECD는 연금을 기준으로 빈곤을 규정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연금 시스템도 부실하고 노인 간 소득 갭도 너무 크다. 빈곤한 사람들은 더 빈곤해지고 부유한 사람들은 더 부유해진다. 베이비부머(1955~63년생) 세대들이 노인이 될 땐 소득 차가 크지 않을 것이다.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아 권리도 당당히 주장할 수 있다. 그런 베이비부머가 주축이 돼 사회를 다시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들은 한국 사회의 영원한 중추다.”
기초연금이 20만원인데 수입 하위 70%에 지급하는 게 합리적인가.
“둘로 나눠서 최하의 35%에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70%에게 주던 것을 갑자기 없애면 반발이 생긴다. 줬다 뺏으면 누가 좋아하겠나. 연금과 책임을 연계시키는 방안이 합리적이다. 예컨대 20만원 받으려면 ‘운동 한 시간’ 또는 ‘평생교육 세 시간’ 식으로 노인들의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디테일한 정책이 현장에 먹힌다.”
노후 준비가 안 된 노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다.
“현재 고령자들은 ‘낀 세대’다. 효도해 온 마지막 세대이자 효도를 받지 못하는 첫 세대란 의미다. 그런데 노인 시설은 자부담이다. 상당히 부담스럽다. 자식들도 먹고살기 바쁜데 시설비를 대려면 얼마나 힘들겠나. 요양시설비를 국가가 지원하는 시스템부터 갖췄으면 좋겠다.”

김근홍은 …

1988년 독일 함부르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찍부터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노인 복지를 전공했다. 독일 도시사회비교학연구소 수석연구원과 성결대 교수를 거쳐 2001년부터 강남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다. 올해 7월부터 한국노년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78년 출범한 한국노년학회는 6800명의 전문가가 활동하는 국내 최대 노인 복지 학술단체다.

양영유 논설위원, 정리=이유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