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학에 재정 지원을 하면서 정원 감축을 강제했던 대학구조개혁평가가 사실상 폐지된다. 대신 대학별 기본역량 진단평가로 바꾼다. 평가 후 상위 60% 대학은 자체 계획에 따라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일반재정을 지원받는다. 10여 개에 이르는 대학 재정지원 사업은 크게 3가지로 간소화된다.
교육부, 대학 기본역량 진단 계획 발표 #상위 60% 대학엔 재량껏 쓰는 재정 지원 #이전보다 정원 감축 3만명 줄어 #정부 "정원 감축은 시장에 맡겨야"
교육부는 30일 대학 기본역량진단 및 재정지원사업 개편 시안을 발표했다. 지난 정부가 2015년 실시한 구조개혁평가는 '대학 기본역량 진단'으로 이름을 바꾼다. 기존 평가에선 대학을 6개 등급(A·B·C·D+·D-·E)로 구분했지만 기본역량 진단에선 3개 등급으로 구분한다.
시안에 따르면 1단계 평가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상위 60% 대학은 '자율개선대학'으로 지정한다. 이들 대학은 정원을 감축하지 않아도 된다. 사용에 제한이 없는 일반재정을 지원받는다.
나머지 하위 40% 대학은 2단계 평가를 거쳐 '역량강화대학'과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나뉜다. 이들 대학은 정원 감축을 권고받는다. 역량강화대학은 정부의 특수목적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재정지원제한대학은 특수목적 재정지원 신청을 할 수 없다. 재정지원제한대학 중에서도 더욱 평가 결과가 나쁜 대학은 강도높은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정부 주도 정원 감축 목표, 5만→2만명 축소
지난 2015년 이뤄진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와 비교해보면 정원 감축 대상이 크게 줄게 된다. 1주기 평가 때는 A등급(16%)을 제외한 나머지 84%(B~E등급) 대학이 모두 정원의 4~15%를 줄여야 했다. 바뀐 평가에서는 하위 40%만 정원 감축 대상이 된다.
자율개선대학은 권역별 균형을 고려해 선정한다. 전국 대학을 일률적으로 평가하면 지역 대학이 고사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에 따라서다.
대학 정원 감축 목표치도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지난 정부에서는 ▶1주기(2014~2016년)에 4만명 ▶2주기(2017~2019년) 5만명 ▶3주기(2020~2022년) 7만명을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교육부가 "1주기 평가를 통해 대학 정원을 5만6000명 줄여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자평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날 발표에 따르면 2주기에 해당하는 이번 평가에서 줄일 대학 정원이 당초의 5만 명에서 2만명으로 축소됐다. 정부 주도로 감축할 정원 목표치는 줄이고 나머지는 시장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취지다.
류장수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장(부경대 교수)은 "이전 정부의 계획이 타당한지 깊이 있게 논의한 결과, 정원 감축 숫자를 정부가 모두 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류 위원장은 "정부정책은 실패할 우려가 있다. 앞으로 줄여야 할 정원이 5만명이라면, 2만명 정도는 정책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시장 기능에 맡겨 자연스럽게 줄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재정지원사업 3가지로 간소화
구조개혁평가와 함께 대학의 정원 감축을 유도하는 재정지원 사업도 바뀐다. 10개 이상이던 사업이 '국립대 지원' '일반재정 지원' '특수목적 지원' 등 세 가지로 정리된다. 특수목적 지원 사업은 '교육혁신' '산학협력' '연구지원'의 3가지로 구분된다.
올해 기준으로 대학 재정지원사업 예산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교육부는 지금까지 이 돈을 여러 사업별로 쪼개 대학에 나눠줬다. 사업을 발주하면 대학들이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고, 평가를 거쳐 선정됐다. 정원 감축을 조건으로 내건 사업도 있었다.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적 계획에 따른 재정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대학 기본역량 진단에서 '자율개선대학'으로 지정된 대학에 주는 일반재정은 대학이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다. 지금까지는 각 사업 목적에 따라서만 쓸 수 있었다. 일반재정은 각 대학의 특수 사업은 물론 인건비 같은 경상비용에도 쓸 수 있다.
박성수 교육부 학술장학지원관은 "대학이 어디에 돈을 쓰는지는 정부가 파악하겠지만 이를 평가하지는 않겠다, 대학이 자체 발전계획에 쓸 수 있도록 지출처를 폭넓게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이같이 바꾼 이유는 그간 재정지원 사업들이 대학 특성화를 방해한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금까지는 대학재정지원 사업이 정부 중심으로 추진돼 대학 경쟁력 제고에 어려움이 있었다. 목표부터 성과관리까지 대학이 설계하는 '상향식'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대학들, "정부 눈치 보기는 마찬가지"
이번 개편안에 대해 대학들은 대체로 반기면서도 이전 구조개혁평가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처장은 "대학을 획일적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고 대학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재정을 지원해준다는 점은 긍정적이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가 사립대를 평가해 재정과 정원 압박을 가한다는 측면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수도권 대학 관계자도 "정원을 줄이지 않아도 되는 등급의 비율이 늘어났을 뿐, 평가 지표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정성평가 비중이 정량평가보다 높기 때문에 대학으로선 여전히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원 감축 제재를 받는 하위 40% 선발에서 지역별 균형을 맞춘다는 부분에 대해선 수도권·비수도권 간에 의견이 엇갈린다. 수도권의 대학 관계자는 "대학의 수준이나 숫자 등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지역을 나눠 하위 대학을 정한다면 수도권 대학엔 역차별이 되며, 지방 부실대학이 연명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강원도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지역에서는 지역 대학이 사회·경제적으로 중심적 역할을 한다. 학생 충원율 등 단순한 정량 수치가 서울의 대학들보다 낮을 수밖에 없는데, 지역 안배를 하지 않으면 비수도권의 위기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류장수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은 "지역별로 균형 있게 자율개선대학을 선정한다고 해도, 아주 부실한 대학이 포함될 우려는 없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다음달 1일 역량진단방안 공청회를 거쳐 12월 중 진단 방안을 확정하고, 내년 4~5월 중 1·2단계 진단을 거쳐 8월 말 최종 결과를 발표한다. 이어 2020년 역량강화대학과 재정지원제한 대학에 대한 보완평가를 시행해 개선된 대학은 재정지원제한을 해제할 예정이다.
남윤서·전민희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