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처럼 보여주는 미디어 아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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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블라스트 씨어리의 싱글 채널 비디오 ‘내가 너를 숨겨줄게’(2012). 물리적 공간의 실제 체험과 비디오 게임을 결합했다. [사진 백남준아트센터]

블라스트 씨어리의 싱글 채널 비디오 ‘내가 너를 숨겨줄게’(2012). 물리적 공간의 실제 체험과 비디오 게임을 결합했다. [사진 백남준아트센터]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어요. 매일같이 제 스스로가 생각하는 거에요. 당신이 바꾸었으면 하지만 바꿀 수 없는 건 무엇인가요?”

영국 작가 그룹 블라스트 씨어리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전 #실시간 스트리밍 등 관객 참여 유도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관객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한 것” “최저임금을 1시간에 11달러에서 15달러로 올리는 것” “내 딸의 죽음”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 “세상이 불공정한 것” “부모님을 모두 잃은 것” “나 자신” 등 다양한 답변이 영화의 마지막에 자막으로 소개된다. 모두 영화의 상영 도중 휴대폰 문자 등으로 관객들이 직접 보내온 것이다.

이 장편영화는 영국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블라스트 씨어리’가 2015년 캐나다의 루미나티 페스티벌에 처음 선보인 ‘나의 한 가지 요구’다. 마치 연극 공연처럼 촬영과 동시에 상영이 이뤄진 것부터 독특하다. 여러 극 중 인물이 토론토 거리 곳곳을 이동하며 차례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스태프가 나란히 움직이며 촬영, 토론토의 극장과 온라인에 실시간 스트리밍했다. 그래서 전체가 하나의 쇼트로 연결된 영화, 이런 와중에 내레이션·자막 등으로 관객참여를 실현한 인터랙티브 영화다.

블라스트 씨어리. 왼쪽부터 닉 탄다바니치, 주 로우 파, 매트 아담스. [사진 백남준아트센터]

블라스트 씨어리. 왼쪽부터 닉 탄다바니치, 주 로우 파, 매트 아담스. [사진 백남준아트센터]

다양한 미디어 기술을 활용, 창의적인 인터랙티브 예술작업을 펼쳐온 블라스트 씨어리가 국내 첫 개인전을 갖는다.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당신이 시작하라’는 2년마다 시상하는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작가로 지난해 선정된 이들의 기념전이다. 모두 7개의 작품이 ‘당신’, 곧 관객을 중심에 두고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다양한 질문을 탐구해온 면모를 보여준다.

1991년 결성된 블라스트 씨어리의 현재 중심인물은 매트 아담스, 주 로우 파, 닉 탄다바니치 등 세 작가다. 미술만 아니라 연극·무용 등 조금씩 다른 전공을 겸비한 것이 특징이다. 닉 탄다바니치는 “각자 배경이 다른데 공통분모라면 대형 극단이나 발레단에서 훈련받은 게 아니라 동시대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라며 “성장기에 경험한 대중문화, 젊은이들의 흥미진진한 문화가 우리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주 로우 파는 “현재 나와 있는 기술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주목한다”며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만들거나 기술을 신비화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게임을 즐겨 활용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2012년 작품 ‘내가 너를 숨겨줄게’는 플레이어들이 영국 맨체스터의 골목을 누비며 서로 비디오로 촬영하는 게임을 온라인에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물리적 공간의 실제 체험과 비디오 게임을 결합했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선보였던 ‘율리케와 아이몬의 타협’은 관객이 휴대전화를 통해 과거 유럽에서 무장단체를 이끌다 각기 다른 죽음을 맞은 두 인물 중 하나를 선택, 전화 목소리의 지시를 듣고 행동을 이어가게 한 작품이다.

여러 작품을 통해 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직설적 사회 비판이 아니다. ‘변화’, ‘참여’, ‘통제’ 등 폭넓은 키워드가 관객 자신의 삶까지 돌아보게 하곤 한다.

특히 최신작 ‘앞을 향한 나의 관점’은 국내 관람객이 가장 친근하게 느낄법한 작품이다. 런던 박물관 의뢰로 영국에서 촬영한 영상과 한국에서 새로 찍은 영상을 함께 선보인다. 내년 3월 4일까지.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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