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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오끼]KTX 타고 훌쩍~ 겨울 강릉을 맛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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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좋습니까?” 11월21일, 시험 운행 중인 KTX를 타고 강원도 강릉에 갔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물었다. 그럴 수밖에. 기차라면, 서울 청량리에서 강릉 정동진까지 5시간도 더 걸리는 느림보 무궁화호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최고 시속 250㎞ 고속열차가 동서를 횡단하는 덕에 2시간 이내에 강릉을 갈 수 있게 됐다.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강릉의 맛을 탐닉하고 왔다. 겨울을 맞아 살과 알이 그득 찬 해산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릉 대표 먹거리인 초당순두부와 옹심이는? 바다 먹거리가 푸진 계절이어서 뭍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과감히 포기했다.

겨울바다로 가자. 이왕이면 동해로 가자. 살이 잔뜩 오른, 알이 그득 찬 해산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강원도 강릉 주문진 해변에서 한 아낙이 도루묵을 말리는 모습.. [중앙포토]

겨울바다로 가자. 이왕이면 동해로 가자. 살이 잔뜩 오른, 알이 그득 찬 해산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강원도 강릉 주문진 해변에서 한 아낙이 도루묵을 말리는 모습.. [중앙포토]

12:00 물망치, 인상 험악한데 탕은 진국

한성먹거리식당에서 파는 물망치탕. 물망치(학명 고무꺽정이)는 아귀 친척뻘인데 몸에 진액이 많다. 그래서 탕을 끓일수록 깊은 맛이 난다.

한성먹거리식당에서 파는 물망치탕. 물망치(학명 고무꺽정이)는 아귀 친척뻘인데 몸에 진액이 많다. 그래서 탕을 끓일수록 깊은 맛이 난다.

서울역에서 9시에 출발한 기차가 11시 강릉역에 도착했다. 열차가 태백산맥을 관통하기 전까지는 겨울이었다. 11월인데도 산과 들이 하얗던 평창과 달리 강릉은 포근했다. 예약해둔 렌터카 픽업장소로 이동해 포남동으로 차를 몰았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생선탕을 파는 식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물망치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한성먹거리식당(033-643-7892)이다.
이름이 조폭 행동대장 같은 이 녀석의 학명은 고무꺽정이다. 아귀의 사촌쯤 되는 녀석인데, 강릉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삼숙이(학명 삼세기)와도 다르다. 강릉·동해·삼척 앞바다, 수심 30~50m에 사는 심해어다. 촌스러운 이름,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맛은 좋다. 물론 알이 잔뜩 밴 겨울이 돼야 진미를 알 수 있다.

 주문진항에서 본 물망치(고무꺽정이).

주문진항에서 본 물망치(고무꺽정이).

매운탕 소(1만5000원)를 시켰는데 두 명이 먹기엔 아주 넉넉한 양이 나왔다. 육질은 아귀보다 훨씬 쫄깃했고, 칼칼하고 진득한 국물 맛이 좋았다. 박영철(54) 한성먹거리식당 사장은 “바닷고기는 진이 많아야 탕으로 끓였을 때 맛있다. 물망치가 바로 그렇다”며 냉장고에 있던 머리가 두 동강난 물망치를 들어보였다. 온몸이 끈적한 진액으로 미끈거렸다. 이 식당은 독특한 가자미회(소 2만원)도 판다. 얼린 물가자미를 뼈째 썰어 초고추장에 버무린 채소와 함께 먹는다. 가자미가 살짝 녹으면서 매콤한 채소와 어우러진 맛이 독특하다. 박 사장은 “뼈째 먹는 가자미가 사람 뼈에도 좋다”고 말했다.

 한성먹거리식당의 또 다른 별미 가자미회. 얼린 물가자미를 뼈째 썰어서 초고추장에 버무린 채소와 함께 먹는다.

한성먹거리식당의 또 다른 별미 가자미회. 얼린 물가자미를 뼈째 썰어서 초고추장에 버무린 채소와 함께 먹는다.

14:00 안목해변 피해 찾아간 카페

경포나 안목 등 다른 강릉의 유명 해변보다 한적한 사천 해수욕장. 갯바위로 건너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경포나 안목 등 다른 강릉의 유명 해변보다 한적한 사천 해수욕장. 갯바위로 건너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카페인이 당기는 시간. 차를 몰고 바다로 향했다. 강릉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된 안목해변은 숱하게 가봤다. 강릉에서 시작해 서울까지 영역을 넓힌 유명 카페나 세계적인 체인 카페를 갈 일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서울의 여느 카페 골목과 닮아버린 안목해변에서 예전같은 운치를 느끼긴 어려웠다.
그래서 커피트럭을 몰고 전국을 휘젓고 있는 바리스타 이담씨에게 물었다. 조금 한가하면서 커피 맛도 좋은 카페가 없는지. 이씨는 강릉시내와 정동진, 사천해변 등에 있는 카페 몇 곳을 추천했다. 이중 동선을 고려해 사천해변 쪽으로 향했다.

사천해변 목 좋은 곳에 자리한 쉘리스커피.

사천해변 목 좋은 곳에 자리한 쉘리스커피.

쉘리스 커피(033-644-2355). 목 좋은 해변에 고풍스러운 2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고목(古木)을 활용한 인테리어와 곳곳에 전시된 골동품 때문인지 유럽의 오래된 카페에 들어선 것 같았다. 화목난로가 있는 1층에 자리를 잡고 쿠바 크리스탈마운틴 드립커피(8000원)를 마셨다. 아늑하고 한갓진 카페 창가에 앉아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한 모금, 또 한 모금. 커피가 유난히 향긋했다.

쉘리스커피는 다양한 드립커피를 판다. 수제 쿠키와 케이크, 초콜릿과 궁합이 좋다.

쉘리스커피는 다양한 드립커피를 판다. 수제 쿠키와 케이크, 초콜릿과 궁합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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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 바람이 선물한 맛

주문진항구회센터는 어시장 바로 옆에 있다. 매일 아침마다 시장에서 공수한 해산물로 생선회는 물론 다양한 요리를 낸다. 사진 아래는 개복치 숙회, 가운데는 방어 회, 위는 참가자미 세꼬시.

주문진항구회센터는 어시장 바로 옆에 있다. 매일 아침마다 시장에서 공수한 해산물로 생선회는 물론 다양한 요리를 낸다. 사진 아래는 개복치 숙회, 가운데는 방어 회, 위는 참가자미 세꼬시.

커피를 마시고 바닷가를 거닐었다. 7번 국도보다 바다 쪽으로 붙은 해안로 드라이브도 즐겼다. 해가 산 뒤편으로 넘어가자 금세 어둑해졌다. 주문진으로 향했다. 다른 횟집에선 보기 드문 음식을 파는 주문진항구회센터(033-661-0722)를 찾았다. 이 집에는 광어·참돔을 위주로 한 1인 3만원짜리 세트메뉴도 있지만 홍인표(46) 사장에게 제철 해산물을 추천 받아 먹는 게 좋다. 가격에 맞춰 그날 아침 어시장에서 떼온 신선한 해산물을 내준다. 이날은 개복치 껍질숙회와 마래미(새끼 방어) 회, 참가자미 세꼬시를 내줬다. 홍 사장은 “지금은 경북 포항 등 경북 지역에서 개복치를 많이 먹지만 1980년대만 해도 강릉에서도 많이 먹었다”고 설명했다. 쫀득한 개복치, 부드러운 방어, 고소한 가자미를 한 젓가락씩 집어먹는 재미가 남달랐다.
사실 이 식당에서 생선회보다 더 인상적인 음식은 따로 있었다. 먼저 도치 두루치기(1만5000원). 이맘때 알이 잔뜩 밴 도치는 알탕으로 많이 먹지만 김치와 함께 자작하게 끓여 먹는 두루치기는 또 다른 별미였다.

알을 잔뜩 품은 도치와 묵은지를 함께 끓인 도치 두루치기. 도치알탕과는 또 다른 별미다.

알을 잔뜩 품은 도치와 묵은지를 함께 끓인 도치 두루치기. 도치알탕과는 또 다른 별미다.

이날 먹은 ‘진짜 귀한 음식’은 복찜이었다. 강릉 제사상에 오르는 귀한 음식인데 독이 있는 복어를 다루는 식당은 드물다. 홍 사장은 신선한 복어를 해체해 2~10일 바닷바람에 말린 뒤 쩌먹는다고 한다. 이날은 밀복과 까치복을 먹었는데 아무 간을 하지 않았는데도 감칠맛이 강렬했다. 홍 사장은 “바람이 만든 맛”이라고 말했다. 배가 부를 만큼 불렀지만 복어를 찢는 손길이 밤 늦게까지 멈추지 않았다. 복어찜 가격은 시세에 좌우되는데 보통 2~3마리가 3만원선이다.

바닷바람에 열흘 가까이 말린 복어는 아무 양념을 하지 않고 찜통에 쩌내기만 해도 맛있다.

바닷바람에 열흘 가까이 말린 복어는 아무 양념을 하지 않고 찜통에 쩌내기만 해도 맛있다.

길이가 조금 긴 것이 까치복, 짧은 것이 밀복이다. 밀복이 조금 더 고소하고 까치복은 씹는 맛이 좋다.

길이가 조금 긴 것이 까치복, 짧은 것이 밀복이다. 밀복이 조금 더 고소하고 까치복은 씹는 맛이 좋다.

8:00 서민 보양식 우럭미역국

강릉 사람들이 예부터 보양식으로 먹은 우럭미역국. 우럭을 곰국처럼 끓여 살이 거의 바스라졌다.

강릉 사람들이 예부터 보양식으로 먹은 우럭미역국. 우럭을 곰국처럼 끓여 살이 거의 바스라졌다.

아침밥 메뉴는 진즉 정했다. 지난 여름 출간된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실린 단편 ‘가리는 손’을 읽고서였다. 소설에 우럭미역국 끓이는 내용이 섬세하게 묘사돼 있다. “비늘과 내장을 제거한 우럭을 들통에 깐다. 거기 대파와 생강, 청주를 넣고 팔팔 끓인다. 익은 살은 따로 발라 한곳에 두고, 몸통뼈와 대가리만 다시 삶는다.” 주인공은 강릉 출신인 어머니가 끓여주던 맛을 기억하며 생일을 맞은 아들을 위해 국을 끓인다. 소설 내용과는 별개로 우럭미역국이 나오는 대목마다 절로 침이 고였다.
우럭미역국을 잘 한다는 옛태광식당(033-653-9612)은 숙소가 있는 경포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았다. 식당에 들어서니 구수한 미역국 냄새가 진동했다. 손님 대부분이 미역국을 먹고 있었다. 외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보다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많았다.
우럭미역국(8000원)을 주문했다. 여섯가지 반찬과 국이 나왔다. 국물을 떴다. 으어. 탄성이 나왔다. 두 숟갈, 세 숟갈 들 때마다 옅은 탄성이 이어졌다. 구수하고 개운한 맛이 소고기미역국과는 결이 달랐다.

원송죽 사장은 아침마다 한약 달이듯 정성껏 국을 끓인다. 우럭미역국은 김애란의 소설 '가리는 손'에 묘사된 것처럼 손이 많이 가는 보양식이다.

원송죽 사장은 아침마다 한약 달이듯 정성껏 국을 끓인다. 우럭미역국은 김애란의 소설 '가리는 손'에 묘사된 것처럼 손이 많이 가는 보양식이다.

원송죽(71) 사장은 강문해변에서 30년째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제가 갓난아이 때부터 어머니가 우럭미역국으로 죽을 쒀서 먹였대요. 70년 이상 이걸 먹은 셈이지요.” 우럭미역국은 산모에게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며칠 전에는 서울 강남의 유명 산부인과에서 대량으로 국을 사갔단다.
옛태광식당은 반찬도 깔끔하다. 동해안 횟집에는 반찬을 사다 쓰는 집이 많지만 이 집은 손수 만든 반찬을 낸다. 1년 이상 숙성한 젓갈로 담근 김치와 강릉 토속음식인 삭힌 오징어젓갈이 특히 맛있었다.

 옛태광식당은 미역국은 물론 반찬 하나하나를 정성껏 만든다. 맨오른쪽 위에 있는 건 오징어를 삭혀 먹는 정통 오징어젓갈이다.

옛태광식당은 미역국은 물론 반찬 하나하나를 정성껏 만든다. 맨오른쪽 위에 있는 건 오징어를 삭혀 먹는 정통 오징어젓갈이다.

12:00 시장 구경하고 장치찜 먹고

겨울이면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한 도루묵.

겨울이면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한 도루묵.

지난 밤 강릉 바다의 진미를 경험했던 주문진항을 다시 찾았다. 만나야 할 겨울바다의 주인공이 더 있어서다. 항구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강원도 음식 전문가인 황영철 강원외식저널 대표와 함께 시장 투어에 나섰다.
주문진항 주변에는 큰 시장이 여럿 있다. 주차장 앞 건어물시장과 회센터 뿐 아니라 어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난전,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종합시장까지 모여 있다. 황 대표는 “부담없는 가격으로 회를 먹거나 생선을 사가려면 난전을 추천한다”며 “시장 뒤편 골목에 잘 알려지지 않은 허름한 맛집도 많다”고 설명했다.
먼저 주차장과 바투 붙은 어시장을 들렀다. 입구부터 겨울 강릉바다의 주인공이 널려 있었다. 배가 터질듯 알을 품은 도루묵 암놈이 1만원에 10~15마리였다. 석쇠에 구운 도루묵을 파는 집도 있었다. 주문진을 상징하던 오징어는 요즘 금징어로 불린다. 그래도 제법 큼직한 녀석이 두 마리 1만원이라니 서울에선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다. 시장에는 복어도 많았다. 까치복, 밀복 등이 겨울철 강릉 앞바다에서 많이 잡힌단다. 12월1~3일에는 복어 축제도 열린다.

어선에서 바로 시장으로 온 까치복.

어선에서 바로 시장으로 온 까치복.

점심은 장치 요리 잘하는 집을 찾았다. 장치는 표준어로는 벌레문치라 부르는데 도치·망치(고무꺽정이) 못지않게 외모가 비호감형이다. 황 대표는 “옛날 뱃사람들은 장치가 뱀처럼 기분 나쁘게 생겼다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며 “1년 내내 잡히지만 찬바람에 말려 먹는 겨울이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주문진 뒷골목은 유유히 걷기 좋다. 허름하지만 맛난 음식을 내는 식당이 많고, 낡은 적산가옥도 남아 있다.

주문진 뒷골목은 유유히 걷기 좋다. 허름하지만 맛난 음식을 내는 식당이 많고, 낡은 적산가옥도 남아 있다.

활어회센터 뒷골목, 삼미식당(033-661-0223)으로 들어가 장치찜(1인 1만1000원)을 주문했다. 해풍에 살짝 말린 장치를 매콤하게 조려서 내줬다. 명태 코다리와 비슷하면서도 살집이 두툼했다. 이 식당도 반찬을 허투루 내지 않았다. 특히 강릉 전통음식인 햇데기밥식해는 식탁 주인공인 장치를 위협하는 밥도둑이었다.

해풍이 말린 장치는 두툼하게 썬 감자, 양파를 넣고 매콤한 찜으로 먹는다.

해풍이 말린 장치는 두툼하게 썬 감자, 양파를 넣고 매콤한 찜으로 먹는다.

주문진 삼미식당은 음식 맛이 정갈하다. 밑반찬도 공을 들여 만든다.

주문진 삼미식당은 음식 맛이 정갈하다. 밑반찬도 공을 들여 만든다.

◇여행정보=KTX 경강선은 12월22일 개통 예정이다. 서울역에서 강릉역까지 1시간54분 걸린다. 올림픽 기간(2018년 2월9~25일)에는 인천공항·서울·청량리·상봉역에서 강릉까지 가는 기차를 하루 51편 운항한다. 서울역 출발 기준 어른 2만7600원. 강릉역에서 내린 뒤 경포해수욕장, 주문진 등 강릉 주요명소를 가려면 버스·택시를 타거나 렌터카를 이용하면 된다. 아직 KTX 정식 개통 전이어서 역 주변에 렌터카 업체가 들어서지 않았다. 코레일측은 "열차 개통 시점에 맞춰 현대카드와 함께 운영하는 KTX딜카 외에도 그린카·쏘카 등이 강릉역에서 카셰어링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는 12월22일 개통하는 KTX 경강선의 종착역인 강릉역. 현재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오는 12월22일 개통하는 KTX 경강선의 종착역인 강릉역. 현재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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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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