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을 비롯한 광주 지역 5월 단체들이 『전두환 회고록』의 출판·배포 금지를 위한 2차 소송에 나선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차 소송 때 법원이 허위 사실로 판단한 33개 부분만 가린 채 책을 다시 유통한 것에 대한 대응이다.
5·18단체, 2차 출판·판매 금지 가처분 소송 #광주교도소 습격, 5·18암매장 부인 등 강조 #교도소, 암매장 발굴 중…법원 판단 ‘주목’ #1차 소송때는 '1권 판매·배포 금지' 결정 #전 전 대통령 측, 지난달 재출간해 '논란' #'5·18왜곡' 33곳만 지워 다시 유통 시켜
5·18기념재단은 29일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왜곡한 『전두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에 대한 출판과 배포를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서를 이르면 다음 달 5일 광주지법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앞서 광주지법은 지난 8월 5·18단체들이 낸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인용 결정을 내렸다. 『전두환 회고록』이 5·18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을 왜곡했다고 판단해 1권에 대한 출판 및 배포를 금지한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폭동·반란·북한군 개입 주장, 헬기 사격 및 계엄군 발포 부정 등 33개 내용을 삭제하지 않고서는 회고록 출판·발행·인쇄·복제·판매·배포·광고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또 이 결정을 어길 때마다 가처분 신청인인 5월 단체에 500만원씩을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출판사 자작나무숲은 지난달 13일 기존 회고록 1권의 책 표지에 '법원의 가처분 결정 내용 수정본'임을 알리는 띠지를 둘러 다시 출간했다. 책 내용에는 문제가 된 33개 부분을 검은색 잉크로 씌운 뒤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의한 삭제’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문제가 된 내용을 드러내지 않고 검은색으로만 가린 만큼 기존에 출간된 책과 페이지 수도 같다.
이후 5월 단체들은 지난 4월 구성된 『전두환 회고록』 왜곡대응 특별위원회와 함께 소송 준비를 해왔다. 5·18을 왜곡·폄훼한 회고록에 대한 출판과 배포를 금지하기 위한 두 번째 소송에 나선 것이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마땅히 폐기해야 할 ‘역사 왜곡서’를 색깔만 덧칠해서 내놓는 것은 또 한 번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라고 말했다.
5월 단체들은 1차 소송 당시 다루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추가 소명을 통해 회고록의 부당성을 강조할 방침이다. ^광주교도소에 대한 시민군 습격(518~522페이지) ^희생자들에 대한 암매장 부정(485페이지) ^무기고 탈취시간 조작(403페이지) ^시민군의 파출소 습격 및 방화(391페이지) 등을 통해 출판·배포 금지에 나선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5·18사태 때 시위대의 공격 양상이 가장 집요했던 것은 광주교도소였다. 그곳은 여섯 차례나 무장시위대의 공격을 받았다’고 썼다. ‘광주교도소 습격설’은 당시 계엄 당국이 광주시민의 폭도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주장해온 부분이다.
5월 단체는 이번 소송을 계기로 ‘광주교도소 습격설’의 허위성을 국민에게 널리 알릴 계획이다. 이 주장은 80년 당시 각종 기록과 관계자들의 증언, 비무장 민간인들의 사망 같은 상황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전남경찰청도 지난달 11일 발표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 경찰의 역할’에서 교도소 공격설은 역사를 왜곡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자료에서는 ‘교도소 공격이 없었다는 당시 교도소장 등의 증언과 인근인 담양 거주 비무장 시민들의 총격 피해, 담양경찰서의 피해 경미 등을 종합하면 교도소 공격설은 오인·왜곡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전두환 회고록』에는 ‘광주사태 당시에 나돌았던 유언비어 가운데 계엄군이 광주시민들을 마구 학살해 여기저기 암매장했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는 내용이 있다. 지난 6일부터 5·18 당시 행방불명된 광주시민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발굴이 이뤄지고 있는 광주교도소 등에 대한 암매장을 전면 부인한 내용이다.
하지만 광주교도소의 경우 5·18 직후 옛 교도소장 관사 인근과 교소도 앞 야산 등에서 11구의 시신이 암매장 형태로 발견된 바 있다. 현재 5월 단체는 옛 광주교도소에서 억류당한 시민 28명이 숨졌다는 5·18 당시 보안대 자료와 계엄군 지휘관의 진술 등을 토대로 교도소 일원에 대해 발굴을 하고 있다.
5월 단체들은 『전두환 회고록』이 시민군의 무기 피탈 시간을 조작한 신군부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에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시민군 측의 주장과 달리 80년 5월 21일 오전부터 무기고 습격이 이뤄졌다’는 회고록 내용이 허위임을 뒷받침하는 자료나 주장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어서다.
5월 단체는 이 부분이 80년 5월 21일 오후 1시쯤 이뤄진 계엄군의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기 위한 시도로 보고 있다. 그동안 신군부 측은 “5·18 당시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는 무장한 시위대에 대한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아울러 5월 단체는 이번 소송에서 다뤄질 허위사실 부분이 1차 때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은 1차 소송 당시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535페이지 등 18곳) ^헬기 사격은 없었다(379페이지 등 4곳) ^비무장한 민간인에 대한 학살은 없었다(382페이지 등 3곳) ^전 전 대통령이 5·18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27페이지 등 7곳) 등 33가지 내용을 허위로 판단했다.
『전두환 회고록』 관련 소송을 주도해온 광주지방변호사회 김정호 변호사는 “회고록 출간과 재출간은 역사를 왜곡하려는 전두환의 의도와는 반대로 5·18의 진상규명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1차 소송 당시 역사적 진위가 가려진 33가지 외에 객관적인 사실 확인이 명확히 이뤄진 부분만으로 다시 소송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