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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7080 추억 풍경' 살린 공주 하숙마을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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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인 1982년 2월 말.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열여섯 까까머리 남학생이 커다란 가방 하나를 메고 하숙집으로 들어섰다.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들어간 곳은 천장이 낮고 다락이 있는 작은 방이었다.

제민천 따라 옛 가옥 리모델링해 조성… 중·장년층에 인기 #마당과 대청마루·펌프·장독대 등 30~40년 전 모습 그대로 #'교육도시' 유명한 공주… 읍내 고교·대학만 10여 개 달해 #여고생 수다떨던 분식집, 100년 된 성당·교회 변하지 않아

고향을 떠나온 남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3년간 이 방에서 꿈을 키웠다. 매일 매일 끼니를 챙겨주고 도시락을 싸주는 하숙집 아주머니는 3년간 엄마를 대신했다. 공주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50대 초반의 중년 남성의 얘기다.

충남 공주에 있는 하숙마을 마당. 1970~80년대 향수를 기억하려는 중장년들이 자녀들과 함께 찾아오고 있다. 신진호 기자

충남 공주에 있는 하숙마을 마당. 1970~80년대 향수를 기억하려는 중장년들이 자녀들과 함께 찾아오고 있다. 신진호 기자

충남 공주에는 1970~80년대 추억과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하숙마을'이 조성돼 있다.
공주시 반죽동 제민천변에 자리 잡은 하숙마을은 지난 7월 옛 한일당약국과 인근 가옥을 리모델링해 만든 집이다. 공주시가 도심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학창시절 추억을 회상하려는 40~50대 중·장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주는 전국에서도 유명한 ‘교육도시’로 꼽힌다. 읍·면을 제외하고 시내에만 고등학교·대학교가 10여 개가 있기 때문이다. 공주대(옛 공주사대)와 공주교대를 비롯해 공주사대부고·공주고·공주여고·금성여고·영명고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학교들이다. 이 때문에 공주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읍내 주민 절반이 학생이다”는 말이 회자할 정도였다.

공주 하숙마을 마당에 있는 펌프. 마중물을 붓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지금도 맑고 시원한 물이 솟아 나온다. 신진호 기자

공주 하숙마을 마당에 있는 펌프. 마중물을 붓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지금도 맑고 시원한 물이 솟아 나온다. 신진호 기자

30~40년 전 충남에서 공부깨나 한다는 학생들이 공주로 유학 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부모와 고향을 떠나 하숙과 자취를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시 공주에서는 “쳐야 산다”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하숙을 쳐야 산다”는 말을 줄여 그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공주의 경제활동에 하숙이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새로 조성된 하숙마을은 마당을 중심으로 낮은 지붕의 숙방동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대문 옆 담장에는 ‘하숙마을 보존 담장구조물 설명문’이 세워져 있다. (건물을)모두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짓기보다는 과거의 일부를 남겨둔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공주 하숙마을 입구에 남아 있는 옛 담장 구조물. 구름 모양의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로 모든 건물을 허물면서 담장 일부를 남겨뒀다고 한다. 신진호 기자

공주 하숙마을 입구에 남아 있는 옛 담장 구조물. 구름 모양의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로 모든 건물을 허물면서 담장 일부를 남겨뒀다고 한다. 신진호 기자

옛 담장 윗부분은 소박한 구름 모양의 창이 뚫려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다. 하숙마을 자리에는 일제 강점기 기생집이 있었는데 당시 뚫려 있던 담장의 창을 통해 기생집 내부를 들여다봤다고 한다.

공주 하숙마을을 찾는 한 남성이 아들과 마당에 있는 펌프에서 물을 퍼내고 있다. [공주 하숙마을]

공주 하숙마을을 찾는 한 남성이 아들과 마당에 있는 펌프에서 물을 퍼내고 있다. [공주 하숙마을]

마당에는 사진과 동영상으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교복 소년·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마당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옛집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마당 채와 안채 등 예전에 사용하던 이름이 붙어 있다. 뒤 마당에는 지하수를 퍼 올리는 펌프가 옛 모습 그대로 설치됐다. 마중물만 부으면 언제든 맑고 시원한 물이 솟아 나온다.

어른 대여섯 명이 앉으면 족할 작은 마루를 사이에 두고 문을 마주한 방에 들어서자 낮은 천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방 크기도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밥상을 겸하던 책상을 펴고 친구와 밤새 시험공부를 하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마루 벽에는 당시를 회상할 수 있는 물건들이 걸려 있다.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양희은·박은희·산울림·제1회 대학가요제 등의 앨범 재킷이다. 하숙생들이 많이 접하고 들었을 대중음악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자는 취지라고 한다.
태엽을 감아 돌아가는 괘종시계와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싸주셨던 노란색 양철 도시락도 작품으로 전시됐다.

하숙마을 대청마루 벽에 붙어 있는 1970~80년대 유명 가수들의 앨범 재킷. [사진 공주 하숙마을]

하숙마을 대청마루 벽에 붙어 있는 1970~80년대 유명 가수들의 앨범 재킷. [사진 공주 하숙마을]

하숙마을을 찾은 한 50대 여성은 “조그만 방에서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밤새 수다를 떨던 기억이 난다”며 “그 시절엔 뭐가 그리 좋았는지 3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다음에는 딸아이와 함께 와서 엄마가 학교 다니던 시절의 추억을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하숙마을에는 유독 낮은 지붕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다른 도심에 비해 개발이 덜 된 탓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골목 입구 담 위에 세워진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여고생 모습의 작은 조형물이 가장 먼저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공주시 제민천을 따라 조성된 하숙마을과 하숙촌. 1970~80년대 정취가 그대로 남아 학창시절을 회상하려는 관광객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신진호 기자

공주시 제민천을 따라 조성된 하숙마을과 하숙촌. 1970~80년대 정취가 그대로 남아 학창시절을 회상하려는 관광객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신진호 기자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금세라도 담 너머로 사춘기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골목 안에는 집집마다 건축 연도와 당시의 소소한 일들이 깨알처럼 적혀 있다. 하숙마을의 역사를 남겨 놓기 위해서라고 한다.

공주 하숙마을 뒤편 골목 입구에 설치된 교복을 입은 여고생 모습의 작은 동상. 신진호 기자

공주 하숙마을 뒤편 골목 입구에 설치된 교복을 입은 여고생 모습의 작은 동상. 신진호 기자

하숙마을 대문을 나오면 제민천 건너편에 교복을 입은 남녀학생 모습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옆에는 ‘풀꽃으로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의 시가 담을 따라 길게 쓰여 있다. 벽화와 시는 길이가 34m에 달한다. 마을 곳곳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교복을 입고 학교를 오가던 추억의 공간들이 마련돼 있다.

사춘기 여학생들이 모여 수다를 떨던 분식집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하루 세끼만으로는 모자랐던 학생들에게 라면과 떡볶이를 팔던 분식집은 하루 한 번은 꼭 들러야 할 방앗간이었다. 얼마 전 TV에 소개된 중앙분식은 주말이면 서울과 대전에서 손님이 찾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하숙마을 주변에는 1930~40년대 지어진 공주제일교회나 중동성당 등 이름난 근대 건축물과 옛 서점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숙마을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엔 유관순 열사가 다녔다는 영명고(당시 영명여학교)가 있다. 영명고 건물 외벽에는 1913년 영명여학교 보통과 1회 졸업생 사진이 걸려 있다. 저고리를 입은 10대 소녀 6명의 100여 년 전 사진이다.

세계문화유산인 공산성과 공주역사영상관, 금강철교, 문화예술촌, 충남역사박물관 등도 하숙마을과 지척이다. 모두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하숙마을 인근에는 공주지역 예술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이미정 갤러리도 자리 잡고 있다.

공주 하숙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공산성까지 다녀오는 밤마실에 나서고 있다. [사진 공주 하숙마을]

공주 하숙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공산성까지 다녀오는 밤마실에 나서고 있다. [사진 공주 하숙마을]

하숙마을은 2인실과 3인실 7개로 이뤄졌다. 2인실은 7만원, 3인실은 8만원이다. 금요일과 토요일에 숙박하면 ‘공산성 밤마실’이라는 특별 이벤트에 동행할 수 있다. 제민천을 따라 공산성까지 이동한 뒤 야경을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공산성 야경은 공주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라고 한다.

하숙마을 김효자(41·여) 촌장은 “공주는 한때 학생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육 도시였다”며 “학창시절 하숙이나 자취를 했던 분들이 자녀와 함께 오셔서 밤새 그때 추억을 회상하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공주=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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