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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람의 미주알고주알] 바둑은 왜 '직관'이 없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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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알고주알(바둑알)'은 바둑면에 쓰지 못한 시시콜콜한 취재 뒷이야기를 다루는 코너입니다.


지난 11~12일 열린 2017 대한민국 바둑대축제 현장. 이세돌 9단과 박정환 9단이 무대에서 대국하는 모습을 바둑 팬들이 지켜보고 있다. 정아람 기자

지난 11~12일 열린 2017 대한민국 바둑대축제 현장. 이세돌 9단과 박정환 9단이 무대에서 대국하는 모습을 바둑 팬들이 지켜보고 있다. 정아람 기자

지난 11~12일, 이틀 동안 경기도 화성시 동탄여울공원에서 2017 대한민국 바둑대축제가 열렸다. 이 축제는 바둑계에서 보기 드문 행사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둑 팬들이 프로기사의 대국을 '직관'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세돌 9단과 박정환 9단, 최정 8단과 오유진 5단이 야외무대에 올라 대결을 펼쳤고, 바로 옆에선 공개 해설이 진행됐다. 바둑 팬들은 마치 야구 경기나 콘서트를 관람하듯 정상들의 대결을 '직관'했다.

한국의 바둑 인공지능 돌바람과 대결을 펼치고 있는 박정환(오른쪽) 9단 [사진 한국기원]

공개 해설 장면 [사진 한국기원]
화성대축제의 일환으로 펼쳐진 챌린지 매치 대국 장면 [사진 한국기원]

특히 축제 기간 펼쳐진 '챌린지 매치'는 야외에서 진행된 최초의 프로 기전이었다. 이틀간 38명의 프로기사가 대회에 출전해 풀밭 위에서 바둑을 뒀다. 바둑 팬들은 대국장을 돌며 관심 있는 프로기사들의 대국을 '직관'할 수 있었다.

'직관'은 스포츠 경기에서 널리 퍼진 문화다. 팬들은 현장을 찾아 선수들의 움직임과 표정 등을 보며 생생한 분위기를 만끽한다. 사실, 경기 내용만 놓고 보면 TV 중계를 보는 게 더 알기 쉽다. 그런데도 스포츠 팬들이 현장을 찾는 이유는 직접 봐야 느껴지는 생동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는 바둑은 아직 '직관' 문화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프로 기전은 외부인의 입장이 철저하게 통제된 실내에서 엄숙하게 진행된다. 기자들만 대국 개시 이후 10분 정도 사진을 찍기 위해 대국장에 출입할 수 있다. 10분이 지나면 대국자와 기록원, 계시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국장을 나가야 한다.

2017 농심신라면배 대국장 앞에 있는 판넬. 정아람 기자

2017 농심신라면배 대국이 시작되는 순간을 기자들이 촬영하고 있다. 정아람 기자
2017 농심신라면배 대국장 장면 [사진 한국기원]

물론 중요 대국은 방송에서 대국 현장을 생중계한다. 하지만, 방송으론 현장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 정말 드물게 '직관' 경기가 열리기도 하지만, 승패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벤트 대국이 대부분이다. 그마저도 팬들의 갈증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취재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직관'에 대한 바둑 팬들의 갈증을 느낄 때가 많다. 직관 기회가 거의 없다 보니 프로기사를 만나기 너무 어렵다고 말하는 팬들도 있다. 어쩌다 만날 기회가 생겨도 프로기사는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라는 선입견이 쌓여 소통이 쉽지 않다. 프로기사나 바둑 팬 모두에게 슬픈 일이다.

물론 바둑에 '직관'을 도입하기에는 여러 현실적인 장벽이 있다. 국내외 결승전 같은 중요 대국을 '직관' 경기로 치르면, 프로기사들은 달라진 환경에 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공개 해설을 함께 진행할 때, 선수들이 소음으로 방해받지 않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장소 섭외나 행사 비용 등 추가적 부담도 따른다.

관중 동원에 성공한 ‘리그오브레전드(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의 생중계 현장.

관중 동원에 성공한 ‘리그오브레전드(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의 생중계 현장.

또한 직관 문화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대국 해설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짜서 볼거리가 많은 축제로 만들어야 한다. e스포츠 가운데 성공적으로 '직관' 문화를 만든 '롤드컵'이 참고할 만한 사례다. 이렇듯 바둑에 새로운 직관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고민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직관' 경기가 절실히 필요한 건 바둑과 대중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둑은 복잡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데, 스타와의 접근성까지 떨어지면 결국 대중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아직 희망은 있다. 여전히 프로기사를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오고, 같이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받고 싶어 줄을 서는 바둑 팬들이 있다. 하지만 아직 이런 바둑팬들을 배려하는 환경은 제대로 조성돼 있지 않다.

팬이 없는 스포츠 종목은 살아남을 수 없다. '직관'은 바둑이 진정한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돌파구가 필요한 지금 한국 바둑계를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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