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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모바일 결제로 꽃핀 ‘핀테크’, 중국에선 일상이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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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의 4차 산업혁명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을 자부해왔다. 하지만 핀테크(금융기술)ㆍ모바일 분야에선 그런 자부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한국이 뛴다면 중국은 날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상하이 푸둥을 끼고 도는 황포강 유람선을 탈 때였다. 유람선 터미널에서 목격한 첨단 전자안내판 시설에 놀랐다. 시시각각 공지되는 안내에 따라 배는 한 치의 오차 없이 정시 출발했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로부터 1년여 만에 다시 찾은 중국은 4차 산업혁명의 전시장으로 변했다. 핀테크에 기반을 둔 모바일 사회가 한층 생활 속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중국 광군제 모바일 결제 91% #기존 산업 바꾸는 게임 체인저 #은행 결제중개 기능 필요 없고 #물류 혁명으로 경제 혁신 가속 #한국, 규제에 손발묶여 뒤처져 #액티브 X 시대 접고 도약해야

이번에는 중국 남부 푸젠 성 샤먼시를 돌아봤다. 그 사이 중국은 더 촘촘한 디지털 사회를 구축하고 있었다. 수려한 수상록으로 유명한 임어당(林語堂)이 살았던 구랑위로 건너갈 때였다. 이미 입국 상태인데도 신분증을 제시해야 했다. 승선 티켓에는 영문 이름과 여권번호까지 기재했다. 중국의 디지털 시스템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걸 실감했다.

더 놀라운 건, 한국에선 4차 산업혁명이 규제에 발목 잡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데 비해 중국에선 이미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안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가시적인 현상은 핀테크와 모바일의 결합이다. 중국 어딜 가도 결제 때 현금보다 모바일 페이가 일상화했다. 가는 곳 어디서나 그렇다. 계산대 앞 고객은 스마트폰을 내밀고 가게 종업원은 전자결제 리더기를 들이댄다. 지갑을 꺼내 돈을 세거나 잔돈을 거스르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에선 모바일 결제가 일상화됐다. 번화가 점포에서 고객이 물건을 구입하고 스마트폰을 꺼내들면 가게 점원이 전자결제 리더기로 순식간에 계산을 끝낸다. [중앙포토]

중국에선 모바일 결제가 일상화됐다. 번화가 점포에서 고객이 물건을 구입하고 스마트폰을 꺼내들면 가게 점원이 전자결제 리더기로 순식간에 계산을 끝낸다. [중앙포토]

지난 11월 11일 중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로 불리는 광군제(光棍節ㆍ독신자의 날)는 중국 핀테크ㆍ모바일의 위력을 한껏 과시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는 광군제 당일 28조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 징동까지 합하면 매출액이 50조원에 달한다. 광군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의 열기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한국은 광군제 구매 대상 국가 5위를 기록했다. 이만 하면 괜찮은 거 아니냐 싶지만, 일본ㆍ미국에 이어 호주ㆍ독일에 밀려 지난해보다 2단계 내려 앉았다. 미래는 밝지 않아 보인다. 지금처럼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집단으로 몰려오고 알리바바를 통한 한국 제품 역직구가 늘어나기만 바라는 천수답 구조로는 희망이 없다. 기껏해야 알리바바나 징동에 들어가는 수많은 벤더의 하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모바일 앱은 영어와 한국어를 비롯해 16개 언어를 제공해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있다. 김동호 기자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모바일 앱은 영어와 한국어를 비롯해 16개 언어를 제공해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있다. 김동호 기자

그런 불길한 예감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 중국과 우리의 핀테크ㆍ모바일 기술 격차다. 말로만 듣던 알리바바의 위력을 체험하기 위해 스마트폰에서 알리바바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았다. 우리가 얼마나 우물 안 속 개구리인지 알아보는 데는 몇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우선 제품의 구색이 방대했다. 한마디로 없는 게 없다. 무엇보다 세계의 공장답게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앱 설정에 들어가면 영어는 물론 한국어ㆍ일본어ㆍ러시아ㆍ스페인어ㆍ아랍어 등 16개 외국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언어 장벽까지 허물고 있었다.

알리바바의 해외 이용자는 2012년 1월 95만 명이던 것이 올해 7월 1억 명을 돌파할 정도로 급팽창하고 있다. 알리바바를 이용한 30대 한국인은 “필리핀이나 일본 사람들의 구매 소감이 자동 번역되니까 구매 결정을 할 때 좋은 참고가 된다”고 말했다. 중국이 모바일 쇼핑의 천국이 된 건 우연이 아니다. 한국 업체도 물론 외국어 지원이 되지만 영어ㆍ중국어ㆍ일어 등 3~5개 정도다. 이런 우물 안 개구리식 전자상거래 비즈니스는 갈수록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이 중국에만 의존하는 천수답 방식이라면 올해 5위로 떨어진 한국 제품의 판매 순위가 내년에 더 떨어질지 모른다. ICT 강국이라고 하면서도 규제에 손발이 묶여 알리바바 같은 글로벌 전자상거래업체를 만들어 내지 못한 결과다.

오픈 플랫폼을 활용한 유망 핀테크 기업 기술을 소개하는 제 19차 핀테크 데모데이. 참가자들이 큐딜리온이 개발한 중고거래 안전결제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우상조 기자

오픈 플랫폼을 활용한 유망 핀테크 기업 기술을 소개하는 제 19차 핀테크 데모데이. 참가자들이 큐딜리온이 개발한 중고거래 안전결제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우상조 기자

30년 전만 해도 칫솔 없이 살던 사람이 많던 중국이 우리를 뛰어넘은 핀테크ㆍ모바일 강국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거대한 대륙에 유선망 구축에 어려움을 겪던 중국은 유선망을 건너뛰고 바로 모바일 시대로 진입했다. 여기에 핀테크까지 결합하자 중국 경제는 날개를 달았다. 연간 대졸자 740만 명 중 창업자가 10% 가까운 70여만 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한국의 한 해 대졸자보다 많은 인원이 핀테크 등 신산업에서 ‘마윈’의 꿈을 키우고 있다.

정유신 핀테크지원센터장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60% 수준이지만, 핀테크 시장 규모는 이미 미국을 뛰어넘었다”고 추산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모바일 기술이 태어났지만 정작 꽃을 피우는 곳은 중국이라는 얘기다. 이번 광군제에서 모바일 결제 비중은 90%를 넘어섰다.

핀테크에 기반한 모바일 쇼핑이 위력적인 것은 단순히 상품을 모바일로 주문하고 결제를 끝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 산업구조를 완전히 바꿔놓는 게임체인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모바일 결제는 은행 결제기능을 건너뛰는 것은 물론 다양한 연계 서비스가 가능하다. 나아가 스마트폰으로 수집한 정보는 곧장 빅데이터로 활용된다. 거래 실적은 바로 신용과 직결되므로 정확한 마케팅이 가능해진다.

핀테크를 활용한 모바일 결제가 상거래 관행까지 바꾸어놓고 있다. [중앙포토]

핀테크를 활용한 모바일 결제가 상거래 관행까지 바꾸어놓고 있다. [중앙포토]

알리바바가 전자상거래 시장을 평정한 이후 2015년부터 인공지능(AI)ㆍ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도 빅데이터의 위력을 알아보면서다. 나아가 알리바바는 데이터 기술(DT)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마윈 회장은 지난 10월 저장성 항저우에서 클라우드 개발자들의 축제 윈치대회를 열고 “AIㆍ IoTㆍ양자컴퓨팅ㆍ머신러닝에서 3년간 15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중국을 비롯한 세계 7개국에 다모아카데미를 설립하겠다는 구상도 공개했다.

한국은 아직도 액티브X에 발목이 잡혀 있다. 액티브X는 보안ㆍ결제ㆍ인증에 쓰이는 기술이지만 해외에서는 오히려 보안이 취약하다는 이유로 거의 쓰지 않는다. 해외 소비자가 한국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결제할 때도 걸림돌이다. 박근혜 정부의 핀테크 육성 정책도 액티브X에 발목 잡혀 고전했다. 그런데 국내 100대 웹사이트 중 44개는 여전히 액티브X를 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액티브X  퇴출을 선언했지만 이렇게 느려서는 중국과의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계의 공장답게 다양한 상품 구색을 갖추고 있는 중국 알리바바 모바일 앱 . 김동호 기자

세계의 공장답게 다양한 상품 구색을 갖추고 있는 중국 알리바바 모바일 앱 . 김동호 기자

알리바바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의 물류서비스 플랫폼 차이냐오넷을 통해 중국 전역의 지역 파트너와 손잡고 물류혁신까지 일으키고 있다. 주요 도시 간에 최소 사흘 걸리던 택배를 하루로 단축하고 있다. 중국 최대 택배기업 순펑(順豊)은 비행기 34대를 보유한 거대 물류망을 확보했다. 1978년 덩샤오핑이 기치를 내건 개혁ㆍ개방의 바람이 핀테크로 꽃피고 있다. 선진국은 물론 인도ㆍ캄보디아에서도 신용카드를 건너뛰고 곧장 모바일 결제로 옮겨간다. 그런데 한국은 신용ㆍ체크카드 결제비율이 74%에 달한다. 더는 시간이 없다. 하루빨리 우물 안 개구리에서 탈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