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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술 130여 종 집합시킨 ‘알콜 천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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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호 28면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40> 민속주점 ‘산울림1992’

‘전통주 판이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제품들의 공통분모는 우리 농산물과 누룩, 물을 재료로 충분한 발효기간을 거쳐 프리미엄화를 꾀했다는 것이다. ‘주정’ ‘감미료’ 등이 일체 들어가지 않는다.

전국 인기 주점 13곳의 판매 순위를 직접 조사·집계한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상위에 가장 많이 랭크된 막걸리는 땅끝마을 해남의 해창 막걸리와 정읍의 송명섭 막걸리. 이 중 4곳에서 1위를 차지한 해창 막걸리의 사례는 아주 뜻 깊다. 아스파탐을 빼버리고 무감미료 선언과 함께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 방한시 건배주로 선정된 ‘풍정사계 춘’는 전통주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켰다. 찹쌀에 전통 방식으로 직접 빚은 누룩, 물로 100일 동안 숙성시켜 만든다. 역시 인공첨가물이 가미되지 않는다. 최근 우리술 품평회에서 약주 부문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맛을 인정받고 있다. 예약 주문을 포함한 모든 술이 현재 품절 상태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술들을 어디에서 맛볼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전통주를 파는 곳은 230여 종을 갖춘 백곰막걸리(압구정 로데오 인근). 뒤를 잇고 있는 곳은 마포구에 있는 ‘산울림1992’로 130여 종이 있다. 오늘 소개할 곳이다.

옥호는 근처 산울림 소극장에서 따왔다. 1992는 민속주점이었던 산울림이 문을 연 해를 뜻한다. 오너 겸 셰프인 홍학기(44) 대표는 첫 주인은 아니다. 젊은 시절 벤처사업·식당·무역·당구장 아르바이트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술을 즐겼던 그가 오랫동안 단골로 찾았던 곳이 ‘산울림’이었고,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겠느냐?”는 주인 노부부의 제안을 수락한 게 2003년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외식 업계에서 민속주점은 젊은 층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뻔한 메뉴에 뻔한 술을 파는 건 꾸준한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다.

고심 끝에 그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전국 각지의 좋은 술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기로 하고 지난해 말 리뉴얼에 나섰다. 먼저 오픈 키친과 바 좌석을 도입해 민속주점 형태의 공간과 미묘한 조화를 이뤘다. 주종도 확 늘렸다. 현재 막걸리 35종, 약주 28종, 증류식 소주 및 증류주 45종을 구비했다. 가격도 6000원대 막걸리부터 40만원대 고급 증류주까지 다양하다.

“재고 관리가 쉽지 않죠?”라는 질문에 그는 씩 웃었다.
“직원들이 애를 많이 먹고 있죠. 하지만 손님들은 술 천국이 되었다고 좋아하세요. 매출도 전년 대비 2.5~3배 늘었습니다. 술만 차별화해도 민속주점이 잘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희를 보고 많은 주점들이 좋은 술을 취급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요. 앞으로 20여 종을 더 늘려 150개 품목을 구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주종이 아무리 많다 해도 주점의 기본은 음식이다.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해온 부모님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은 홍 대표가 직접 요리를 총지휘한다. 크게 반상 메뉴와 단품 메뉴다. 반상 메뉴는 제철 안주를 원형의 소반(小盤)에 올려내 주안상을 대접받는 귀한 손님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가격별 또는 원하는 메뉴로 반상에 올릴 음식을 구성할 수 있다.

인기 메뉴를 묻자 홍 대표는 문어숙회·새우장·꼬막장·떡갈비와 도가니탕을 추천했다. 문어 숙회는 대왕 문어를 살짝 삶아낸 뒤 유자 폰즈소스, 절인 치아씨드를 뿌려냈다. 문어의 보들 야들한 식감에 상큼 소스를 더했다. 새우장은 고추장에 5일 이상 재워둔 새우가 나온다. 간장 새우와 달리 쫀득하고 찰지다. 끓여서 매운맛을 중화시킨 머스타드 씨앗은 마치 새우알 같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식감이 매력적이다.

꼬막장은 꼬막을 고추장에 숙성시켜 감칠맛을 더했다. 탱탱하고 은근하게 짭짤한 맛이 절로 술을 부른다. 겨울 메뉴인 도가니탕은 간장 소스와 함께 간간하게 끓여냈는데, 쫀쫀한 질감이 좋다. 떡갈비는 돼지고기와 쇠고기, 수삼, 떡을 다진 뒤 간장소스에 재워 숙성시킨 뒤 오븐에 구워냈다. 하나만 먹어도 은근 배가 부를 정도로 두툼하다. 여기에 함께한 술은 능이주. 능이버섯으로 빚어낸 약주로 음식과의 페어링이 아주 좋다.

음식과 술이 잘 맞으면 흥이 두 배로 오른다. 감자전에 수비드 된장 맥적, 등갈비 들깨탕에 막걸리로 신나게 달렸다. 홍 대표에게 꼭 맛보아야 할 프리미엄 전통주 10종을 추천받았다. ‘스스로 그 향기에 기뻐하다’는 의미를 담은 ‘자희향’, 홍국쌀을 사용해 붉은빛을 띄어 파티 느낌 내기 좋은 ‘술취한 원숭이’, 허균이 지은 조선 최초의 음식 품평서의 이름을 딴 ‘도문대작’, 강원도 홍천의 특산물인 단호박을 넣어 발효시켜 은은하게 단 ‘만강에 비친 달’. 제주도 오메기떡으로 빚은 ‘오메기술’, ‘전통주 연구 개발원’에서 삼양주 기법으로 만든 신상 ‘청진주’, 파인다이닝 셰프들이 선호하는 ‘능이주’. 충남 무형문화재 제7호로 부드럽고 진한 감칠맛이 일품인 ‘계룡백일주’,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녹두장군 전봉준이 마시고 원기를 회복했다는 ‘죽력고’, 고구마의 향과 쌀 소주의 감칠맛이 담긴 ‘려’까지!

이 전통주 10종은 12월 말까지 산울림1992에서 10% 할인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프로모션 술을 3종 이상 주문하면 오너 셰프의 간단한 요리 서비스도 즐길 수 있다. 요즘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풍정사계도 일정량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맛이 궁금한 분들은 서두르는 게 좋겠다.

이지민 : ‘대동여주도(酒)’와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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