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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살만 “부패 명단 200명 확보, 국고 환수금 108조원 달할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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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빈 살만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개혁가인가, 집권을 위해 ‘피의 숙청’을 지휘하는 야심가인가.

사우디 왕세자, NYT와 인터뷰 #왕자들 감옥 안 가려면 돈 내놔야 #체포 95%가 재산 국고 환수 동의

사우디 차기 왕권을 예약한 무함마드 빈 살만(32·사진) 왕세자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단행된 왕족 무더기 연금과 개혁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23일(현지시간) NYT 보도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는 그가 설립한 반부패위원회가 이달 초 왕자 11명과 전·현직 장관 등 수십 명을 무더기로 체포한 것이 아버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81) 국왕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기 위한 숙청 작업이 아니냐는 질문에 “우스꽝스러운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이미 왕위 승계는 기정 사실이며, 대부분의 왕족으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았다면서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부패로 신음하고 있다. 매년 정부 재정의 약 10%가 부정부패로 증발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부패와의 전쟁이 번번이 실패했던 것에 대해 “전부 바닥(잔챙이)부터 훑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자신이 주도하는 ‘부패와의 전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또 부패 척결은 알사우드 국왕이 2015년 왕위에 오르면서 맹세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왕세자는 “아버지는 이런 부패 수준으론 사우디가 G20 지위를 유지하지도 성장하지도 못한다고 봤다”며 “2015년 초 그가 내린 첫 명령은 고위직 부패에 관한 모든 정보를 모으라는 것이었고, 2년 만에 약 200명으로 추려졌다”고 말했다.

왕세자에 따르면 이 같은 데이터가 모두 준비된 뒤 사우디 검찰이 행동했고, 기소된 왕자나 억만장자들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감옥에 가거나, 부정하게 모은 돈을 국고로 환수시키거나. 왕세자는 “우리가 모은 자료를 보여주자 (기소된 왕자나 억만장자의) 95%가 (국고 환수에) 동의했다. 약 1%가 결백을 증명해 무죄 방면됐고, 4%는 결백하다면서 변호사를 대동해 법정투쟁을 벌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왕이 검찰관을 해고할 수는 있지만 검찰이 하는 일에 개입할 수는 없다”며 이번 검찰 수사가 독립적임을 강조했다. 또 국민들이 일자리를 뺏기지 않게 어떤 기업도 파산하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왕세자는 특히 “(반부패 수사에 따른) 국고 환수금은 1000억 달러(약 108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방은 ‘피의 숙청’이라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왕세자를 인터뷰한 NYT의 칼럼니스트 프리드먼은 3일간 사우디에서 반부패 드라이브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썼다.

왕세자는 내년부터 여성의 운전을 허가하는 등의 개혁·개방과 이슬람 온건화 작업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이슬람을 ‘재해석’하는 게 아니라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언자 무함마드(571~632) 시절에는 뮤지컬 극장도 있었고, 남녀가 함께 어울렸으며, 기독교와 유대교를 존중하는 문화도 있었다면서다.

그는 1979년 이슬람 혁명의 여파로 사우디가 강경 이슬람 세력에게 흔들린 지난 30년이 오히려 비정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왕세자는 “메디나(예언자의 도시)의 첫 상업 판사는 여자였다”며 "(원리주의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예언자는 무슬림이 아니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NYT는 종교적·경제적 변혁과 첨단 기술을 이야기하는 젊은 지도자가 나타나면서 젊은 세대들이 활력을 얻었다고 진단했다. 9·11 테러 이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 혹은 석기시대 사람 취급을 받는다며 자조했지만 이제는 사우디인으로서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왕세자는 인터뷰에서 "인생은 너무 짧고,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내 눈으로 그걸 보길 열망한다. 그래서 서두르게 된다”며 개혁 작업을 가속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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