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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다시보기] "강남의 무교동 낙지? 맛은 그대로네"

중앙일보

입력

맛대맛 다시보기 31. 무교동 유정낙지(압구정점)

무교동 유정낙지 압구정점 #곱게 빻은 고춧가루가 맛 비결 #낙지탕수육·튀김 등 신메뉴도

매주 전문가 추천으로 식당을 추리고 독자 투표를 거쳐 1·2위집을 소개했던 '맛대맛 라이벌'. 2014년 2월 5일 시작해 1년 동안 77곳의 식당을 소개했다. 1위집은 '오랜 역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집이 지금도 여전할까, 값은 그대로일까. 맛대맛 라이벌에 소개했던 맛집을 돌아보는 '맛대맛 다시보기', 31회는 낙지(2014년 5월 28일 게재)다.

청양고추로 매운 맛을 내는 '무교동 유정낙지' 압구정점의 낙지볶음. 김경록 기자

청양고추로 매운 맛을 내는 '무교동 유정낙지' 압구정점의 낙지볶음. 김경록 기자

"장인(김수만)·장모님이 1965년 서울 무교동에서 가게를 열면서 '정이 있는 곳'이란 뜻으로 유정(有情)이란 상호를 쓰셨대요. 10년쯤 운영하다가 재개발 때문에 강남으로 이전하셨어요. '무교동' 낙지집이 '강남'으로 갔으니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더라고요."
지금 무교동 유정낙지 압구정점을 운영하는 사위 안범섭(49) 사장의 말이다. 강을 건넌 유정낙지는 강남역 뉴욕제과(현 에잇세컨즈 매장) 쪽에 자리 잡았다. 그곳에서 10여 년 더 장사를 한 뒤 김수만 당시 사장은 막내동생에게 운영권을 넘겼다. 그러다 2008년 운영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안 사장은 그로부터 3년 후인 2011년 프랜차이즈의 하나로 압구정점을 열었다. 현재 유정낙지라는 이름을 쓰는 식당은 수십 곳이지만 원조 유정낙지와 관련있는 사실상 직영점은 이곳 압구정점 한 곳뿐이다. 안 사장은 "50년 넘게 사랑받은 유정낙지의 전통을 가족 중 누군가 한 명은 이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2011년 가게를 열었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원조의 바통을 이어받은 무교동 유정낙지 압구정점. 김경록 기자

유일하게 원조의 바통을 이어받은 무교동 유정낙지 압구정점. 김경록 기자

주문 받은만큼만 바로 양념 만들어

안 사장은 "50년 전 맛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50년 전 장인이 하던 그대로 하기 때문이다. 우선 주재료인 낙지는 천일염에 한 시간 동안 치대 겉은 탱글탱글하고 식감은 더 쫄깃하게 만든다. 또 고춧가루는 밀가루처럼 곱게 빻아 사용한다.
"낙지 볶을 때 고춧가루가 너무 커서 잘 묻지 않더래요. 맛도 좋지 않고요. 그래서 그걸 두번 세번 계속 더 빻아 곱게 만든거죠. 써보니 양념이 잘 배고 맛도 더 좋아졌다더군요. 이때부터 10번 이상 빻은 고운 고춧가루만 쓰기 시작하셨대요."

10번 이상 빻아 밀가루처럼 고운 고춧가루만 사용한다. 김경록 기자

10번 이상 빻아 밀가루처럼 고운 고춧가루만 사용한다. 김경록 기자

여기에 한 가지 더 양념을 절대 미리 만들어두지 않는 것도 장인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딱 그만큼만 바로 요리를 한다. 손님이 몰릴 때면 음식 나오는 시간이 오래 걸려 원성을 듣기도 하지만 이 원칙을 꼭 지킨다. 그래야 옛 맛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차림도 마찬가지다. 그때 정취를 내려고 아직 반찬으로 단무지를 준다. "반찬이 별로 없어 단무지 하나를 내놓았는데 손님들이 그 단무지를 낙지볶음 양념에 넣고 싹싹 긁어서 먹곤 했다"는 장모의 얘기를 숱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장인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사람이 오면 간혹 음식을 그냥 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 종로통에서 학생끼리 싸움이 나면 달려가서 해결해 주기도 할 만큼 정이 넘쳤다. 주변에서 "퍼주다 망하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안 사장은 아직도 "옛날에 정말 감사했다"며 찾아오는 단골이 많다"고 말했다.

유정낙지에선 소스를 미리 만들어 놓지 않고 손님이 주문하면 살짝 데친 낙지에 고춧가루를 넣어 바로 볶는다. 김경록 기자

유정낙지에선 소스를 미리 만들어 놓지 않고 손님이 주문하면 살짝 데친 낙지에 고춧가루를 넣어 바로 볶는다. 김경록 기자

맵지 않은 신메뉴도 개발

옛 방식을 답습만 하는 건 아니다. 시대에 맞게 가게 운영에 몇 가지 변화를 줬다. 핵심은 낙지 요리에 대한 선인겹을 깨는 것이다.
"낙지라고 하면 다들 매운 음식의 대표 이렇게만 생각하잖아요. 그걸 좀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매운 맛 강도를 좀 줄였어요.우리집은 매운맛 내려고 캡사이신 소스 같은 건 안써요. 오로지 청양고추 비율만 조절해요. 그래서 단번에 확 매운맛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은근한 매운맛이 나요. 그런데 또 그게 맵지만은 않고 약간 단맛도 나요. "
신메뉴도 개발했다. 낙지탕수육과 낙지튀김이다. 낙지는 보양식으로 꼽힐 만큼 몸에 좋은 음식이지만 매워서 못 먹는다는 사람들이 많은 게 늘 안타까워 내놓은 메뉴다. 또 어른들만 먹는 음식이라는 선입견을 깨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무교동 유정낙지 압구정점의 '낙지탕수육'. [사진 무교동 유정낙지 압구정점]

무교동 유정낙지 압구정점의 '낙지탕수육'. [사진 무교동 유정낙지 압구정점]

"오징어튀김은 있는데 왜 낙지튀김은 없을까 생각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다들 비싸서 없는 게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음식이 아무리 비싸도 맛만 있으면 먹는 시대잖아요. 기대반 호기심반으로 만들어봤죠. 그런데 정말 맛있는 거예요."

유정낙지는 낙지를 섭씨 4~5도로 보관한다. 김경록 기자

유정낙지는 낙지를 섭씨 4~5도로 보관한다. 김경록 기자

튀김과 탕수육엔 낙지 다리 중에서도 굵은 부위만 쓴다. 그래서인지 쫄깃한 낙지 식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안 사장은 "요리에 따라 사용하는 낙지의 종류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회로 먹는 산낙지는 다리가 가장 가늘고 작은 것을 쓴다. 생으로 먹는 낙지가 두꺼우면 식감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전골은 많이 끓여야 하기 때문에 가장 큰 낙지가 좋다. 샤브샤브식으로 먹는 연포탕에는 중간 크기 낙지가 적당하다. 하나 더, 냉동 낙지를 고를 땐 색이 하얗고 뽀얀 걸 골라야 한단다. 섭씨 4~5도씨가 잘 유지된 곳에서 보관됐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는 "낙지는 양식이 안되기 때문에 냉동낙지도 다 자연산"이라며 "적정 온도에서 보관만 잘 했다면 냉동낙지라도 몸에 좋다"고 설명했다.

장근석 덕에 일본 손님 늘어

유정낙지 압구정점 매장 내부의 모습. 김경록 기자

유정낙지 압구정점 매장 내부의 모습. 김경록 기자

맛대맛에 소개한 후 3년이 지났다. 변한 건 크게 없지만 일본인 손님이 크게 늘었다. 2016년 8월 한류스타 장근석이 이곳에서 낙지 요리를 먹는 장면이 일본TV의 한 연예프로그램 방영된 후다. 장근석의 팬뿐 아니라 일본인 관광객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가격은 3년 전 그대로다. 다른 체인점들이 볶음 가격을 2000원 정도 올렸지만 안 사장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경기가 어려워 다들 힘들다는데 낙지값을 올리면 올리면 손님들이 부담을 느낄 거 같아서요. 게다가 전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더 노력해서 더 맛있는 낙지 요리를 만들어야죠. "

낙지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파전. 김경록 기자

낙지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파전.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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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메뉴: 낙지볶음(2인·2만원), 낙지탕수육(2만5000원), 낙지튀김(2만원) ·개점: 1965년(안범섭 사장이 압구정점 낸 건 2011년) ·주소: 강남구 논현로 163길 10(신사동 570-6) ·전화번호: 02-543-3037 ·영업시간: 오전 11시~오전 5시(연중무휴) ·주차: 불가(주변 유료 주차장 이용)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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