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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초겨울 한라산이 안겨준 행운의 선물 상고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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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영실매표소에서 윗세오름으로 향하는 도중에 만난 상고대. [사진 하만윤]

영실매표소에서 윗세오름으로 향하는 도중에 만난 상고대. [사진 하만윤]

한라산에 가려면 짧게는 몇 주, 길게는 수개월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제주에 산다면야 상관없다. 타지에 살면 비행기 티켓과 숙소 등을 예약해야 한다. 필자는 동호회 회원들과 석 달 전에 등산을 계획했다. 금요일 저녁 각자 편한 시간에 도착키로 하고, 숙소는 공항 픽업 서비스와 한라산 등반 지점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하만윤의 산 100배 즐기기(10) #강품으로 백록담 포기하고 영실-어리목으로 코스변경 #윗세오름의 상고대, 안개 낀 선작지왓 등 진풍경 만끽

금요일, 직장에 반차를 내고 정오 무렵 공항으로 향했다. 제주도는 항상 변화무쌍하다. 날씨부터 그렇다. 제주도에 먼저 도착한 일행 몇이 날씨가 좋다며 인증샷을 올렸는데, 필자가 제주공항에 내린 오후 5시 께 날이 꽤 흐렸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풀고 먼저 도착한 일행 몇 명과 제주 동문 시장으로 향했다. 잠시나마 육지에서 섬으로 여행 떠난 기분을 내는 것도 괜찮으리라. 시끌벅적한 시장통 가게 한 편에서 제주도 생고기로 저녁 겸 반주를 했다. 저녁엔 게스트하우스 내 식당에서 동호회 창립 1주년 축하 자리도 마련했다. 그래도 다음날 산행을 위해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제주 동문시장에서 일행과 함께 저녁 겸 반주를 했다. 제주 생고기는 언제나 진리다. [사진 하만윤]

제주 동문시장에서 일행과 함께 저녁 겸 반주를 했다. 제주 생고기는 언제나 진리다. [사진 하만윤]

강풍으로 원래 산행코스 변경 

당일 아침, 역시 제주도는 변화무쌍하다. 로비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일행에게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초속 10m가 넘는 강풍이 불어 백록담으로 오르는 코스들이 대부분 통제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쉬운 마음은 접어두고 백록담까지 오르려던 산행코스를 영실-윗세오름-어리목으로 변경했다. 등산 다니다 보면 시시각각 바뀌는 현지 기상조건 때문에 코스를 변경하는 일이 다반사다. 행복해지자고 오르는 일이니 언제나 우선순위는 안전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한 아침이 제법 푸짐하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해야 체력을 안배하기에 좋다. [사진 하만윤]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한 아침이 제법 푸짐하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해야 체력을 안배하기에 좋다. [사진 하만윤]

숙소에서 영실 입구까지 40분 남짓 차로 이동했다. 누구 하나 입 밖으로 내진 않았으나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며 내심 아쉬웠을 것이다. 다행히 어리목을 지날 즈음 단풍의 절정을 만끽하는 것으로 그 마음을 조금 덜었다. 그즈음 어리목은 가을과 겨울이 공존했다. 이제야 제 빛깔 드러내며 울긋불긋 불타는 나무들 사이사이, 이미 바싹 말라 제 색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나무가 숱했다. 아무렴 어떠랴. 계절을 비끼지 않은 단풍은 그대로 아름다웠다.

해발 1,280m에 서있는 영실 표지석. 여기서부터 윗세오름까지는 대략 4km. 2시간 정도면 오른다. [사진 하만윤]

해발 1,280m에 서있는 영실 표지석. 여기서부터 윗세오름까지는 대략 4km. 2시간 정도면 오른다. [사진 하만윤]

한라산에는 돈내코, 관음사, 성판악, 어리목, 영실, 어승생악 등 6개의 탐방로가 있다. 이중 영실코스는 가을 단풍의 백미로 꼽힌다. 필자는 백록담 분화구를 보는 것을 제외하면 볼거리나 산행난이도 면에서 영실코스가 제일이지 않을까 감히 추천한다.

한라산 최고 볼거리 ‘영실코스’

입구 삼거리에서 주차장까지 버스로 이동하고 주차장에서 영실 매표소까지의 4km 남짓한 거리를 걸어 오르면 한라산 일원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임을 알리는 입간판과 영실 표지석을 만나게 된다.

영실코스의 시작은 숲길이다. [사진 하만윤]

영실코스의 시작은 숲길이다. [사진 하만윤]

영실코스는 숲길을 따라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 걷다 보면 시나브로 옆으로 계곡을 만나고, 계단을 오르며 기암괴석과 병풍바위를 볼 수 있다. 계단을 올라 구상나무 터널을 지나면 그 끝, 해발 1500m에 드넓은 평원이 펼친다. 고산평원인 ‘선작지왓’이다.

‘작지’는 작은 바위나 돌을 의미하고 ‘왓’은 벌판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라고 하니, 말 그대로 바위들이 서 있는 넓은 벌판이란 뜻이다. 넣고 빼고 할 것 없이 형상 그대로다. 바람이 강하고 날이 흐린 탓에 드넓은 풍경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순 없었으나 윗세오름으로 향하는 길에 내내 만났던 상고대, 상고대 가득한 구상나무 터널, 그 터널을 벗어났을 때 펼친 안개 낀 선작지왓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행운을 뭉텅이로 안은 기분이랄까. 눈 덮인 겨울이어도, 털진달래와 철쭉이 만개한 봄이어도 선작지왓은 좋을 것이다.

구상나무 터널 끝에서 만난 선작지왓. 기대조차 못한 행운이었다. [사진 하만윤]

구상나무 터널 끝에서 만난 선작지왓. 기대조차 못한 행운이었다. [사진 하만윤]

길을 따라 걸어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다.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싶었는데, 강풍과 맞서 걷느라 꽤 힘들었는지 제법 허기가 졌다. 대피소 한편에서 간단히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윗세오름대피소에 있는 기상 실황판. 이날 기온은 영하권으로 떨어졌다. [사진 하만윤]

윗세오름대피소에 있는 기상 실황판. 이날 기온은 영하권으로 떨어졌다. [사진 하만윤]

이제부터는 하산길이다.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만세동산-사제비동산-어리목까지는 완만한 내리막길이니 급할 건 없다. 더욱이 화창한 풍경을 보지 못해 발길이 한동안 대피소 광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성였다. 그 사이, 오름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밀려가고 밀려오길 수차례 반복했다. 그리고 그 끝에 정말 잠깐, 백록담 분화구 벽면이 구름 한 점 없이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미련 없이 서둘러 앞만 보고 내달렸다면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아,역시…. 자연의 조화는 가늠할 길이 없다.

아쉬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몇 분 동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백록담 분화구를 보여준다. [사진 하만윤]

아쉬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몇 분 동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백록담 분화구를 보여준다. [사진 하만윤]

어리목휴게소까지 계속 하산길이다. 넓은 평원을 거쳐 내려가니 산은 도대체 겨울인 적이 있었냐는 듯이 가을 향기를 풍겼다. 이것이 마지막 가을 산행이겠구나. 이제부터는 겨울 산행을 준비해야 함을 새삼 느낀다.

하산길에 만난 어리목. 윗세오름은 겨울이었으나 이곳은 여전히 만추의 한가운데다. [사진 하만윤]

하산길에 만난 어리목. 윗세오름은 겨울이었으나 이곳은 여전히 만추의 한가운데다. [사진 하만윤]

영실을 들머리로 병풍바위, 선작지왓, 윗세오름, 만세동산, 사제비동산, 어리목을 날머리로 진행. 총거리 약 12Km, 시간 약 5시간. [사진 하만윤]

영실을 들머리로 병풍바위, 선작지왓, 윗세오름, 만세동산, 사제비동산, 어리목을 날머리로 진행. 총거리 약 12Km, 시간 약 5시간. [사진 하만윤]

하만윤 7080산처럼 산행대장 roadinmt@gmail.com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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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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