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카스 논란의 유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꼭 5년 전 이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화끈한 음식, 지루한 맥주(Fiery food, boring beer)’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를 실었다. 36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이 한 쪽짜리 기사 중 두 문장이 한국에서 그야말로 ‘화끈한’ 반응을 불렀다. 원문을 옮기자면 “맥주 제조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하는 거의 유일한 분야일 것이다. 북한의 대동강 맥주는 영국에서 들여온 장비로 만드는데, 놀라울 정도로 맛이 좋다” 정도다. 이는 곧 “북한 맥주보다 맛없는 한국 맥주”→“한국 맥주 형편없다”로 단순 요약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기사를 쓴 장본인인 다니엘 튜더와 만나 편의점엘 간 적이 있는데, 튜더가 망설임 없이 고른 건 다름 아닌 카스 캔맥주였다. 언행불일치라는 지적에 튜더는 말했다. “내가 쓴 건 한국 맥주업계의 과점 구도 문제인데, 한국에선 북한 맥주에 대한 칭찬과 한국 맥주에 대한 쓴소리에만 집착하더라.” 그러고는 편의점 벤치에 앉아 세상 맛있다는 듯 카스를 마셨다.

그리고 5년 후, 국산 맥주 논란은 유령처럼 다시 한국 사회를 배회 중이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영국인. 스타 셰프 고든 램지다. 독설은 기본, 욕설도 서슴지 않는 램지가 카스 광고 모델로 기용돼 국산 맥주 예찬론을 펼치는 중이다. 이를 두고 램지가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라는 비난도 거세다. 광고료에 눈이 먼 램지가 홍보를 하고 나섰다는 비판이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질없는 논쟁 아닌가. 국산 맥주를 외국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집착하는 현상이 딱하다. “맛이 강한 한국 음식엔 한국식 맥주가 맞다”는 램지의 주장은 수학 공식도 아니고, 찬반이 응당 존재하는 하나의 주장일 뿐이다. 이를 두고 파르르 떠는 반응을 보이는 건 지나치다. 외국인 스타를 앞세워 광고를 찍은 계산법도, 거기에 일희일비하는 국내 소비자들도 한국의 비뚤어진 인정욕구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상황에서 가장 할 말이 많아 보이는 건 튜더다. 램지가 내한 기자회견에서 “한국 맥주가 맛없다고 한 그 영국인 기자를 만나면 엉덩이를 걷어차 주겠다”고 했기 때문. 정작 튜더는 이런 ‘쿨’한 카톡을 보내왔다. “램지에게 맥주 마시기 대결을 제안하고 싶네. 만약 내가 지면 그때는 엉덩이를 걷어차도록 해주지!”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