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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중도·보수 통합 놓고 죽음의 계곡 건너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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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개혁보수’ 아이콘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유승민 대표는 ’국민의당과의 협상이 사고가 나지 않을까 우려될 만큼 앞서가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이념을 비롯해 이견이 있는 부분은 공통분모가 확인돼야 통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유승민 대표는 ’국민의당과의 협상이 사고가 나지 않을까 우려될 만큼 앞서가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이념을 비롯해 이견이 있는 부분은 공통분모가 확인돼야 통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취임사에서 했던 말 그대로 죽음의 계곡에 들어섰습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두 개의 카드를 쥐고 말 그대로 ‘데스 매치’(생사를 건 싸움)를 벌이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통합’ 협상, 국민의당과 ‘중도 통합’ 협상을 동시에 진행시키며 다음달 중순 안에 결론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11명밖에 남지 않은 의원들의 추가 탈당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다. 대표 취임 열흘째인 23일 국회에서 유 대표를 만났다. “현재까지는 국민의당과의 협상이 크게 앞서가고 있지만 한국당의 태도 변화를 전제로 보수통합의 여지도 남겨놔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보수의 개혁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대로 느껴졌다.

한국당과 협상은 지지부진 #해체 수준 개혁 시 합당 가능 #국민의당, 가치공유가 관건 #안보 놓고 치열한 토론 필요 #탈당파, 개혁의 ‘ㄱ’도 안 꺼내 #변화 못 시키면 정치생명 끝나 #안철수, 내홍 확실히 정리해야 #호남, 지역주의 끊는 용단 절실

지난 13일 대표에 당선되면서 한 달 안에 보수 또는 중도 통합에 성과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진전 상황은.
“한국당과 통합 협상은 개별적으로 의원을 빼가거나 흡수 통일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정병국·이학재 의원에게 맡기고 국민의당과의 협상은 정운천·박인숙 의원에게 맡겼다. 국민의당과 협상은 너무 앞서가서 걱정할 정도인데 한국당과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어쨌든 약속대로 12월 중순에 협상 결과를 투명하게 보고하고 의원들이 당에 남도록 설득할 것이다.”
국민의당이 더 통합에 몸이 단 인상이다. ‘지역과 이념을 초월해 통합하자’는 주장이 이어지는데.
“이념은 중요하다. 그 말이 부담되면 가치나 철학이라 해도 좋다. 국민의당 진통이 이어지고 있는데 굉장히 의미 있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정면으로 맞닥뜨려 바람직한 결론이 났는데 그게 우리 당이 추구하는 바와 다르지 않으면 통합의 진정한 가능성이 생긴다고 본다. 선거 앞두고 급하게 뭉쳐 그 안에서 또 다른 소리 할 거면 연대도 통합도 할 이유가 없다.”
양당 이념이 다른 대표적 영역이 안보다.
“안보관이 근본적으로 다르면 정당을 같이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15~20년 전 햇볕정책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모두 안보에 대해 잘한 것이 없다. 이제 안보는 북한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종북 논란을 벌이는 차원을 벗어나 미증유의 북핵 위기를 풀 해법을 함께 구하자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지역주의도 논란거리다. ‘호남당 색깔 지우라’고 요구해 국민의당이 반발했는데.
“(민주당과 한국당 같은) 양극단 세력이 영남·호남을 팔아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그걸로 자신들의 이득만 챙겼다. 새 정치 하려는 이들은 이걸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당의 어떤 분들은 미래 보고 합치자는 나의 주장을 ‘호남 배제하겠다는 거냐’로 거꾸로 해석하고 지역감정만 자극하고 있다. 국민이 시시비비를 가려주기 바란다.”
국민의당에선 유 대표가 안보에 너무 초강경 모드라고 우려한다.
“안보에 너무 오른쪽이라는 얘길 듣는다. 그런데 내가 2014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낼 때 사드 도입을 가장 먼저 주장했다. 그때 제일 반대했던 이들은 바로 친박 세력이었다. 나보고 너무 앞서간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더가 없었기에 반대한 거다. 한데 지금은 문재인 정부와 국민의당 모두 사드를 수용하며 말을 바꿨지 않나. 내 주장이 옳았던 것이다. 만일 내가 현실과 동떨어진 초강경 보수였다면 내 주장대로 됐겠는가. 안보 문제를 놓고 안철수 대표와 깊이 있게 토론하고 싶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테두리 안에서 합의가 도출되면 초강경이니 매파니 하는 얘기가 쑥 들어갈 것이다.”
호남 의원들 입장에선 바른정당과 통합하면 금배지를 날릴까 봐 걱정이 많다.
“나도 대구 4선 의원이다. 그런 현실 잘 안다. 그러나 표가 무서워 정치인들이 한 발짝도 못 나가면 구태를 깨고 새롭게 나갈 수 없다. 양당의 지역주의 논쟁이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 정치를 진일보시켰으면 좋겠다. 대구가 1인당 소득이 20년 가까이 전국 꼴찌다. 광주도 꼴찌에서 두 번째다. 대구가 요즘 외딴 섬처럼 손가락질받고 바보 취급당한다. 그러나 시민들한테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한국당의 지역주의 악용에 대해 절망한다. 시민들의 깨어 있는 의식을 믿어야 한다.”
바른정당도 영남 표가 무서워 9명이 추가 탈당했고 남은 11명 중에서도 탈당자가 나오리란 관측인데.
“남아 있는 분들은 안정을 찾고 있다. 쉽게 안 흔들릴 거다. 추가 탈당이 걱정되는 분들은 설득 중이다.”
이학재 의원도 마음이 흔들린다는데.
“시도 때도 없이 만나고 전화하고 밥 먹는다. (김무성 등) 탈당을 주도한 사람들은 원망스럽지만 지역구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탈당한 이들은 이해한다. 탈당파들은 ‘들어가서 개혁하겠다’고 했지만 개혁의 ‘ㄱ’자도 안 꺼내고 있다. 창당 정신부터 나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그분들이 한국당 가서 당의 변화에 기여하지 않으면 왔다 갔다한 대목을 심판받아 정치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당이 개혁하면 합당할 의사 있나.
“지난해 탄핵 직후에 새누리당을 해체하고 당 예산은 국고에 반납하자고 했는데 안 받아들였다. 지금도 한국당이 해체와 재창당 수순을 제대로 밟으면 우리 당 11명 다 설득해서 갈 생각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과 친박 실세 한두 명 출당시키는 걸로는 어림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율을 독식하는 현 구도에서 보수의 지분은 있나.
“국민 차원에서 이미 보수는 재구성됐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동의할 수 없지만 한국당에 마음 주기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분들이 ‘중도+건전한 보수’라 생각한다. 바른정당이 처음부터 잘해서 이분들에게 희망을 줬어야 했다. 대선에서 문 대통령과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47%를 득표하고 나머지가 나와 홍준표·안철수 표였다. 이 가운데 한국당 콘크리트 지지층을 뺀 30~40%가 우리의 1차적 소구 대상이다. 굉장히 넓다. 지금은 그 표 중 상당수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고 있지만 개혁적인 보수정당이 만들어지면 되찾아 올 수 있다. 그러면 더 오른쪽에 가 있는 보수층도 넘어올 것이다. 너무 쉽게 포기하고 한국당에 간 의원들이 아쉽다.”
한국당 내 비박 세력과 뭉치는 방안은? 국민의당은 어림도 없다는 입장인데.
“한국당 내에 박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의원이 50명 넘게 있고 홍준표 대표의 당 운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의당이 한국당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배척하면 양극단 기득권 정당과 뭐가 다른가.”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가 한국당으로 넘어갈 가능성은?
“일곱 달 뒤 선거가 닥치니 고민이 될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른바 남·원·정(정병국) 트리오 멤버로 젊을 때부터 개혁을 얘기해오던 분들 아닌가. 초심으로 돌아가 바른정당과 끝까지 같이 가주길 바란다.”
대선 끝나고 반년 가까이 ‘로 키’로 일관한 게 당의 위기를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잘 알고 있다. 내가 대선 뒤 열린 전당대회에 나서지 않은 건 대선 패배로 너무 피곤한 상태였고 패자는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혜훈 전 대표가  석 달 만에 퇴진하면서 내가 비대위원장이건 대표건 맡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운명 비슷한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지방선거에 서울시장으로 출마하라는 요구가 많은데 본인은 대구 총선에 나가겠다는 소문이다.
“다음 총선에 대구 나간다고 명확히 말한 적 없다. 서울시장 출마는 진짜 잘해보겠다고 약속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시장 하다 임기 중에 대선 나가는 건 정도가 아니다. 아무리 언론에서 시장 나오라 해도 정치인은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서울시장이 나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선택지 비슷하게 되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출입 기자들이 ‘안철수 대표 만난 감상’을 묻자 ‘내가 사람 눈 보면 아는데 안 대표는 잘 모르겠더라’고 했다는데.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안 대표는 나랑 생각은 비슷한 듯한데 국민의당이 깨지지 않도록 노력하다 보니 본심과는 다른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안타깝다. 그런 부분은 본인이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국민의당과 통합 논의가 깨지면 11석 미니 정당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11석으로 끝까지 갈 거다. 내가 책임진다. (그러면 추가 탈당 의원이 나오지 않을까?) 정당 지지율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니까 두고 보자. 보수가 역사상 이런 위기를 겪은 적 없다. 환골탈태 안 하면 사형 선고받는다. 민심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한국당으로 결집해야 민주당의 ‘진보집권 100년’을 저지할 수 있다는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누적돼 곪아터진 잘못에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고 한국당과 합치면 문재인 정부가 실정을 하더라도 보수가 우리에게 마음을 주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정신 차려야 권력을 되찾아올 수 있다.”
보수정당임에도 젊은이들이 좋아한다.
“기존의 보수, 진보 틀에 얽매여 세상을 보지 않더라. 이념으로 편을 가르는 식으로는 일자리든 자신들의 어떤 문제도 해결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실질적·구체적인 데 관심이 많다. 대선 끝나고 중앙대·서울대에서 강의를 두 번 했는데 700명 넘게 몰려 TV로 중계까지 했다. 보수가 젊은이들을 안아야 한다. 지평을 넓혀야 한다. 왜 안 그러는지 모르겠다.”
선거 연령을 18세로 내리고 당의 문호를 청년에게 개방할 의사는 있나.
“그렇다. 젊은이들은 다 의식 있는 유권자다. 얼마나 합리적인데….”

유승민은 …

개혁보수를 지향하는 바른정당 최대주주. 전임 당 대표 이혜훈 의원이 석달 만에 사임하자 지난 13일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 5월 대선에서 당의 후보로 출마해 6.76%의 득표율로 4위에 올랐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뒤 이듬해 10월 의원직을 사퇴하고 대구 동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내리 4선을 지냈다.

강찬호 논설위원, 정리=김솔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