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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 첫 인공재배 성공과 풀어야 할 수수께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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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의 산업지도 

송이 인공재배에 성공한 가강현 박사가 15일 서울 홍릉의 국립산림과학원 배양실에서 2010년과 올해 재배한 송이를 손에 들고 포즈를 취했다. 그는 20여 년 버섯 연구에 매진해온 ‘버섯 박사’다. [조문규 기자]

송이 인공재배에 성공한 가강현 박사가 15일 서울 홍릉의 국립산림과학원 배양실에서 2010년과 올해 재배한 송이를 손에 들고 포즈를 취했다. 그는 20여 년 버섯 연구에 매진해온 ‘버섯 박사’다. [조문규 기자]

송이는 소나무에서 자라는 버섯이다. 죽은 나무에서 자라는 표고버섯이나 느타리와 달리 송이는 오로지 살아 있는 소나무에서 자란다. 송이 특유의 향이 소나무에서 왔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송이향은 소나무와 상관없는 송이균 특유의 향이다. 송이는 인공재배가 안 돼 직접 채취해야 한다. 그런데 송이가 나는 가을이 되면 ‘자연산 송이’를 광고하는 글이 넘쳐난다. 포털에서 송이를 검색하면 ‘자연산’이 자동 연관어로 따라붙을 지경이다. 송이는 다 자연산일 텐데 대체 무슨 말일까. ‘양식 광어’가 있어야 ‘자연산 광어’도 있을진대. 자연산이 난무하는 요지경 세상을 들여다봤다.

국립산림과학원 “인공재배 성공” #성과 인정받아 행안부 최우수상도 #재현 가능한 실험인지 더 지켜봐야 #송이 재배에도 ‘과유불급’의 원칙 #송이 인공재배 경제적 가치 큰데 #칸막이 행정으로 영역 따질 일인가

‘송이 인공재배 성공! 상업재배 가능성 높여’.

지난 9월 국립산림과학원이 발표한 보도자료 제목이다. 느낌표(!)가 들어 있다. 인공재배가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진 송이를 키워서 먹을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송이 인공재배 연구를 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는 이달 초 행정안전부의 올해 책임운영기관 우수성과 공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난주 서울 홍릉의 국립산림과학원을 찾아 이번 연구를 주도한 가강현(51) 임업연구관을 만났다. 송이 연구에 20여 년을 바친 그에게 궁금한 것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상업재배는 언제쯤 되는 겁니까.” 가 박사는 “15~2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 비싼 송이를 머지않아 더 싸게 즐길 수 있으리라는 부푼 기대는 일단 접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있다. ‘송이 인공재배’라는 키워드로 과거 기사를 검색해보니 성공사례가 줄줄이 뜬다. 기사만 보면 송이 인공재배는 구문(舊聞)일뿐 뉴스가 아닌 것 같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일까. 가 박사는 “송이와는 전혀 관계없는 다른 버섯을 이용해 송이가 인공재배됐다는 소식들이 종종 보도되지만 모두 거짓”이라며 “단지 버섯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송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해 소비자를 현혹하는 상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다시 옛 기사를 뜯어 보니 X송이, XX송이처럼 송이 앞에 뭔가 다른 단어가 붙어 있다. 송이는 아니라는 얘기다. 한상국 국립수목원 박사는 “송이 이름이 붙은 다른 양식 버섯이 워낙 많아서인지 마케팅을 위해 송이에 ‘자연산’이라는 말을 굳이 붙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은 2000년부터 송이 인공재배 기술을 연구해 국내외에서 관련 특허를 따냈다. 실험실에서 송이균이 감염된 소나무 묘목을 만들어 산에 심는 방식인데 현재 송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강원대 농업생명과학대 성재모 명예교수도 2004년 송이균을 액체 배양해 접종하는 방식으로 송이를 생산한 적이 있다.

가 박사의 송이 인공재배법은 송이 감염묘(感染苗)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송이가 자라는 산의 땅속 송이균 앞에 어린 소나무를 심는다. 시간이 지나면 땅속의 송이균이 자라나 심어놓은 소나무 뿌리를 감염시킨다. 이렇게 감염된 소나무를 송이가 나지 않는 소나무숲에 옮겨 심는다. 감염묘를 만드는 데 2년, 감염묘를 이식한 뒤 버섯이 나오는 데까지 6~13년이니 모두 8~15년 걸리는 셈이다. 1983년 일본 히로시마 임업시험장에서 이 방식으로 송이 한 개가 자랐던 사례가 있지만 단 한 번 송이가 났을 뿐이다. 가 박사도 2010년 같은 방식으로 송이를 키워냈다. 첫 번째 송이 이후 7년 뒤인 이번에야 두 번째 재배에 성공했다. 2001~2004년 강원도 홍천국유림관리소 관내에 심은 송이 감염묘에서 올가을 송이 세 개가 땅 위로 솟아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버섯박사’ 가강현 연구관의 열정은 인정하면서도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째, 다른 버섯균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온실 같은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자연환경에서 진행된 실험이어서 감염묘에서 나온 송이가 확실한지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다. 우연히 송이 포자가 날아와서 송이가 나왔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한상국 국립수목원 박사, 노현수 경상대 생명과학부 교수, 천우재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 박사) 이에 대해 가 박사는 “송이가 나지 않는 산에 심었고, 계속 추적 관찰을 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둘째, 과학적 연구는 같은 조건에서 언제 어디서든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송이가 나오긴 했지만 데이터가 부족하다. 샘플 수를 늘리고 실험지역을 더 확대했어야 한다.(노현수 교수)

셋째, ‘인공재배’ 성공이라는 표현은 과하다. 2010년 첫 송이가 나오고 2017년 두 번째 송이가 나왔다. 7년간 송이가 나지 않은 것은 뭔가 환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고 재배 조건을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내년에도 같은 자리에서 송이가 난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인공재배라고 할 수 있다.(임영운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이 인공재배는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 한국은 이미 명태·참치 같은 고급 수산자원 양식에 성공했다. 임영운 교수는 “우리나라의 버섯 1900여 종 가운데 90%는 재배법을 모른다”며 “송이 인공재배에 성공하면 다른 버섯 재배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특히 나무와 공생하는 송이는 연구가치가 더 높다. 임 교수는 칸막이 행정을 꼬집기도 했다. “근데 연구용역에 송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농업진흥청이나 환경부에선 도통 관심이 없어요. 송이는 산림청 영역이란 거죠. 중국과 한국에서 송이 연구가 진전을 보이자 한동안 손놓고 있던 일본도 국가 차원에서 다시 연구에 뛰어들고 있는데….”

가 박사는 2014년 홍릉 국립산림과학원 앞뜰에도 감염묘 세 그루를 심었다. 정년퇴임하는 2025년 이전에 송이가 나오는 걸 보고 싶어서다. 그는 “송이를 텃밭이나 정원에서도 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소나무가 쑥쑥 자라도록 비료라도 듬뿍 줘야 할까. 가 박사가 고개를 저었다. “소나무는 송이가 없어도 살지만 송이는 소나무 뿌리에서 영양을 공급받아야만 살 수 있어요. 소나무 생육조건이 약간 불리해야 소나무도 송이와의 공생을 더 원하는 것 같아요. 참 묘하지요. 소나무가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으면 송이 도움이 필요 없어선지 그냥 ‘나 홀로’ 가는 거죠. 그럼 송이가 오히려 못 자라요.”

넘치고 풍족하다고 꼭 좋은 게 아니다. 더불어 사는 법을 모르고 독불장군이 되기 쉽다. 지나치면 오히려 미치지 못하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세상 이치가 어디 송이 재배뿐일까. 신수종 산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꼭 첨단 정보통신이나 바이오에만 미래가 있는 게 아니다. 가 박사의 인생을 건 송이 인공재배가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서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