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상욱의 모스다] (38) '올 어바웃 넘버'…주관적 감상 넘치는 시승기에 고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소위 '스포티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 자동차 'A'가 있다. 하지만 예상 밖의 퍼포먼스로 운전자에게 꽤나 큰 즐거움을 안긴다. 타이트한 스티어링휠 기어비로 약간의 조타만으로도 자동차는 앞머리를 돌린다. 더블 위시본 구조의 서스펜션은 전륜에 가해지는 여러 방향의 충격을 세련되게 받아들이고, 타이어의 접지면을 최대화한다.

누가 봐도 '스포티'해 보이는 한 자동차 'B'가 있다. "코너링이 좋다", "핸들링이 좋다" 등등 특히나 굽이진 길에서의 퍼포먼스로 찬사를 받던 차다. 스티어링휠의 크기도 A보다 큰데,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록투록' 회전량도 더 많다. A로는 2시 정도로 꺾으면 돌아나갈 수 있는 코너를 B로는 3시까지 꺾어야 한다. 분명 시승기에선 "스티어링휠의 피드백이 뛰어나다"는데, 잘게 홈이 파여진 도로나 조금이라도 표면이 매끈하지 않은 아스팔트 위에선 커피 한 모금 마사기 쉽지 않다.

"스포티하다", '코너링이 좋다", "핸들링이 좋다"…각종 시승기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이다. 그나마 "쏜살같이 튀어나간다"는 표현은 최근 '제로백(0~100km/h 가속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대중화되며 사라졌다. 시승기를 읽고 실제 해당 차량에 앉아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기 십상. 아무리 주관적인 표현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기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주 모터스포츠 다이어리는 이같은 주관적 판단의 위험성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시승기를 믿은 내가 바보지']

A 차량으로 인제 스피디움을 주행중이다. 사진 박상욱 기자

A 차량으로 인제 스피디움을 주행중이다. 사진 박상욱 기자

A와 함께한 거리는 4만km가량. 출퇴근길과 장거리 출장 등 공도뿐 아니라 용인, 인제, 영암의 서킷을 두루 거쳤다. 차량의 운동 성격을 좌지우지하는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등은 모두 순정 상태 그대로였다. 주관적 만족도는 '매우 높음'. 스티어링휠 기어비가 타이트했을 뿐 아니라 차량의 회전반경 역시 크지 않아 주차난이 심각한 도심에 제격이었다.

그뿐일까. 타이트한 스티어링휠 기어비는 운전의 재미를 높이는 데에도 한몫했다. 소위 '시가지'로 불리는 인제 스피디움의 10~13번 코너나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의 1~3번 코너 구간에서 이러한 기어비는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높여준다. 두 팔을 허우적댈 필요 없으니 말이다.

댐퍼는 예상보다 딱딱했다. 하지만 언제나 '최대한 수평을 유지' 시키려 하는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 덕분에 운전자가 체감하는 안정성은 매우 높았다. 간혹 포장면이 울퉁불퉁해도, 포장면에 가로 또는 세로 방향의 홈이 잇따라 파여있더라도, 이를 지나는 진동만 느껴질 뿐이다.

B 차량으로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을 주행중이다. 사진 박상욱 기자

B 차량으로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을 주행중이다. 사진 박상욱 기자

B와 함께한 거리는 1만 5000km 남짓. 출퇴근 등 일상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인제, 영암의 서킷을 거쳤다. 이 역시 순정 상태 그대로. "스포티하다", "코너링이 예리하다"는 시승기와 달리 A 대비 넉넉한 스티어링휠 기어비에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는 듯했다. 아무리 '스포츠 패키지' 휠이라고 할지언정, 스티어링휠 자체의 지름도 커 굽이진 도로마다 허우적거리는 느낌이다.

그뿐일까. A보다 전장은 60mm 짧고, 휠베이스(앞뒤 차축간 거리)는 30mm 짧음에도 불구하고 회전반경은 더 컸다. 퇴근길, 짧디짧은 신호 사이에 유턴을 해야 하는 왕복 4차선 도로에서 B는 언제나 A보다 '아슬아슬'했다. 주차난 심각한 주차장에서 이는 더욱 단점으로 부각됐다. 회전반경도 큰데, 스티어링휠도 크고, 록투록 회전량도 많으니 말이다. '누가 빠릿빠릿하다한 거냐' 매일 같이 주차장에서 혼자 읊조렸다.

댐퍼는 예상보다 물렀다. 단단한 승차감의 대명사이자 '스포츠 패키지'가 장착된 차량이었던 만큼 A보다 단단할 것을 예상했지만, B의 댐퍼는 A와 비슷하거나 더 무른 편이었다. 여기에 포장면의 굴곡과 홈 등을 고스란히 스티어링휠로 전해주는 것은 '위협'으로 다가왔다. 스티어링이 피드백을 전하는 것을 넘어 굴곡을 따라 좌우로 움직이니 조금만 도로 상태가 나빠져도 두 손엔 힘이 가득 들어갔다.

['궁금증'에서 '의구심'으로]

차량의 코너링 성능은 각종 데이터에 기반한 '수치'로 표현 가능하다. 사진 박상욱 기자

차량의 코너링 성능은 각종 데이터에 기반한 '수치'로 표현 가능하다. 사진 박상욱 기자

다시금 시승기를 찾아봤다. 앞서 '모르는 차량에 대한 궁금증'으로 찾았던 것과 달리, 이번엔 '도대체 왜'라는 의구심으로 말이다. 일부 '객관적인 평가'도 눈에 띈다. 마치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대다수는 일부 수사만 바뀌었을 뿐, '복붙(복사·붙이기)'한 모습이다. 마치 '이 차는 이렇다' 세뇌받은 것처럼.

그 와중에 '핸들링', '코너링' 등의 표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온갖 분야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잇(it)', '머스트 해브(must have)' 등등의 표현이 붙던 때가 떠오른다. '잇 걸', '머스트 해브 아이템' 등등 말이다. 무언가 '있어 보이는' 표현이지만, 결국엔 주관적으로 좋다는 표현이다.

앞서 설명한 A와 B 자동차에 대한 평가는 일차적인 조향'감(感)'이라고 볼 수 있다. 운전할 때, EPS(전동식 파워 스티어링) 너머 운전석의 스티어링휠로 전해진 '느낌' 말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일부 '핸들링 특성'까지 드러난 결과로 볼 수 있다. A에서 느낀 '안정감'은 더블 위시본이라는 서스펜션의 특성과 제조사가 지향하는 지오메트리 세팅에서 비롯된 것이다. B에서 느낀 '불안감'도 결국엔 맥퍼슨 스트럿이라는 서스펜션의 특성과 제조사가 지향하는 세팅에서 비롯된 것. 이러한 '불안감'을 달리 표현하면 '예민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코너링은 그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시속 150km/h가 넘는 속도에서도 안정적인 코너링을 선보인다." 각종 블로그나 영상, 매체의 시승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현이다. 국내의 국제규격 서킷에서도 레이스카가 아닌 일반 차량으로 이정도 속도로 돌아나갈 수 있는 코너는 흔치 않다. 잘 도는 차는R값(곡률)이 작은 저속 코너에서도 잘 돈다. 잘 못 도는 차는 저속이든 고속이든 속도와 관계 없이 잘 못 돈다.

차량의 코너링을 평가하기 위해선 차량의 횡그립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주관적으로 '잘 돈다'가 아닌, 횡G값을 통해 그 능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운전자가 차량에 상관 없이 최대한의 횡그립을 낼 수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숫자로 깨진 주관적 감상]

차량의 코너링 성능은 각종 데이터에 기반한 '수치'로 표현 가능하다. 사진 박상욱 기자

차량의 코너링 성능은 각종 데이터에 기반한 '수치'로 표현 가능하다. 사진 박상욱 기자

A에 대한 만족도 '매우 높음'은 서킷에서도 유지됐을까. 인제 스피디움과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에서 A는 1.3g, B는 1.5g의 최고 횡가속도를 기록했다. 1g 안팎의 횡가속도가 주어지는 상황에서 B는 꾸준히 가속한 반면, A는 0.7g 안팎이 한계였다. 두 차량 모두 동일한 UHP 타이어로 주행한 만큼, 이는 타이어의 특성이 배제된 '차량 자체의 코너링 성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일상 주행에서 경험한 A와 B 자동차에 대한 조향감과 그에 따른 추측은 서킷에서의 한계 주행에서 산산히 깨졌다. A의 재빠른 조향감은 우수한 코너링 퍼포먼스로 이어지지 못했고, B의 느슨한 듯한 스티어링휠 기어비는 세밀한 조작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같은 '조향감' 외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코너링에서의 차이를 불렀다.

때문에 해외 일부 매체에선 코너링뿐 아니라 '종합 성능'을 평가하기 위해 서킷 랩타임과 횡·종 가속도를 측정해 공개하고 있다. 단순히 '누가 빠르냐'를 떠나 '어떻게 달리냐'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킷 주행이 용이하지 않을 경우, 코너링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테스트를 실시한다. 8자 모양을 그리며 한계 그립을 기록하는 '피겨8(Figure 8)' 테스트다. 연속으로 8자를 그려나가며 차량의 속도와 횡가속도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렇게 측정된 차량의 한계 그립은 일종의 '스펙'과도 같다. 자동차의 크기, 출력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지오메트리와세팅값, 출고 타이어 등에 따라 고정된 '수치'이기 때문이다.

소위 '승차감'이라는 부분 역시, 감각적인 부분이 아닌 퍼포먼스적인 측면에서 들여다 볼 경우 객관화가 가능하다. 스프링 레이트나 댐퍼의 인장·수축 속도 등에 의해 롤(좌우 움직임)이나 피치(앞뒤 기울어짐)의 제어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동차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 모든 부분을 수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제작과정을 소수의 장인이 책임지거나, 최고급 소재가 사용되는 등 이른바 '감성품질'에 대해선 주관적 평가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객관적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 부분을 '주관적 감상'이 대신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이같이 객관화될 수 있는 부분을 오로지 '감'에 의존해 평가하려면 온몸은 시중에 판매중인 G센서나 GPS보다도 예민해야 할 터.

['의구심'은 '안타까움'으로]

'주관적 감상' 중심의 시승기와 달리 다양한 분야에 걸친 객관적 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중앙일보가 국내 신문사 중 최초로 2010년부터 시작한 COTY(Car Of The Year)가 그 예다.

'주관적 감상' 중심의 시승기와 달리 다양한 분야에 걸친 객관적 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중앙일보가 국내 신문사 중 최초로 2010년부터 시작한 COTY(Car Of The Year)가 그 예다.

처음엔 궁금증에 읽었던 시승기를 의구심으로 다시 읽고 나니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짧았다. 주행 시간도, 거리도 모두 말이다. 짧은 시간과 짧은 주행거리 이내에 차량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전달하기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제조사가 내놓은 홍보 자료나 보도 자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객관적 지표'에 해당하는 코너링과 제동 성능에 대한 측정 또는 평가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시승 장소다. 대부분의 시승 장소는 일반 차량이 함께 주행하고 있는 공공도로다. 공도에선 한계 그립을 파악하고, 최대 제동 성능을 끌어낼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일부 계기판에 모자이크를 한 채 공도에서 위험한 운전을 이어가는 시승기도 버젓이 공개되고 있다. "서킷에선 제대로 평가를 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 'Closed road, professional driver(통제된 도로에서 프로 드라이버가 운전한 영상)'. 자동차 홍보 영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구가 머쓱해진다.

이러한 안타까움은 결국 읽는 이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진다. 왜곡된 정보로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최근 '달리고, 돌고, 서는' 자동차의 본질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에 발맞춰 다양한 시승기가 쏟아지고 있다. 시승기를 다루는 매체의 수도, 인원도 늘었다. 기존 매체뿐 아니라 블로그 등 시승기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경로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제대로 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운전자에 의해 테스트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시승기는 결국 또 하나의 광고에 그치게 될 것이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