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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한국 반도체, 정말 중국보다 앞선 걸까?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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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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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 근저에서 또 한차례의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브로드컴과 퀄컴, 두 거대 팹리스 반도체 회사 합병 소식 #中·日 반도체 업계 술렁, 특히 중국 팹리스 업계 긴장 #반면 삼성전자를 비롯 한국 반도체 업계는 비교적 조용 #메모리 반도체 치중된 구조 탓, 특히 시스템 반도체 취약 #올해 韓 팹리스 업계 수익 났지만, 中 회사 한 곳 매출도 안 돼 #물론 삼성전자 세계 1위 달성, 메모리칩 가격 뛴 덕분

세계 4위 반도체회사 브로드컴이 3위 퀄컴을 1000억 달러(약 110조원)에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16년 매출액 기준)

지난 5일 블룸버그통신의 보도다. 퀄컴은 한국 통신 시장이 CDMA 방식을 채택하면서 큰 통신용 칩 회사다. 최근엔 애플, 삼성 등에 칩을 독점 공급하면서 수년간 세계 모바일용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세계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통신용 스마트폰엔 퀄컴의 기술이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브로드컴도 기업용 네트워크 칩이 전문 분야다. 그리고 이 두 기업은 공장이 없는 팹리스 업체이면서 시스템 반도체 업계를 주름잡고 있다. 반독점 문제, 낮은 인수가 등으로 합병이 쉽지 않겠지만, 업계에선 이번 이슈 자체가 가진 파급력이 상당하다고 본다.

합병 논란에 선 미국 브로드컴(왼쪽)과 퀄컴(오른쪽). 이 두 업체 모두 시스템 반도체 설계가 주력인 팹리스 업체다. [사진: 뉴욕 포스트]

합병 논란에 선 미국 브로드컴(왼쪽)과 퀄컴(오른쪽). 이 두 업체 모두 시스템 반도체 설계가 주력인 팹리스 업체다. [사진: 뉴욕 포스트]

당장 중국·일본 반도체 업계가 술렁였다. 특히 중화권 업계엔 위기론까지 불거졌다. 10일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브로드컴과 퀄컴이 결합 자체가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중국·대만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무른다는 한국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조용하다. 세계 1위라던 삼성전자도 그 논란에서 빠져있다.

왜일까. 평상시 반도체 업계를 향한 몇 가지 시선과 궁금증을 팩트체크해봤다. 시선은 역시 중국으로 모인다.

▶브로드컴과 퀄컴이 결합하면 중화권 반도체 업계가 위협을 받는다?
YES

두 거대 기업은 팹리스 업체다. 이들이 합치면 중국 반도체 업계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중국 업계 특성부터 살펴보면 후공정(패키징/테스트), 팹리스, 파운드리 등으로 분업화된 형태로 이뤄져 있다. 비교적 낮은 단계의 기술력으로 접근 가능한 부분부터 단계적으로 키우겠다는 중국 당국의 산업 육성 전략 때문이다. 최근엔 사물인터넷(IoT)과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이 급부상하면서 시스템반도체가 수요가 폭등했고 팹리스-파운드리 모델이 주목받게 됐다.

일본 샤프 TV에도 중국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칩이 장착된다. [사진: 샤프]

일본 샤프 TV에도 중국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칩이 장착된다. [사진: 샤프]

특히 빠르게 큰 분야가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 집중하는 팹리스 분야다. 중국 팹리스 기업은 지난해 기준으로 1400여 개에 달한다. 1년 새 두 배나 늘어난 수치다. 대표주자가 하이실리콘으로 화웨이의 자회사다. 지난해 매출만 3조원을 넘어섰다. 한국 내 200여 개 팹리스 매출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칭화유니그룹이 인수한 스프레드트럼도 벌써 연매출 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세계 50대 팹리스(1위 퀄컴)를 따져보니 결과는 더 참혹하다. 한국 기업은 딱 한 곳(실리콘웍스)만 이름을 올렸지만, 중국 기업은 하이실리콘, 스프레드트럼, ZTE마이크로, 다탕, 나리 스마트칩, CIDC 그룹, RDA, ISSI, 락칩, 올위너, 몬타지 등 11곳이나 된다. 중국 당국이 한창 시스템 반도체 육성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라면 미국의 거대 팹리스 업체의 합병 소식이 달가울 리 없다.

중국 내 글로벌파운드 공장 내부 [사진: 글로벌파운드리]

중국 내 글로벌파운드 공장 내부 [사진: 글로벌파운드리]

▶시스템 반도체 분야, 한국이 중국보다 기술 면에서 앞선다?
NO

‘1.55건’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밝힌 지난해 한국에서 출시한 시스템 반도체 개발 건수다. 개발 착수는 2.77건에 달했지만, 제품 출시는 절반 정도에 그쳤다. 이마저도 전년보다 30% 가까이 줄어든 수준이다. 반면 중국 팹리스 업계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팹리스 업계 특성상 신제품을 빠르게 개발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중국 SMIC 공장 내부 [사진: 블룸버그]

중국 SMIC 공장 내부 [사진: 블룸버그]

중국 내 수많은 팹리스 업체가 설계한 다양한 반도체 제품은 SMIC 등 대규모 중국 파운드리 업체에서 신속하게 시장에 내놓고 있다. 이미 중국 정부다 막대한 연구개발(R&D), 보조금(파운드리 비용 30% 지원) 예산도 팹리스 키우기에 투입했다. 대만,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설계 인재도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지속해서 영입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한국 업체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취약하다?
YES

중국 정부가 팹리스 키우기에 골몰하는 건 시스템 반도체 설계 기술과 맞닿아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프로세서’로,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카드(GPU)가 있다. 모바일과 사물인터넷(IoT) 제품을 제어·통제하는 칩도 모두 시스템 반도체다.

2016년 팹리스 기업 매출 국가별 점유율 [자료: IC인사이츠]

2016년 팹리스 기업 매출 국가별 점유율 [자료: IC인사이츠]

한국은 데이터를 기억(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불러오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집중했다. 소품종 대량생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제조공정도 정형화돼 있어 이 분야에서만큼은 한국이 세계 최고다.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처럼 다품종 소량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다. 용도에 따라 설계가 수백 개가 나올 수 있고 이에 따른 공정도 다 다를 수밖에 없는 탓이다. 미국 주요 반도체 업계도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집중했고, 퀄컴이나 브로드컴이 팹리스 역량만으로 전 세계 업계를 주무를 수 있게 됐다.

시장 규모를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IHS 자료 기준)가 3473억 달러(약 381조원)다. 이중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807억 달러(23%) 나머지 2666억 달러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나왔다. 반도체 시장의 대세는 시스템 쪽이라는 얘기다.

어보브반도체는 가전·TV·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두뇌 격인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를 직접 설계해 생산까지 하는 사실상 유일한 한국 기업이다. [사진: 어보브반도체]

어보브반도체는 가전·TV·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두뇌 격인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를 직접 설계해 생산까지 하는 사실상 유일한 한국 기업이다. [사진: 어보브반도체]

그나마 한국에선 몇몇 업체가 선전하고 있다. 지난 10년 연속 매년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어보브반도체다. 가전·TV·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두뇌 격인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를 직접 설계해 생산까지 하는 사실상 유일한 한국 기업이다. MCU는 비메모리반도체로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와 마찬가지로 특정 시스템을 제어하는 시스템 반도체다. 최근엔 IoT용 MCU 독자 설계 기술까지 갖추고 중국·일본·미국 등 해외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올해 한국 팹리스 업계는 돈을 못 벌었다?
NO

한국 팹리스도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흑자를 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 팹리스 상장사 15개 중 11개 사가 영업이익을 냈다. 대표주자인 실리콘웍스 120억원, 어보브반도체 44억원, 제주반도체 23억원 지스마트글로벌 105억원 등(2017년 상반기 매출액순)을 기록했다. 협회 측은 메모리 반도체, OLED 디스플레이 분야에 대한 한국 기업의 지배력이 강력해지면서 동반 성장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17년 상반기 한국 팹리스 매출 상위 15개 실적 [자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2017년 상반기 한국 팹리스 매출 상위 15개 실적 [자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하지만 익명을 요한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가 누리는 수혜와 비교하는 한국 팹리스 업계는 고사 수준”이라며 “신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팹리스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이 너무 형편없다. 매출액의 30%나 연구개발(R&D)에 쏟아부으며 연명하는 게 한국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삼성전자, 그래도 세계 반도체 업계 1위다?
YES

올해 종합반도체순위로 인텔을 제치고 처음으로 1위에 오를 전망이다. 21일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분야에서 656억 달러(약 70조원)의 매출로 1위다. 이 기관은 “올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칩 가격이 크게 뛴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종합반도체업계 순위란 메모리 업체, 칩 업체, 팹리스(설계 전문업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을 모두 고려한 점유율 순위라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가 모든 분야에서 뛰어났다는 소린 아니다.

올해부터 삼성전자도 팹리스·파운드리 사업으로 분리하고, 해당 부서에 강인엽(왼쪽) S.LSI 사업부장과 정은승(오른쪽) 파운드리 사업부장을 배치했다. [사진: 삼성전자]

올해부터 삼성전자도 팹리스·파운드리 사업으로 분리하고, 해당 부서에 강인엽(왼쪽) S.LSI 사업부장과 정은승(오른쪽) 파운드리 사업부장을 배치했다. [사진: 삼성전자]

실제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다. 편중됐다는 위기의식 탓일까. 올해부터 삼성전자도  팹리스·파운드리 사업으로 분리하고 해당 사업부에 퀄컴에서 활약한 반도체 설계 전문가 강인엽(54) 부사장과 물리학 박사인 정은승(57) 부사장을 배치했다.

전 세계 반도체업체 매출 및 시장점유율 추이 [자료: IC인사이츠, 단위 십억 달러 *순수 파운드리업체 제외]

전 세계 반도체업체 매출 및 시장점유율 추이 [자료: IC인사이츠, 단위 십억 달러 *순수 파운드리업체 제외]

한국 반도체 업계엔 세계 1위라는 자부심보다 메모리 반도체에만 치중됐다는 위기감이 더 팽배하다. 21일 전화 통화에서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사물 인터넷(IoT),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자율주행차 등 때문에 시스템 반도체의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빼면 한국 시스템 반도체 업체는 영세합니다. 정부와 대기업이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고 육성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차이나랩 김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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