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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최양식 경주시장 “재난은 항상 새롭다. 그래서 두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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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식 경주시장. [중앙포토]

최양식 경주시장. [중앙포토]

“본진보다 큰 여진은 없습니다. (포항지진 이후 여진이 이어지고 수능까지 앞둔 시점인)지금은 시민들에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난해 9월 국내 지진 사상 최대인 규모5.8의 강진을 겪은 최양식(65) 경주시장은 언론 인터뷰를 가급적 피해왔다. 긁어부스럼을 걱정한 듯했다.
1년여만에 국내에서 사상 두번째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만큼 경주의 경험을 포항 시민과 전체 국민들과 공유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설득이 통한 듯했다.
 최 시장은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경주의 눈물 나는 '지진 극복기'를 공개했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오후 5시 경북 경주시 동천동 경주시청 시장실에서 진행했다.

20일 인터뷰서 포항시에 지진 극복기 전해 #지진은 타이밍, 지진 직후 자체 매뉴얼 제작 #“포항시민들에게 심리적 안정감 줘야” 조언 #‘포항지진’ 아닌 ‘11.15지진’으로 부르자 제안도 #“재난지원규정 수해 기준, 지진과 맞지 않아” #지진 관련 연구와 지식 턱없이 부족하다 지적

경주는 지난해 9월 12일 지진으로 90억8000만원의 피해를 봤다. 지난 15일 포항지진에 따른 피해는 기와 파손 등 9건, 문화재 등 7건이었다.

최 시장은 “(14개월이 지나)이제 지진 피해를 대부분 복구했다”며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지진 앞에 완벽한 준비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아직 지진 하면 경주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20일 최양식 경주시장이 경북 경주시 동천동 경주시청 시장실에서 지난해 5.8의 강진을 극복한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 경주시청]

지난 20일 최양식 경주시장이 경북 경주시 동천동 경주시청 시장실에서 지난해 5.8의 강진을 극복한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 경주시청]

지난해 지진을 겪으면서 뭘 배웠나.

지진은 (대한민국)어디든 올 수 있다. 어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경주도 그랬지만 포항에 지진이 올 거라 누가 생각했나. 경주 시민들은 눈앞에서 피해를 봤다. 관광객 감소에 따른 지역 경제 타격 같은 비용과 대가를 치렀지만 (미래의)지진에 대비하는 계기가 됐다. 시는 지진이 난 뒤 행동 매뉴얼 책자와 스티커 배포, 피난 텐트와 모포 9000장 확보 등 대응책을 마련했다. 늘 재난이 닥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생겼다.

경주 지진으로 배운 교훈을 우리 사회가 제대로 실천했다고 보나.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재난은 항상 새롭다. 그래서 두려운 거다.(국내는) 지진과 관련한 연구와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 이번 지진에서 진앙과 거리, 진도뿐 아니라 지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롭게 알지 않았나. 양산단층 연구도 부족한데 새로운 단층에서 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하루빨리 동해안 일대에 지진연구기관을 세워야 한다.

최양식 경주시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 16일 경주 양동마을 지진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경주시청]

최양식 경주시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 16일 경주 양동마을 지진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경주시청]

경주지진 때 비상 매뉴얼을 따로 만들었나.

국민안전처(현 행정안전부) 매뉴얼이 2017년 2월에 나왔다. 전국 현상이 아니니 늦더라. 그전에 동일본대지진(2011년 3월11일) 매뉴얼을 참고해 자체적으로 매뉴얼을 만들어 작년 9월 20일 배포했다. 지진 대응은 타이밍이다. 1년 뒤 완벽하게 해도 소용없다. 지진 방석(평소에 방석으로 사용하는 지진 방재모자)이 있다면 늘 깔고 앉든지 눈에 보이는 곳에 둬야지 창고에 두면 아무 소용 없다.

최 시장은 이 질문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는 “경주지진 대신 9·12 지진으로, 포항지진이 아닌 11·15 지진으로 바꿔 불렀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경주지진·포항지진이라고 언론이 계속 반복하면 해당 지역에 지진 이미지가 고착돼 관광객 감소 등 2차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에 중립적인 숫자를 쓰자는 제안이다.
포항에서 지진이 났을 때 경주는 피해가 크지 않았지만 불국사·첨성대 같은 주요 문화재 주변 상인들은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 영향으로 경주까지)관광객이 크게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최 시장은 “지난 9·12 지진 여파를 겨우 극복했는데 다시 (지진 악몽의)기억이 되살아났다”며 “경주·포항 모두 전쟁터처럼 방송에 나오지만 과장된 부분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경주시가 지난해 지진 때 동일본대지진 매뉴얼 등을 참고해 자체적으로 만든 지진 시민 대응 요령. 뒤에 자석을 부착해 냉장고에 붙여둘 수 있게 했다. 최은경 기자

경주시가 지난해 지진 때 동일본대지진 매뉴얼 등을 참고해 자체적으로 만든 지진 시민 대응 요령. 뒤에 자석을 부착해 냉장고에 붙여둘 수 있게 했다. 최은경 기자

관광객 감소 외에 아쉽거나 힘들었던 점은.

지자체에만 대책을 요구하지 말고 중앙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가령 포항의 이재민 문제는 포항시가 해결하기 어렵다. 국토교통부가 지원책을 내놓은 것은 잘한 거다. 법 체제도 정비해야 한다. 지진으로 집이 부서지면 국가에서 소파(小破·소규모 피해)는 100만원, 반파(半破)는 450만원, 전파(全破)는 900만원을 보상해준다. 턱없이 부족하다. 그마저도 주거형 건물만 적용 대상이다. 또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규정은 수해 기준이라 지진에 맞지 않는다. 지진 피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국민 성금에 기대기보다 구체적 정부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래도 지자체 역할이 중요한데 포항시에 조언한다면.

포항시가 열심히 하고 있다. 북구가 지역구인 국회의원은 흥해체육관에서 시민들과 밤새 머물더라. 한 가지 꼽자면 (지진 트라우마로 고통받을)시민들에게 안정감을 줘야 한다고 이강덕 포항시장에게 조언했다. 그러려면 현재 상황과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또 심리상담가를 현장에 많이 투입해야 한다.

지난 10월 30일 경주시청 어린이집에서 원생들이 지진 방재모자를 쓰고 지진 대피 훈련을 했다. [사진 경주시청]

지난 10월 30일 경주시청 어린이집에서 원생들이 지진 방재모자를 쓰고 지진 대피 훈련을 했다. [사진 경주시청]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정답인가.

이강덕 시장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고민했다고 하더라(정부는 20일 포항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무조건 하라고 했다. 재난지역으로 각인될 위험이 있을 수 있지만 모금을 하고 국가 지원을 받으려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경주 역시 문화재 훼손 등 피해를 봤다. 향후 지진 대책은.

문화재 내진 보강 등이 필요한데 경주시가 하기에 한계가 있다. 비상 훈련 등 교육을 더 철저히 하고 경주 지역의 모든 어린이집에 평소 방석으로 쓸 수 있는 지진방재 모자를 12월까지 구비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최양식 경주시장. [사진 경주시청]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최양식 경주시장. [사진 경주시청]

경주시는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포항 이재민들에게 모포 1000장을 보내고 자원봉사자와 밥차를 지원했다. 16일에는 최 시장이 포항시 재난안전대책본부을 찾아 포항시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최 시장은 “언제 내가 사는 곳에 지진이 찾아올지 모른다. 온 국민이 동참해 지진 피해의 아픔을 나누고 극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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