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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만 명이 본 세기의 성 대결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Q&A

중앙일보

입력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우리가 기다려 온 이야기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여섯 가지 궁금증

[매거진M] 1973년 전 세계를 들끓게 했던 세기의 성 대결이 있었다. 여자 테니스 챔피언 빌리 진 킹(당시 29세)과 한 때 윔블던 남자 챔피언이었지만, 은퇴하고 시니어 리그에서 뛰고 있는 바비 릭스(당시 55세)가 맞붙었다. 남성 우월주의자이자 미디어의 관심에 목마른 릭스는 “여자 테니스는 열등하다”며 여성들을 자극했고, 킹은 성평등 쟁취란 사명감을 갖고 경기에 임했다.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원제 Battle Of The Sexes, 11월 16일 개봉, 발레리 페리스·조나단 데이턴 감독, 이하 ‘빌리 진 킹’)을 보면 두 번 감동한다. 변화의 물결이 거셌던 역동적인 70년대 풍경에 흥분하고, 그것을 균형적인 시선으로 포착해낸 영화의 아름다움에 감격한다. 이 작품을 더 깊이 즐기기 위해 여섯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1 싱크로율 100% 엠마 스톤은 어떻게 빌리 진 킹이 됐나?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빌리 진 킹’의 스틸 컷이 처음 공개됐을 때 많은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라라랜드’(2016, 데이미언 셔젤 감독)에서 봤던 노래하고 춤추던 사랑스러운 미아(엠마 스톤)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었기 때문이다. 볕에 그을린 건강한 피부의 빌리 진 킹이 70년대 샤기 컷을 하고 호쾌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아이콘을 연기한다는 것, 그것은 엠마 스톤(29)에게 모험이지만 해 볼 만한 도전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역할 중 신체적으로 가장 고됐다”는 그는, 우선 겉모습부터 바꿔나갔다. 테니스 경험이 전무한 터라 3개월간 체력 단련과 테니스 연습을 병행했고, 7kg를 찌워 운동선수의 탄력 있는 몸으로 거듭났다. 스톤은 킹에 대해 “심오하고 광범위한 연구가 필요했다”고 말하는데 그의 과거 영상을 보며 목소리, 말투, 걸음걸이 등을 연습했고, 신념, 인간관계, 가족사, 그가 짊어졌던 압박감까지 학습했다. 당사자인 킹(74)이 “엠마가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알 것”이라고 인정했을 만큼.

엠마 스톤(왼쪽)과 빌리 진 킹  [AP=연합뉴스]

엠마 스톤(왼쪽)과 빌리 진 킹 [AP=연합뉴스]

발레리 페리스 감독은 두 사람의 비슷한 성격에 주목했다. “둘 다 진취적이고 호기심이 왕성하며, 강인함과 약함이 있고, 유쾌하고 낙천적”이라는 것. 촬영을 앞두고 킹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스톤은 이에 동의했다. “테니스 코트는 영화 세트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방비 상태로 서서 자신의 기술과 감정을 모두에게 드러내야 한다는 점이. 그도 나도, 똑같은 ‘퍼포머’(performer)다.” 스톤의 말이다.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스톤이 킹으로 ‘빙의’하는데 의상이 한몫했다. “너무 귀여운 디자인은 전부 버렸다”는 메리 조프레즈 의상감독은 “셔츠, 터틀넥, 조끼 등을 활용해 스톤을 살짝 터프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운동복의 경우, 당시 흰옷, 흰 운동화란 엄격한 규칙을 뒤집었던 디자이너 테드 틴링(1910~1990)의 디자인을 따랐다. 컬러풀한 색감, 다양한 종류의 네크라인, 화려한 장식을 덧입혔다. 실제 ‘성 대결’ 때 킹이 입은, 상체에 파랑 스팽글 장식이 들어간 운동복은 영화에 똑같이 재현된다. 킹의 트레이드 마크인 파란색 아디다스 운동화도 지금은 생산하지 않아 특별 제작했다.

#2 왜 바비 릭스에 스티브 카렐을 캐스팅했을까?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타고난 ‘쇼맨’이었던 릭스는 ‘성 대결’ 전 각종 광고와 화보를 찍고 다녔는데, 테니스 라켓만 들고 누드 촬영을 감행하기도 했다. 페리스 감독은 “누드신을 소화할 만한 배우가 스티브 카렐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뿐일까. ‘미스 리틀 선샤인’(2006)으로 카렐과 연을 맺은 페리스·데이턴 감독은 이 배우의 심연을 잘 알고 있었다. 페리스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릭스는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로 오랫동안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광대 같은 겉모습 뒤에 버림받은 중년이 있었다. 카렐은 그런 복합적인 인물을 그려낼 줄 아는 배우다.”

#3 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가 친구였다고?

실제 빌리 진 킹(왼쪽)과 바비 릭스 [AP=연합뉴스]

실제 빌리 진 킹(왼쪽)과 바비 릭스 [AP=연합뉴스]

세기의 라이벌이던 두 사람은 화해했을까. 각본가 사이먼 뷰포이는 킹을 장시간 취재하면서 “킹이 의외로 릭스를 좋아했음”을 알게 된다. 킹이 싸운 대상은 한 남자가 아니었고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사회 전반의 믿음 체계’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릭스를 진짜 성차별주의자로 보기 보다, ‘남성 우월주의자 대 여성해방 사상의 구도가 무르익은 것을 알고 이를 유명세에 이용한 사람’으로 해석했다. 릭스는 킹을 테니스 선수로서 존경했다. 두 사람은 오랜 친구로 지냈는데, 릭스(1918~1995)가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 중 한 명이 킹이었다.

#4 마지막 빅매치 어떻게 찍었나.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킹은 제작진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경기 장면을 멋지게 보여줄 필요는 없다. 정확하게만 찍어달라.” 1970년대 경기 스타일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정적이었다. 선수들의 기술과 체력은 계속 진화하기 때문. 제작진은 이를 재현하기 위해 73년 경기를 수차례 돌려보며 장면을 구상했다. 실제 스포츠 중계처럼 보이도록 클로즈업이나 빠른 장면 전환 같은 눈속임은 쓰지 않았다.

다만 킹과 릭스가 랠리를 길게 주고받는 장면엔 대역을 썼다. 스톤의 대역은 25세 프로선수 캐틀린 크리스티안. 그는 스톤과 체격이 같았고, 무엇보다 킹의 테니스 스타일을 따라 할 수 있었다. 구식 나무 라켓을 들고 직접 킹에게 강습을 받은 크리스티안은 킹의 승리를 이렇게 분석했다. “당시엔 지금과 달리 시간적 여유가 있어 네트 앞까지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킹은 릭스가 코트에서 강아지처럼 달리게 만드는 전략을 취했고 그게 승리의 비결이었다.”

#5 ‘성 대결’은 미국을 어떻게 바꿨나?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성 대결’이 열린 1973년은 격동의 해였다. 전설적인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가 창간했고, 남녀가 균등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법령 ‘타이틀 나인’이 통과됐다. 일상의 불평등은 존재했지만, 서서히 인종·성별· 종교 등의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때 킹과 릭스의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성 대결은 일회성 경기가 아니라 남녀평등에 관한 치열한 토론의 장이 됐다. 당시 킹은 여자 선수의 상금이 남자 선수의 상금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것에 반발해 동료들과 여자테니스협회를 만들고 따로 경기를 벌였다. 그는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는데 성 대결이 결정적 이벤트가 될 수 있다고 느꼈고, 그것은 현실이 됐다. 그가 불을 지핀 남녀 임금 격차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비단 ‘성 대결’에만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 8년 차였던 킹이 미용사인 마릴린(안드레아 라이즈보로)과 사랑에 빠지면서 성 정체성을 재발견하게 되고 사회적 편견에 부딪히며 고뇌하는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각본가 뷰포이는 킹과 인터뷰를 하면서 대중은 몰랐을 그의 내적 갈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영화는 여성이자 성소수자인 한 영웅의 분투가 되어야 했다. 81년 여성 프로선수 최초로 커밍아웃했던 킹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평등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성 소수자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 엠마 스톤은 또 한 번 여우주연상을 거머쥘까?

'라라랜드'

'라라랜드'

스톤은 ‘라라랜드’로 제89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17 여자 배우 최고 출연료의 주인공이 됐다. 우아하고 강인하게 킹으로 변신한 그에게 아카데미는 두 해 연속 주연상을 안길까. 이미 외신에선 그를 유력한 후보로 점치고 있다. 아카데미가 좋아할 요소(전기물, 긍정적인 스포츠 드라마, 통합의 메시지)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

스톤과 함께 거론되는 후보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황홀한 판타지 ‘셰이프오브 워터:사랑의 모양’(내년 개봉 예정)의 샐리 호킨스, 범죄물 ‘쓰리 빌보드 아웃사이드 에빙, 미주리’(마틴 맥도나 감독)의 프란시스 맥도맨드, 성장영화 ‘레이디 버드’(그레타 거윅 감독)의 시얼샤 로넌, 스티븐 스필버그의 차기작 ‘더 포스트’의 메릴 스트립 등이다.

숫자로 보는 ‘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

8배 1970년대 테니스 대회 남녀 상금 격차. 남자가 8배나 높았다.
9인 남녀 불평등을 비판하며 여자테니스협회를 따로 설립한 선수들 숫자. 빌리 진 킹을 비롯해 그의 복식 파트너였던 로지 카잘스(나탈리 모랄레스) 등이 있었다.
35mm ‘빌리 진 킹’은 70년대를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 35㎜ 필름 카메라로 찍었고 70년대에 나온 렌즈를 사용했다.
9000만명 세기의 성대결을 지켜본 전 세계 시청자. 달착륙 이후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58센트, 79센트 1973년, 미국의 남성 평균 임금을 1달러로 가정했을 때 여성 평균 임금은 58센트였다. 2017년 현재는 남성 평균 임금 1달러당 여성 평균 임금이 79센트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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