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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재료에 스토리 불어넣으면 작품 탄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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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호 08면

쁘띠 아쉬의 오브제들 ⓒ Lonneke VAN DER PALEN

쁘띠 아쉬의 오브제들 ⓒ Lonneke VAN DER PALEN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를 지향하는 에르메스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한 땀 한 땀 장인들의 솜씨로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자투리 재료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2010년 시작된 컬렉션 ‘쁘띠 아쉬(Petit h)’다. 가죽·실크·크리스털·도자기 등 사용하고 남은 최고급 소재를 활용해 아티스트와 장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탄생시킨 새로운 오브제다. 프랑스 외곽 팡탕에 있는 아틀리에에서 작업이 진행되며, 그곳에서 나온 결과물은 2013년 6월부터 파리 세브르 에르메스 매장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에르메스 ‘쁘띠 아쉬’ 아티스틱 디렉터 파스칼 뮈사르

이 친환경 업사이클링 예술공방을 이끄는 사람은 파스칼 뮈사르(Pascale Mussard). 에르메스 가문의 6세손으로 현재 에르메스의 수장인 악셀 뒤마,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인 피에르 알렉스 뒤마와는 외사촌지간이다. ‘쁘띠 아쉬’는 전세계 투어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는데, 올해는 지난 3월 로마 전시에 이어 처음으로 서울에서 특별전(11월 22일~12월 17일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이 열린다. 전시를 앞두고 중앙SUNDAY S매거진이 e메일로 그를 먼저 만났다.


자투리 자투리 가죽 조각으로 만든 토끼 테이블

자투리 자투리 가죽 조각으로 만든 토끼 테이블

자투리 가죽으로 만든 종이접이 스타일의 수탉 책장

자투리 가죽으로 만든 종이접이 스타일의 수탉 책장

밤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옷장

밤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옷장

실크와 악어가죽으로 만든 돛단배

실크와 악어가죽으로 만든 돛단배

캐시미어 소재로 만든 동물 마스크

캐시미어 소재로 만든 동물 마스크

테라조 펜던트

테라조 펜던트

파스칼 뮈사르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유럽 비즈니스 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니콜 드 베시안이라는 스튜디오를 통해 디자인계에 입문했고, 1978년 에르메스에 입사해 여성복 및 액세서리 자재 담당, 광고 및 홍보 담당, 쇼윈도 디스플레이 담당을 거쳐 2010년 ‘쁘띠 아쉬’ 공방을 만들어 지금까지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법을 공부했는데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건축가셨고 어머니는 열정적인 여행가이자 뛰어난 스토리텔러였다. 여행이 지금 같이 흔치 않았던 시대에 여행을 통해 새로운 문물을 접하셨다. 그런 창의적인 부모님께 영감을 받은 덕분인 것 같다.”  
‘쁘띠 아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두 가지 이유다. 나는 2차 대전 직후 출생했는데, 상품이나 물자를 구하기가 아주 힘들었고 소유하고 있는 물건은 무엇이든 소중하게 여겼던 시기였다. 개신교의 엄격한 종교적 교육도 한 몫을 했다. 아무 것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며,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으니 어떤 물건이라도 잘 간수해야 한다고 배웠다.”  
쁘띠 아쉬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 경험이라면.
“여성복 구매 담당으로 일하면서 소재의 품질이 곧 상품의 품질과 직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방에서나 정원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비주얼 머천다이징 업무를 담당하면서 다양한 아티스트와 장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경험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밑바탕이 됐다. 이 프로젝트는 오브제의 미래에 대한, 재료에 대한(레더나 실크를 더 이상 구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노하우와 활용에 대한 고려였다.”  
업사이클링은 비즈니스·예술·친환경적인 면에서 매우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쁘띠 아쉬에서는 디자이너와 장인들이 ‘알리바바의 동굴’이라 부르는 미팅을 한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재료가 한데 모여 있는 공방에서 독특한 스토리와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혁신적인 오브제를 탄생시킨다.”  
‘쁘띠 아쉬’의 특징이라면.
“실용성과 동시에 메종의 특성을 반영한 절제된 스타일이다. 아티스트들은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특별한 오브제를 만든다. 여기에는 재탄생과 ‘업사이클링’이라는 접근방식이 내재돼 있다. 리크리에이션(recreation) 전문 연구소인 쁘띠 아쉬에서 우리는 형태·소재·컬러·기법 등의 측면에서 한계를 끊임없이 실험한다. 자투리 재료를 다시 바느질하고, 다시 디자인하며, 다시 창조하는 것이다.”  
어떤 재료가 몇 종류나 있나.
“2009년부터 그룹의 모든 ‘메티에(재료)’팀과 직접 연락하고 있는데, 그들이 재료들을 제공한다. 에르메스는 16개 제품군이 있다. 가방·다이어리 및 가죽소품·마구·실크·여성복·남성복·주얼리·시계·벨트·장갑·슈즈·모자·패션 액세서리·향수·테이블웨어·가구와 패브릭·벽지를 갖춘 홈 컬렉션이다.”  
쁘띠 아쉬의 오브제들 ⓒ Lonneke VAN DER PALEN

쁘띠 아쉬의 오브제들 ⓒ Lonneke VAN DER PALEN

쁘띠 아쉬 공방에서 아티스트가 자투리 재료를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모습

쁘띠 아쉬 공방에서 아티스트가 자투리 재료를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모습

공방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는 몇 명이고 이들이 일 년에 만들어내는 작품은 몇 개인가.
“협력 아티스트는 총 88명이며, 2016년에는 총 160개의 새로운 오브제를 작업했다.”  
물건을 알뜰하게 쓰려는 것은 모든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한국의 조각보라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
만약 보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말해달라.
“나는 재활용한 오브제에 애착을 느낀다. 프로방스 지방의 ‘피케,’ 미국의 ‘패치워크’, 일본의 ‘보로스’나 ‘킨츠키’ 등 나라별 기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작업을 함께 한 이슬기 작가 덕에 알게 된 한국의 기법이 하나 있는데 바로 ‘누비(nubi)’다. 또 최지원이라는 한국 학생을 통해 ‘하회탈’과 ‘조각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 학생과 함께 작업한 캐시미어 소재의 탈(masks)을 이번 서울 전시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본인이 만든 작품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꼽는다면.
“사실 모든 프로젝트에는 고유한 매력이 있다. 나는 신기술(레이저·3D 프린터 등)이나 새로 도입한 소재(고리버들·알루미늄 등)를 기존 소재(실크 페이퍼·테라조 등)와 결합하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새로운 소재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하다.
“서울 전시를 위해 ‘호랑이’라는 컨셉트를 상정하면서 가죽에 프린팅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막상 진행해 보니 생각만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양한 시도 끝에, 레더 스컬프팅·레더 스트라이프 중첩 등 몇 가지 기법을 조합해 혁신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총 189개의 가죽 조각을 모아 222시간에 걸쳐 끈질기게 작업한 결과다. 메탈 구조물에 오리가미 기법을 적용한 것도 있는데, 스티치·폴리싱 등의 작업을 통해 95개의 면으로 완성한 수탉 형태의 책꽂이다. 이런 제작 방식을 시도한 것은 처음이었으며, 총 225시간이 소요됐다.”  
쁘띠 아쉬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에르메스의 아이덴티티란.
“에르메스의 오브제들은 모두 이야기를 전한다. 쁘띠 아쉬는 소재들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융합적이고, 시적이면서, 실용성을 지닌 특별한 오브제로 거듭나는 공간이자 브랜드다. 실용성에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에 실용성을 부여한다는 에르메스적 가치에 기반을 두었다.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이란 없다(Nothing is superfluous)’는 믿음이다.”  
쁘띠 아쉬의 오브제들 ⓒ Lonneke VAN DER PALEN

쁘띠 아쉬의 오브제들 ⓒ Lonneke VAN DER PALEN

이질적인 재료를 결합하는 일도 재미있겠다.
“한국 전시에서 가죽과 나무 소재의 미니어처 의자 위에 놓인 크리스털 시계를 ‘피파(Pippa)’라는 제목으로 선보인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에는 도자기·향수·가죽을 사용했다. 알루미늄과 코르크를 결합한다거나 크리스털 몰드를 사용한 가죽 작업도 독특하게 느낄 것이다.”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라면.
“나에게 세일즈란 놀라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직접 와서 그것을 확인해주면 좋겠다. 한국의 문화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고 그것을 호랑이·수탉·자연 등의 모티브로 풀어냈다.”  
협업 작가로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를 고른 이유는.
“포토그래퍼이자 필름메이커인 그와 작업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자 모험이었다. 정 작가의 비전과 제안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마침 그는 2004년 에르메스 미술상의 최종 3인 후보 중 하나다.”  
한국 전시를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나.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가 오픈했을 때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을 재방문하고 오랜 친구들과 고객, 파트너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 장인과 디자이너에 대한 헌정의 의미가 담겨있는 전시이자 우리가 한국의 전통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됐으면 한다.”  

전시와 함께 22일부터 12월 2일까지는 아티스트 이자벨 룰루와 함께 체험하는 워크숍도 준비돼 있다(문의: 02-542-6622 / 선착순 마감)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에르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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