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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치매 막는 앱·로봇, 목소리 SNS … 청년 창업가들 실버에 꽂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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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고령사회의 블루오션 ‘노인을 위한 스타트업’ 

‘노인을 위한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 나아가며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아직 고령층이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은 젊은 층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다. 초고령화 사회를 겨냥한 ‘실버 스타트업’이 속속 생겨나는 이유다.

IT 활용하는 ‘캐어유’ #스마트폰·PC로 게임 등 즐기며 #치매 예방하는 프로그램 만들어 #실버 전용 SNS 만든 ‘로하’ #글자 입력 어려워하는 고령층 위해 #음성 메시지 주고받는 서비스 개발 #노인에 의한 사업 ‘마리테이블’ #취미 강의·키트 판매하는 스타트업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제품 제공

2014년 설립된 ‘캐어유’는 정보기술(IT)과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실버 콘텐트’를 만드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하루 5분 스마트폰이나 PC로 다양한 게임 등을 즐기며 치매를 예방하는 인지재활 프로그램 ‘엔브레인’과 ‘정신건강테스트’ 애플리케이션 등이 대표상품이다.

‘실버 스타트업’ 3인방. 치매 예방 앱을 개발한 ‘캐어유’ 신준영 대표. [사진 캐어유]

‘실버 스타트업’ 3인방. 치매 예방 앱을 개발한 ‘캐어유’ 신준영 대표. [사진 캐어유]

◆‘앱으로 치매 잡고 스마트 여가 즐기는 노인’ 꿈꿔요=캐어유는 신준영(41) 대표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요양원에서 1년 넘게 일했는데, 건강·의료 문제뿐 아니라 취미·여가생활을 어떻게 보내는지까지 크게 신경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게임과학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교육·치료용 콘텐트 개발이라는 사업 아이템을 떠올리게 됐고, KAIST 경영대학에서 사회적 기업가 MBA를 수료하면서 사업을 구체화했다.

캐어유는 스마트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사진 캐어유]

캐어유는 스마트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사진 캐어유]

시작은 고령층의 관심이 높은 치매 예방·진단 콘텐트로 했지만 향후 사업 분야를 넓힐 예정이다. 먼저 고령층을 위한 스마트폰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방황하던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스마트폰 강사 일을 맡기면서 청소년과 고령층이 서로 돕고, 청소년들이 심리적으로 성장하는 효과도 낳았다.

노인을 위한 스타트업

노인을 위한 스타트업

고령층을 위한 공간 구축 사업도 한다. 최근 안양시 노인종합복지관 내 ‘스마트힐링센터’ 구축 사업을 위탁받았다. 센터에 실버 콘텐트를 채워 넣고, 스마트 기기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 또 로봇에 치매 예방·진단 서비스를 적용하기 위한 연구도 시작했다. 신 대표는 “고령층 대상 사업이 아직은 정부보조금이나 요양급여를 통해 서비스가 제공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향후 교육 인력 양성, 로봇용 서비스 개발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수익모델도 늘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버 스타트업’ 3인방. 노인을 위한 음성 SNS를 개발 중인 ‘로하’ 김경문 대표. [사진 로하]

‘실버 스타트업’ 3인방. 노인을 위한 음성 SNS를 개발 중인 ‘로하’ 김경문 대표. [사진 로하]

◆‘노인을 위한 SNS, 고독 줄여줄 소통 스피커’=부산에서 창업한 ‘로하’도 고령층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스마트폰 음성 플랫폼을 개발했다. 김경문(32) 로하 대표는 “어르신들도 스마트폰을 쓰긴 하지만 젊은 층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거나 문화 콘텐트를 즐기는 경우는 거의 없고, 글자 입력도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음성 기반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음성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메신저 서비스만 개발됐지만, 이후 음성 SNS로 기능을 확대할 예정이다. 등산이나 은퇴 후 창업과 같이 고령층끼리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공유하는 ‘실버 전용 SNS’가 탄생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2014년 사업 시작 때부터 ‘실버’에 꽂혔다. 처음 내놓은 서비스는 디지털 유산 관리였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위해 디지털 기록들을 정리해 주고, 남기고 싶은 사진·영상·글 등을 모아 가족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 과연 아버지가 나에게 어떤 것들을 남겨 주고 싶었을지 생각하다 디지털 유산 관리 서비스를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노인을 위한 스타트업

노인을 위한 스타트업

사업은 잘됐다. 벤처 지원펀드로부터 4억원을 투자받았고, 각종 기관에서 창업 우수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요도 꽤 많았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사람을 매일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김 대표는 방향을 수정해 노인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 개발에 도전했다.

또 혼자 사는 노인들의 고독감을 줄일 수 있는 음성 소통 스피커를 자체 개발하는 등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스피커로 노인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외로움을 달래 주고 고독사도 방지하는 사업이다. 그는 “젊은 창업가들은 고령층의 불편을 깊이 있게 관찰할 기회가 적어 관련 사업에 잘 도전하지 않는 것 같다”며 “하지만 고령층은 한번 서비스에 안착하면 돈이나 시간을 오랫동안 투자하는 성향이 있어 충분히 수익을 내고 사회적 기여도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실버 스타트업’ 3인방. 고령층이 생산한 취미생활 키트와 취미강의를 서비스하는 ‘마리테이블’ 양순모 대표. [사진 마리테이블]

‘실버 스타트업’ 3인방. 고령층이 생산한 취미생활 키트와 취미강의를 서비스하는 ‘마리테이블’ 양순모 대표. [사진 마리테이블]

◆노인이 만드는 상품, 노인 일자리를 위한 스타트업=노인을 위한 서비스가 아닌, 노인에 의한 서비스를 사업 아이템으로 정한 스타트업도 있다. 양순모(30) 대표가 설립한 ‘마리테이블’이다. 마리테이블의 대표 상품은 온라인 취미 강의와 취미생활 DIY 키트를 함께 제공하는 ‘하비풀’ 서비스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전문 아티스트의 취미생활 강의를 보면서 구매한 도구를 이용해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 5월 말 서비스를 시작해 5000건 이상 판매됐고, 지난달엔 매출 5000만원을 달성했다. 다섯 달 만에 3배 정도 성장한 것이다.

하비풀 서비스가 ‘실버 스타트업’인 이유는 모든 제품(취미 키트)의 조립·생산·포장 과정이 고령층의 손길을 거쳐 이뤄지기 때문이다. 양 대표가 애초에 창업을 한 이유가 노인 일자리 문제 해결에 기여하면서 수익도 올리는 것이었다.

그는 “사업 아이템을 정한 뒤 고령층에 생산을 맡긴 게 아니라 고령층에 일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만한 사업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다 시작한 사업”이라며 “취미생활 키트는 어르신들도 쉽게 생산할 수 있고 수익성도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노인을 위한 스타트업

노인을 위한 스타트업

양 대표는 창업 전 쪽방촌에 사는 노인들의 생활을 들여다본 경험 때문에 노인 일자리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 졸업 후 지인의 소개로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 일하고 수익도 공유하는 온라인 꽃가게를 2년간 운영했는데, 이때 소외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원래 ‘가슴 뛰는 일’을 찾기 위해 영국에서 공부를 더 한 뒤 아프리카로 가서 사업을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쪽방촌 문제를 알게 되면서 예약했던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회사를 설립한 뒤 KAIST 경영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시작했는데 학교 수업을 통해 좋은 교수님들과 동료들을 만나 시야를 넓히면서 구체적인 비전과 계획을 설정하게 됐다”며 “현재는 6명의 고령층이 간접고용을 통해 하비풀 제품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지만 이후 매출이 늘고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고령층 고용을 늘리고 직접고용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 BOX] 고령친화산업 2년 뒤엔 최대 124조원, 10년 새 4배로 커져

‘실버 시대’는 이미 현실이 됐다. 내년이면 한국 사회는 ‘고령사회’로 진입한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구분한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올해 기준 13.8%로 내년이면 14% 이상이 된다. 초고령사회도 코앞이다. 2026년이면 노인 인구가 20%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버시장도 당연히 커질 전망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고령친화산업 규모가 2010년 33조원에서 10년 뒤인 2020년 최대 124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고령층을 위한 일자리 증가는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55~79세 인구는 1291만6000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4.2%(51만9000명) 증가한 반면 경제활동참가율은 56.2%, 고용률은 54.8%(708만4000명)로 1년 전에 비해 1.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또 조사 시점부터 지난 1년간 구직경험자의 비율은 15.8%로 전년 대비 0.1%포인트 상승했지만 취업경험자 비율은 오히려 61.7%로 0.8%포인트 내렸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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