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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다시보기] "37년간 광화문 지킨 비결? 막 퍼주잖아"

중앙일보

입력

맛대맛 다시보기 ㉚ 광화문집
매주 전문가 추천으로 식당을 추리고 독자 투표를 거쳐 1·2위 집을 소개했던 '맛대맛 라이벌'. 2014년 2월 5일 시작해 1년 동안 77곳의 식당을 소개했다. 1위집은 ‘오랜 역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집이 지금도 여전할까, 값은 그대로일까. 맛대맛 라이벌에 소개했던 맛집을 돌아보는 ‘맛대맛 다시보기’ 30회는 김치찌개(2014년 3월 5일 게재)다.

'광화문집' 김치찌개는 돼지고기 목살의 담백한 맛과 푹 익은 김치의 시큼한 맛이 잘 어우러져 있다. 김경록 기자

'광화문집' 김치찌개는 돼지고기 목살의 담백한 맛과 푹 익은 김치의 시큼한 맛이 잘 어우러져 있다. 김경록 기자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정문(주차장 입구쪽)으로 난 골목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자마자 대각선으로 난 좁은 골목이 나온다. 차 한대도 지나가기 어려울 만큼 좁은 이 골목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낡디낡은 '광화문집'이란 간판이 눈에 띈다. 50년 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간판이다.
"나보다 먼저 이 간판 달고 장사한 사람이 3명 더 있어. 지금 걸려있는 저 간판이 50년도 넘은 물건이야. 물론 나 이전엔 된장찌개랑 오징어볶음 이런 거 저런 거 다 팔았지만. "
주인 노병복(74) 할머니는 1980년 광화문집을 인수해 김치찌개를 팔기 시작했다. 김치찌개 맛집으로 알려진 곳인데 만나자마자 대표 메뉴인 김치찌개 대신 간판 자랑부터 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없지만 요즘 보기 드문 옛날 방식으로 제작돼 골동품 수집가나 역사연구가들이 눈독을 들이는 '물건'이라고 한다. 그는 "몇 년 전인가에도 무슨 민속박물관 직원이라는 사람이 와서는 우리집 간판을 팔라고 했다"며 "보물인 간판을 팔 수 없어 20년 된 국자 2개만 팔았다"고 말했다.

김치찌개로만 승부

50년 넘은 광화문집 간판. 김경록 기자

50년 넘은 광화문집 간판. 김경록 기자

노 할머니가 간판을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는 건 단지 경제적 문화적 가치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 간판이 집 사고 자식 키우며 지금껏 살아올 수 있게 만들어준 은인같은 물건이라고 생각해서다. 충북 청주가 고향인 노 할머니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20대 중반에 서울로 올라왔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한동안 생계를 위해 닥치는대로 이런저런 일을 했다. 그 중 한 곳이 광화문집이었다. 직원으로 일할 땐 여러 메뉴를 같이 파는 보통 밥집이었는데 얼마 후 주인이 장사가 안된다며 가게를 내놨다. 노 할머니는 살던 전세집을 월세집으로 옮기면서 돈을 마련해 이 식당을 인수했다.
가게 인수 후 메뉴부터 손봤다. 막상 혼자 해보니 많은 메뉴를 혼자 만들어 팔기 버거웠기 때문이다. 노 할머니는 "음식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며 "그래서 제일 자신있는 김치찌개 하나만 팔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광화문집은 김치찌개 전문점이 됐다.

37년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광화문집'의 김치찌개. [사진 주영욱]

37년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광화문집'의 김치찌개. [사진 주영욱]

메뉴는 하나지만 음식은 넉넉하게 줬다. 그래서일까. 이전 주인은 장사가 안돼 가게를 내놓아야 했지만 노 할머니가 인수한 후부턴 가게는 늘 손님들로 북적였다. 돈도 제법 벌었다. 장사 시작 1년 만에 집을 살 정도였다. 모두 살기 힘들었던 1997년 외환위기 땐 오히려 손님이 더 늘었다. 아침 9시 문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가게 앞에 줄 설 정도였다.

김치 2000포기 담가

세월이 흘러 색다르고 고급스런 음식점이 많아졌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집을 찾는다. 30년 동안 변함없는 할머니의 김치찌개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다. 노 할머니는 80년 가게를 처음 인수했을 때와 똑같이 지금도 국산 배추로 한 해 전 담근 김치를 사용해 찌개를 끓인다. 매년 2000포기쯤 담그는데 3~4명이 15일을 꼬박 만든다. 돼지고기는 담백한 맛을 내는 목살만 넣는다. 또 손님상에 내기 전에 반드시 미리 한 번 끓인다. 주방 왼쪽엔 냄비에 담긴 찌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광화문집'은 아침에 김치찌개를 끓여 미리 준비해 놓는다. 이렇게 끓여놓으면 국물이 더 우러나와 맛있을뿐 아니라 손님상에 나갔을 때 빨리 끓어 금방 먹을 수 있다. 김경록 기자

'광화문집'은 아침에 김치찌개를 끓여 미리 준비해 놓는다. 이렇게 끓여놓으면 국물이 더 우러나와 맛있을뿐 아니라 손님상에 나갔을 때 빨리 끓어 금방 먹을 수 있다. 김경록 기자

"아침에 가게 나오자마자 미리 1인용, 2인용, 4인용 냄비로 나눠서 찌개를 한 번 팔팔 끓여. 생으로 한 번 끓이는 것보다 국물이 더 우러나와서 맛이 좋거든. 게다가 손님상에 나갔을 때도 훨씬 빨리 끓어서 금방 먹을 수 있으니 더 좋지. 그런게 가끔 그 냄비 보고 '먹다가 남은 거냐'고 묻는 손님도 있어. "

노병복 사장은 광화문집을 인수한 후 가장 자신있는 메뉴인 김치찌개를 팔았다. 김경록 기자

노병복 사장은 광화문집을 인수한 후 가장 자신있는 메뉴인 김치찌개를 팔았다. 김경록 기자

여전한 가격·인심

맛대맛에 소개한 후 3년 8개월 만인 11월 14일 광화문집을 다시 찾았다. 점심 시간인 낮 12시 무렵이었는데 골목 입구부터 가게 앞에 줄 서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10분쯤 기다린 후 가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게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노 할머니의 보물 1호인 간판도 그대로 걸려 있었다. 바뀌지 않은 건 또 있었다. 바로 가격이다.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있는 김치찌개 가격이 7000원이다. 식재료비며 인건비가 올라 대부분 가게들이 같은 기간 1000원이라도 값을 더 올렸지만 광화문집은 예전 그대로였다. 양도 변함없이 푸짐했다. 다만 노 할머니는 건강상의 이유로 사흘간 가게를 비우고 딸이 대신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가격이요? 7000원이라고 비싸다는 말도 들어요. 엄마도 올릴 생각이 없으시대요. 식재료 값 내리면 음식 값 내릴 수 있냐면서요. 꾸준히 와주시는 손님들이 고마워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진 버텨보신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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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메뉴: 돼지김치찌개 7000원, 계란말이 5000원 ·개점: 1980년 ·주소: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5길 12(종로구 당주동 43) ·전화번호: 02-739-7737 ·좌석수: 30석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10시(설·추석 당일과 다음날만 휴무) ·주차: 불가

'광화문집'의 74세 노 사장 아직 주방 지켜 #담백한 돼지고기 목살만 사용 #맛집으로 성공한 비결은 '큰 손'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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