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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지진대피소가 어딘지는 알려줘야 하지 않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진 발생시 옥외 대피소 역할을 하는 서울 중구 한 초등학교의 정문. 올 9월 대피소로 지정됐지만 이를 알리는 표지판은 설치돼 있지 않다. 김상선 기자

지진 발생시 옥외 대피소 역할을 하는 서울 중구 한 초등학교의 정문. 올 9월 대피소로 지정됐지만 이를 알리는 표지판은 설치돼 있지 않다. 김상선 기자

‘길을 걷다 지진이 나면 어디로 달려가야 할까.’

서울 지진대피소는 2200여 곳 #재난을 극복하는 ‘거점‘되기도 #절반이 표지판 없어 주민도 몰라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관측 이래 두 번째로 강한 진도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이런 불길한 상상을 해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배운 대로라면 ‘떨어지는 구조물에 맞지 않을 공터 어딘가’로 달려가야 한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생각이 막힌다. 지진이 나면 즉시 몸을 피해야 할 ‘지진대피소’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아서다.

서울시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서울의 지진대피소는 2200여 곳”이라고 했다. 기존 700여 곳에서 최근 세 배 이상으로 늘렸다고 자신 있게 설명했다.

이중 건물 붕괴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개방형 ‘옥외대피소’는 1700여 곳이다. 대부분 학교 운동장이다. 주거지가 파손된 이재민들이 거주하는 ‘실내구호소’는 560여 곳이다. 주로 학교·체육센터 등이 지정돼 있다.

그런데, 그곳이 어디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안내표지판 설치 속도가 지진 대피소 확충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어서다. 그나마도 올해 초부터 표지판을 달기 시작한 게 이 정도다. 표지판은 아직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지진대피소는 지진 발생 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집결지’ 역할도 한다. 한 울타리 안에서 부상을 치료받고, 음식을 지원받는 등 후속 조치가 가능해진다. 재난을 극복해나가는 ‘거점’인 셈이다.

지난 16일 찾은 서울 중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선 아이들이 해맑게 뛰어놀고 있었다. 이 학교 운동장은 중구의 ‘옥외대피소’다. 현장을 취재하는 이유를 학교 직원이 물어왔다. “이곳이 지진대피소로 지정돼 있어서요”라고 했더니 “우리 학교가 지진 대피소라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내 표지판은 학교 어디에서도 없었다. 운동장에서 놀던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들에게 “이곳이 대피소인 걸 아느냐”는 질문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학교 인근 주민 10명에게 던진 같은 질문에 알고 있다고 답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종합대책을 내놓으며 2017년까지 지진에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당초 지난달 자치구와 함께 표지판 설치를 끝내려고 했지만 약간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올 12월 안에 설치를 모두 끝낼 예정”이라고도 했다. 자치구들도 부랴부랴 대피소의 안내 표지판 설치에 나섰다. 이번 포항 지진이 없었다면 안내 표지판 설치 약속을 지키려고 했을지 의문이다.

현재의 대피소 수는 약 1000만명인 서울시민들이 들어가기엔 부족하다. 대피소 2200여 곳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460만명가량이다. 안 그래도 부족한 대피소를 내실 있게 운영하지도 못하는 셈이다.

서울시는 지진 선진국 일본 고베대에서 지반 공학을 전공한 박사를 특채했다. 지진 전문가인 채종길 서울시 상황대응과 주임이다. 그의 말에 서울시의 현주소가 있었다. “일본에선 대피소 수백m 떨어진 곳에서부터 화살표와 그림으로 대피소 방향을 표시합니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한반도는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고 말한다. 경고 신호가 온 지금이 준비해야 할 때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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