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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100주년 앞둔 라트비아…수도 리가, 고도를 천천히 걷다

중앙일보

입력

“주변 5㎞ 내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집을 짓고 사는 게 소원입니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의 한 술집에서 만난 20대 청년의 얘기다. 기자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자 함께 있던 이곳 정부 관계자는 “라트비아인에게 ‘언제 행복하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라고 대답한다”소개했다. 곱씹어 보면 조용히 살고 싶어하는 라트비아인들의 심정엔 수백 년간 강대국들 틈바구니 수난의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다. 내년이면 라트비아는 독립 100주년을 맞는다. 그리고 수도 리가는 그 중심에서 천천히 변화의 싹을 피우고 있다.

200만 명의 ‘인간 띠’ 독립의 염원을 이루다  

1989년 탈린과 리가, 빌뉴스로 이어지는 발트 3국 시민 200만 명이 만든 ‘발틱의 길’

1989년 탈린과 리가, 빌뉴스로 이어지는 발트 3국 시민 200만 명이 만든 ‘발틱의 길’

라트비아는 유럽 대륙 북쪽 끄트머리에 있다. 발트해를 나란히 접하고 있는 발트 3국 중 하나다. 북쪽으로는 에스토니아, 남으로 리투아니아,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정식 국가명은 라트비아 공화국(LatvijasRepublika).

발트 3국은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에 있다. 그중에서도 라트비아는 발트 3국의 중심에 있다.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라트비아는 오랜 기간 스웨덴ㆍ폴란드ㆍ독일ㆍ러시아 등 주변 강국들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라트비아는 제정 러시아(1918년)와 소련연방(1991년)으로부터 모두 두 번 독립했다. 1918년 11월 18일 1차 세계대전 직후 시민혁명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날이다. 라트비아 정부는 이날을 독립 기념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라트비아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소련에 병합됐고 지도에서 사라졌다.

강대국의 압제 속에서도 라트비아인은 한 번도 독립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1989년 소련의 부당한 지배를 세계에 알리고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발트 3국 국민들이 손에 손을 맞잡았다. 소련이 발트 3국을 병합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 독ㆍ소 불가침 조약 50주년을 앞둔 때였다. 발트 3국에 이르는 620㎞를 200만 명이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들었다. 이들은 국가를 부르며 자유를 외쳤다. 이 모습이 전 세계로 중계됐고 마침내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자유를 갈망하는 ‘발트의 길’은 독립을 위한 비폭력투쟁의 상징이 됐고, 이들이 함께 부른 노래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수도 리가, 고도를 천천히 걷다    

검은머리 형제단 길드 전당

검은머리 형제단 길드 전당

인천에서 출발해 핀란드 헬싱키를 경유한 비행기는 13시간 만에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내렸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에 인접해 있고, 물가가 상대적으로 싸 이곳에 짐을 풀면 주변국을 여행하기 편하다.

리가는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라트비아어로 ‘구부러진 하천’을 뜻한다. 짙은 푸른빛을 반사한 건물 유리창,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파스텔톤 건물들은 섬세한 장식 문양과 색감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리가는 독일의 대주교였던 알베르트가 십자군을 이끌고 강어귀에 상륙한 1201년에 만들어졌다. 13세기 독일의 검은 머리 형제 길드(상공업 조합)와 선교사들이 리가로 이주하면서 도시가 형성됐다. 리가는 중세 독일 도시들의 상업동맹인 한자동맹 아래에서 번영을 누렸다. 도시 곳곳엔 당시의 영화를 보여주는 건물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도시 건물들은 아픈 역사의 흔적을 숨기지 못했다. ‘검은 머리 전당’부터 그렇다.

무역상들이 남긴 ‘검은 머리 전당’은 리가의 대표 건물로 구시가 여행의 시작점이다. 1334년 지어진 건물은 2차 세계대전 독일군에 의해 80%가 파괴됐다. 전쟁 후 소련은 독일의 잔재라며 건물을 흔적도 없이 철거했다. 2001년 리가 탄생 800년을 기념해 재건했지만 실제로는 상처를 품은 10여년 된 건물이다. 건물 안 박물관에는 당시 파괴된 건물 일부만이 남아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돔성당. 성당 꼭대기 닭은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알리는 척도였다. 다우가바 강 때문에 홍수가 자주 일어나 성당 주변을 높이면서 지대가 높아지고 성당이 낮아졌다.

돔성당. 성당 꼭대기 닭은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알리는 척도였다. 다우가바 강 때문에 홍수가 자주 일어나 성당 주변을 높이면서 지대가 높아지고 성당이 낮아졌다.

울퉁불퉁 난 돌길을 따라 300여m 정도 걸으면 돔 성당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성당 안 6768개의 파이프를 가진 오르간은 한때 유럽 최대의 크기를 자랑했다. 이곳은 알베르트 대주교가 자신의 집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곳이다. 1991년 라트비아의 독립이 선포됐던 곳이기도 하다.

발잠을 판매하는 상점. 라트비아에서 꼭 맛봐야 할 술로는 ‘발잠( Balsam)’이 있다. 24가지 재료를 넣고 한약처럼 끓여 만든 라트비아 전통주다. 라트비아인들은 술보다는 약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감기에 걸렸을 경우나 배가 아픈 경우에 특효약이라 믿고 있다.

발잠을 판매하는 상점. 라트비아에서 꼭 맛봐야 할 술로는 ‘발잠( Balsam)’이 있다. 24가지 재료를 넣고 한약처럼 끓여 만든 라트비아 전통주다. 라트비아인들은 술보다는 약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감기에 걸렸을 경우나 배가 아픈 경우에 특효약이라 믿고 있다.

성당 앞 돔 광장 노천카페에 앉아 라트비아 ‘국민맥주’ 알다리스(aldaris)를 맛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라트비아는 독일 한자동맹의 영향으로 맥주의 역사가 깊다. 맥주는 한 병에 3유로(약 3800원) 정도다. 라트비아는 주변국에 비해 맥줏값이 싸서 이웃 나라에서 자동차를 이용해 국경을 넘어 맥주 쇼핑을 하는 이들이 많다고 현지 가이드는 말했다.

구시가지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은 돔 성당과 함께 눈길을 끄는 랜드마크 중 하나다.

구시가지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은 돔 성당과 함께 눈길을 끄는 랜드마크 중 하나다.

구시가지에 있는 베드로 성당은 돔 성당과 함께 눈길을 끄는 랜드마크 중 하나다. 1209년 건설됐다. 123m 높이의 교회 첨탑에는 전망대가 있어 리가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구시가에서 베드로 성당은 유일한 고층건물이다.

‘삼형제의 건물’ 각각 15~18세기 양식 건물 3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삼형제의 건물’ 각각 15~18세기 양식 건물 3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돔 광장에서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리가에서 가장 오래된 중세 건물인 ‘3형제 건물’이 나온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각기 다른 양식으로 만들어진 집 세 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오른쪽이 가장 맏형으로 왼편으로 갈수록 한 세기씩 젊어진다. 꼭대기 작은 창문들이 눈에 띄는데 당시에는 창문 크기로 세금을 징수했기 때문에 창을 이처럼 작게 만들었다고 한다.

시민들이 공원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시민들이 공원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리가 시내에만 모두 17개의 공원이 있다. 유럽에서 가장 공원이 많은 도시로 라트비아가 꼽힌다. 물가가 싸고 자연환경이 좋아 부동산 투자이민도 활발하게 유치 중이다. 현지 가이드는 “15만 유로(약 2억원)를 부동산에 투자하면 1년 단기 영주권이 나온다” 며 “매년 갱신이 가능하고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은 이미 적극적으로 투자해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이루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9월 마주한 리가의 하늘은 눈이 시릴 듯한 청색을 띠고 있었다. 한껏 들이킨 도시의 공기는 냉수를 마신 듯 머리를 맑게 했다.

“한국은 친절하고 활기 넘치는 나라”  

리가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 왼쪽부터 엘리나 트레트야카(20), 율리아 플랏트피레(21), 사니타 비테(21), 나비드 하산(21)

리가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 왼쪽부터 엘리나 트레트야카(20), 율리아 플랏트피레(21), 사니타 비테(21), 나비드 하산(21)

라트비아는 1991년 한국과 수교를 맺고, 2015년 발트 3국 중 최초로 한국에 주한 라트리바 대사관을 개설했다. 주 라트비아대사관에 따르면 현재 거주 중인 한국인은 60여 명 정도다. 상사 주재원과 가족, 교환학생을 제외하면 영주 교민은 11명이 전부다.

하지만 라트비아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예상외로 높다. 라트비아 대학교는 2013년 한국어 학과를 만들어 올해 다섯 번째 졸업생을 배출했다. 또 지난해에는 리가 공대에 세종학당을 개원해 누구나 한국어를 배울 수 있다. 리가에서만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80명 정도로 우리 교민 수보다 많다.

라트비아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학과 선택의 이유를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방문했었다는 사티나는 “한국은 친절하고 활기 넘치는 나라”며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살면서 라트비아에 부족한 한국 문화 정보를 보충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라트비아에서도 한류 열기는 뜨꺼웠다. 그 중심에는 K팝이 있었다. 라비드는 리가에서 유명한 K팝 춤 선생이다. 그는 댄스 학원을 열고 한국 춤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그에게 춤을 배우는 학생만 50명이 넘는다. 그는 “10대들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K팝”이라며 “모여서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기 주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거리를 걷다 보면 그룹 엑소의 노래를 어디서나 들을 수 있고, 방탄소년단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 청소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독립 100주년 준비에 분주한 라트비아  

라이몬즈 베요니스 라트비아 대통령

라이몬즈 베요니스 라트비아 대통령

라트비아 정부는 담당 조직을 신설하고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독립 100주년 기념행사 준비에 한창이다. 지난 5월 라트비아 국경 주변을 따라 전나무 100그루를 심는 ‘라트비아를 껴안다(Embrace Latvia).’라는 개막식으로 100주년 기념행사의 첫 삽을 떴다. 조직위는 국민이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전통의상 축제, 100주년 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100주년 행사의 백미는 내년 7월에 열리는 ‘노래와 춤의 축제’다. 발트지역 국가들이 개최하는 대규모 행사로 라트비아에서는 5년마다 열린다. 마침 100주년을 맞는 해에 축제가 열려 분위기는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축제에는 라트비아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전국 수백 개의 합창단과 무용단 등이 참여한다. 리가 야외극장에 모인 수만 명의 참가자가 선사하는 노래와 춤은 며칠간 이어질 예정이다.

베요니스 라트비아 대통령도 독립 100주년 행사를 통해 한국과의 우호 증진을 다짐했다. 베요니스 대통령은 “내년 평창 겨울 올림픽에 우리나라 인사들을 초대해준 한국 정부에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독립 100주년의 해에 열리는 국제 스포츠 행사에 초청받은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우리 독립 100주년 행사에 꼭 한국 인사들을 초청해 우호를 다질 것”이라고 말했다.

리가=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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