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져 쌀쌀함이 제법 매섭게 느껴지니 곧 겨울이 올 듯하다. 이즈음이면 배추와 무 걷이가 시작된다. 막 수확해서 맛있을 때 담고 싶은 마음일까? 주부들은 동시에 김장준비를 한다. 요즘은 김치를 주문해 먹는다지만 아직도 김장을 손수 담그는 주부가 많다. 아들네와 딸네가 먹을 것까지 준비하면서 조그만 통에 넣어 한의원에도 선물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박용환의 동의보감 건강스쿨(10) #무와 생강을 볶아 먹으면 정력 좋아진다는 설 #스트레스 많았던 영조, 무로 소화불량 이겨내 #암 환우들이 먹는 스프의 재료는 무와 시래기
김치 중 무로 만든 깍두기는 그 아삭한 느낌과 무가 주는 시원한 맛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랄 수 있다. 또 무청으로 만든 시래기는 해독 작용을 하면서 영양도 보충해주는 1석2조의 효능을 가진 식재료다. 이번 동의보감 건강스쿨에서는 음식 중에서 무와 시래기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한다.
무는 해독 능력이 탁월하고 소화를 잘 시켜준다. 몸 속 노폐물을 빼주면서 속도 편안하게 해 주니 현대인의 고민인 독소배출에 좋은 식재료다. 소화효소 중에서 디아스타제는 탄수화물을, 프로테아제는 단백질을 각각 분해한다. 소화분해 효소가 발달했다는 것 자체가 다른 음식과 잘 어울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깎두기가 웬만한 음식과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전 아버님 세대에는 연탄보일러가 많았다. 어릴 때 연탄구멍을 맞추기 위해 숨을 참아가며 집게로 이리저리 돌리던 기억이 난다. 처음 연탄을 때면 한동안은 가스 냄새가 집안에 퍼지곤 했는데, 이게 잘 못 되면 밤중에 계속 들이키기도 한다. 그러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응급실로 실려 가는 분도 많았는데, 집에서 비상조치로 무로 만든 동치미를 먹이곤 했다.
무의 해독능력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요즘 영화 남한산성의 배경이 된 병자호란 시절 청나라가 조선사람들의 건강을 헤치려는 목적으로 메밀을 일부러 많이 심게 했다. 메밀껍질 안에는 살리실아민과 벤젠아민이라는 물질이 독소로 작용한다. 메밀을 그냥 먹으면 위장기능도 안 좋아지면서 자꾸만 허약해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메밀국수를 그렇게 많이 먹어도 조선인들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다.이상하게 여겨서 조사를 해보니 조선에는 깍두기를 꼭 곁들여 먹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요즘 메밀은 생산공정이 좋아서 그런 독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듯 무는 독소도 빼 주고 속을 편하게 하는 재료로 계속 사랑을 받아 왔다. 그러면 깍두기는 어떻게 유래된 것일까?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정조의 딸이 만들어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궁중 종친 회식 때 호평을 받았는데, 어떻게 만들었느냐 하고 물으니 “평소 남는 무를 깍뚝깍뚝 썰어 버무렸더니 맛있어서 이번에 정성들여 만들어 보았사옵니다”라고 해 깍두기로 불렸다고 한다. 한자로 음차하면 ‘각독기(刻毒氣)’라 한다. 음차할 때도 의미를 담아서 하므로 이 이름에도 독을 없앤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도 무를 정말 좋아했던 왕이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이 40대였지만 영조는 82세까지 살았다 하니 어마어마하게 장수한 왕이다. 조선의 많은 왕이 스트레스가 많았던 탓인지 소화불량에 시달렸다는 기록이 참 많다. 특히나 영조는 성격이 깐깐해 없는 스트레스도 만들었을 것 같다.
어쨌든 영조는 무를 먹으면서 소화불량을 이겨냈다. 거기다 무의 찬 기운을 아래로 내리는 성질을 생강으로 보완해 볶아 먹는 것을 즐겼다. 무생강볶음은 정력 음식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조의 슬하에 15명의 자식이 있었으니 혹자는 무생강볶음 덕이라고 한다.
무를 보면 아래 하얀 부분이 있고 위 무청 아래는 파랗다 . 하얀 부분은 맛이 매콤하고 기를 내려주는 성분이 많아, 이 부분이 소화를 촉진해준다. 무청 쪽으로 갈수록 단맛이 돌고 상대적으로 따뜻한 성질에 영양이 좋아진다.
그래서 파란 부분은 날 것으로 먹는 생채나 무즙을 내어 먹으면 더 맛있고, 하얀 부분은 국을 끓이거나 볶아 먹거나 한다. 무는 열을 가하면 매운맛에서 단맛이 배어 나오니 이렇게 부위별 특성을 잘 활용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무에서 가장 영양소가 많은 부분이 무청이다. 무청에는 보통 채소에 많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다. 보통 채소나 과일은 말리면 그 안의 성분들이 훨씬 풍부해지는 경향이 있다. 무청을 말린 것이 바로 시래기다. 시래기로 만들어 놓으면 겨우내 먹을 수 있고, 영양도 훨씬 좋아진다.
무청에는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C, 그리고 비타민E가 조화롭게 들어 있다. 베타카로틴은 비타민A로 바뀌게 되는데, 이 세가지 비타민은 상호 보완하면서 항산화에 정말 탁월한 효능을 나타낸다. 그래서 대학에서 영양학을 공부할 때 일부러 ‘ACE’라고익히기도 한다. 피부 주름이 고민이거나 노화를 막고 싶을 때 무청을 떠올려보자.
시래기는 식이섬유도 풍부해 장에 참 좋다. 면역을 좋게 하려면 장을 살리는 것이 핵심이다. 모 방송에서 대장암이었던 분이 시래기를 많이 먹고 나았다고 해 필자가 자문해 주고 인터뷰도 했다.
몸이 약한 분들, 특히 암 환우분들이 영양소를 보충할 때 먹는 채소 수프라는 것이 있다. 채소의 기운을 담아 자연치유능력을 높여주려고 만든 게 수프인데, 재료의 핵심이 무와 무청(시래기)이다. 해독 능력이 좋아지면서 동시에 영양소를 채워주니 속이 편해지고 기운이 맑아지게 된다. 꼭 암 같은 위중한 병이 아니더라도 상체나 얼굴로 열이 올라오는 증상에도 좋다.
보통 시래기로는 국을 끓여 먹는데, 된장을 풀어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생선조림의 곁가지 음식으로도 곧잘 나오고, 비빔밥 재료로도 쓴다. 잘 안 해 먹지만 샐러드에도 넣거나 피자 토핑으로 하면 색다른 맛이 난다.
이번 겨울에는 무나 시래기로 음식을 만들어 속을 해독하면서 영양도 보충해보면 어떨까 한다.
박용환 하랑한의원 원장 hambakus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