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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맥락을 이해시켜주는 게 영화 음악"…'7호실'의 이지수

중앙일보

입력

자신의 작업실에서 영화 음악의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작곡가 이지수. 그는 "영화를 처음 볼 사람들의 감정을 정확히 예측하고 쫓아가야 하는 것이 영화 음악"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자신의 작업실에서 영화 음악의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작곡가 이지수. 그는 "영화를 처음 볼 사람들의 감정을 정확히 예측하고 쫓아가야 하는 것이 영화 음악"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5일 개봉한 영화 ‘7호실’ 마지막 장면에는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서정적 음악이 흐른다. 사업 실패, 죽음 목격, 시체 유기 등 갖가지 사건으로 엉망이 된 주인공(신하균)이 긴 도로를 운전하는 장면이다. 자동차가 화면에서 사라지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따뜻하고 느린 음악은 계속된다.
“엔딩 음악에는 이것 말고 후보가 여럿 있었다.” ‘7호실’ 음악감독 이지수(36)가 15일 자신의 작업실에서 영상과 음악을 함께 플레이했다. 영화의 최종본과는 다른 음악을 같은 영상에 입혀서 들려줬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현악기 대신 손가락 딱 소리(핑거 스냅)로 리듬을 맞추는 경쾌한 음악이 시작됐다. 그다음으로 후보에 올랐던 버전은 훨씬 빠르고 가볍다. “엔딩 음악을 고르는 과정은 이 영화의 기본 분위기인 블랙 코미디로 돌아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과정이었다.” 이지수는 “주인공에 대해 관객이 처음으로 ‘안됐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마지막 장면이다. 관객이 그 감정을 조금 더 느끼고 영화관을 떠나고 싶을 거라 생각했다”며 “영화 음악은 관객의 감정을 정확하게 쫓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영화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음악 작업 참여를 시작으로 ‘안녕, 형아’(2004) ‘마당을 나온 암탉’(2011) ‘건축학 개론’(2012) 등에서 음악 감독을 맡은 이지수에게 영화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들었다.

"글을 영상으로 옮겼을 때 부족한 부분을 영화 음악이 메꿔야" #15일 개봉한 영화 '7호실'의 음악 감독 #"머릿속에 수백 가지 악기 소리와 그에 따른 감정이 들어있어야" #2003년 '올드보이' 참여에서 시작해 '건축학개론' 등 음악 맡아

지금 웃어도 됩니다

음악은 관객에게 영화를 보는 태도를 일러주는 역할을 한다. ‘7호실’의 도입부엔 DVD방 사장과 중국 교포 아르바이트생의 대화 장면이 나온다. 그중 “한국 사람이 아니라 중국 사람입니다”라는 대사가 있다. 이지수는 이 대사 직후 음악에 짧은 쉼표를 넣었다. “사람들이 웃는 포인트기 때문에 웃을 간격을 준 것”이라고 했다. 영화 음악 감독은 사람들이 울거나 웃게 될 순간을 예측할 의무가 있다. 이지수는 “음악이 관객의 감정을 질러가거나 놓치고 가서는 안된다. 또 최종본을 완성하기 전에 소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한 모니터링에서 울고 웃는 부분을 잘 체크해 음악 수정에 참고한다”고 했다.

관객의 감정을 예측하기가 쉬운 일만은 아니다. ‘7호실’에서 신하균이 시체를 트렁크에 넣고 낑낑대며 계단에서 옮기는 장면이 한 예다. 이지수는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긴박하지만 관객은 코믹하게 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재미있는 음악을 넣어봤다”고 했다. 트렁크에서 시체의 팔ㆍ다리가 툭툭 튀어나오는 장면에서 쿵작거리는 반주의 웃기는 음악을 입혔다. 하지만 최종 편집본에서는 이 장면의 음악을 아예 뺐다.

“여러 의견을 들은 결과 코믹보다는 긴장이 더 맞는 감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결과 신하균의 살인과 시체 유기라는 행위는 영화 내에서 좀 더 심각하고 무거운 범죄로 인식된다. ‘사라진 음악’의 힘이다.

애매한 맥락을 이해시켜드립니다

이지수는 “시나리오만 봤을 땐 분명한 이야기도 영상만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대사 사이의 문맥, 지문과 같은 도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이 그 완전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7호실’ 중 주인공이 마약을 거래하는 장면이 한 예다. 비밀스럽고 음침한 동네에 들어선 배우들이 대화를 나누지만 이지수는 건달다운 느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범죄집단, 그리고 소위 말하는 양아치 느낌을 음악이 살려야 하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시체 유기, 마약 거래 등의 사건을 거리를 둔 채 묘사하는 이용승 감독의 블랙 코미디 '7호실' .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체 유기, 마약 거래 등의 사건을 거리를 둔 채 묘사하는 이용승 감독의 블랙 코미디 '7호실' .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는 이 장면에서 현악기로 높은음을 지속시키게 하고 콩가ㆍ봉고처럼 아프리카 타악기 중 가벼운 것을 썼다. 비밀스럽고 은밀한 감정을 살리기 위해서다. “사람의 긴장감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만일 음악으로 더 진지한 긴장감을 만들고 싶으면 더 낮고 무거운 타악기를 골라서 썼을 거다.” 그는 “영화 음악은 같은 감정 내의 미묘한 차이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쁨이라는 감정만 해도 넘치는 기쁨, 절제된 기쁨, 지금은 기쁘지만 어딘가 걱정이 섞인 기쁨 같은 것들이 있다. 이지수는 “영화 음악 작곡가의 머릿속에는 수백 가지 악기의 소리가 들어있어야 하고, 산출하고 싶은 감정에 따라 그 소리들을 꺼내 쓴다”고 설명했다.

영화에 집중하게 해드립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음악에 관한 다큐멘터리 ‘스코어’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E.T.’(1982)에서 ET가 우주선을 타고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에 대한 설명이다. 음악은 좀 더 웅장하게 주인공들의 이별을 그릴 수도 있었지만, 우주선 이륙 순간 음악 소리는 오히려 극도로 줄어들었다. 갑자기 작아진 음악 소리가 관객을 스토리에 집중하시켰다. 이지수는 “영화 음악 작곡가는 기본적으로 화면의 감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 메꾼다는 생각으로 곡을 쓴다. 일반 음악 작곡가처럼 음악 만으로 감동을 주기 위해 모든 재료를 써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시작으로 꼬여가는 일을 그린 블랙 코미디 '7호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갑작스러운 죽음을 시작으로 꼬여가는 일을 그린 블랙 코미디 '7호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7호실’에서 등장인물이 죽는 초반 장면도 영화에선 중요하지만 음악이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도록 했다. 오케스트라가 한 음을 길게 계속 연주하고 멜로디나 조성의 변화도 주지 않았다. 이지수는 “관객은 영화 음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영화 음악의 많은 영향을 받는다”며 “특히 픽사의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관객의 감정과 생각을 정교하게 끌고 가는 완벽한 영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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