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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21세기의 칭기즈칸이 되고 싶은 시진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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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시진핑의 중국몽

왕후닝(王滬寧)은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한 사람인데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키신저’로 불린다. 시진핑의 대외 비전과 전략이 대부분 상하이 후단대 교수 출신의 이 전략가 머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 왕후닝이 언젠가 시진핑에게 ‘21세기의 칭기즈칸’이 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칭기즈칸이 제국 도로망 연결했듯 #시진핑은 육·해상 실크로드 건설해 #당·청을 확대한 ‘팍스 시니카’ 꿈꿔 #몽골은 하드파워 통해 제국 경영 #시진핑은 소프트파워로 세계 경영 #미국 추진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 견제용이라면 한국은 빠져야

왜 칭기즈칸일까. 시진핑의 ‘중국의 꿈(中國夢)’은 융성하던 당(唐) 제국과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강토를 지배한 청(淸) 제국에의 향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당·청의 천하 지배는 북서로는 천산산맥, 서쪽으론 히말라야를 넘지 못하고, 동으로는 동해, 동남으론 오늘의 인도에 미치지 못했다.

대조적으로 칭기즈칸은 일찍이 13세기에 역사상 최초의 글로벌 제국을 경영했다. 그의 손자들 대에 와서는 역사가들이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또는 팍스 타타리카(Pax Tatarica)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은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 시대의 몽골은 중국·러시아·페르시아·모굴리스탄(오늘의 중앙아시아)의 4개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칭기즈칸의 네 아들과 손자들이 현지에서 통치했다. 몽골 정치, 세계 경영의 중심은 칭기즈칸 시대의 몽골인들이 성산(聖山)으로 떠받든 부르칸 칼둔 아래 천막촌 아바르가(Avarga)였다.

중국의 육상·해상 실크로드

중국의 육상·해상 실크로드

부르칸 칼둔산은 시베리아와의 접경지역이다. 칭기즈칸과 그의 후계 칸(Khan)들은 부르칸 칼둔산에서 발원하는 두 줄기의 강 오논과 켈렌 주변의 둥근 천막 게르(ger)에서 가장 멀리는 8000㎞나 떨어진 바그다드·이집트·독일~폴란드 국경지대의 정복 전쟁을 지휘했다. 몽골의 세계 지배는 부챗살(hub and spoke) 방식이었다. 큰 전략 지시는 부르칸 칼둔산 아래 천막촌에서 그 시대 특유의 통신망으로 전선에 전달됐다. 몽골은 30~40㎞마다 역참(驛站)을 두고 메신저들이 릴레이식으로 전령을 전달하는 방식을 썼다. 유럽까지 1주일에서 10일이면 본국의 전령이 전달됐다. 13~14세기판 무선통신이라고 할 수 있는, 당시로선 혁명적 통신수단이었다. 경도로 100도에 걸친 광대한 지역에서는 그런 최신식 통신수단이 없으면 전쟁도 통치도 불가능했다

몽골은 자체의 최대 동원 병력 5만~10만 명으로 중앙아시아와 아랍 세계를 휩쓸고 러시아를 점령하고 폴란드를 건너뛰어 독일~폴란드 국경도시 리그니츠(Liegnitz)에서 서유럽 기독교 국가 기사들이 총출동한 독일·프랑스·폴란드 연합군을 대파했다. 2만5000명의 독일·폴란드군이 전사했다. 몽골군 연전연승의 원동력은 말을 달리면서 전후좌우로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기마병이었지만 몽골군은 그때 이미 오늘날의 로켓과 수류탄에 해당하는 무기를 사용해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시진핑의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와 관련해선 칭기즈칸의 가장 큰 문명사적 업적은 대륙 간 통신망과 함께 오늘의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길을 사통팔달로 닦은 것이다. 정복지의 풍성한 전리품을 부르칸 칼둔산 아래 벽지까지 운반하기 위해서도 마차가 다닐 길을 닦아야 했다. 칭기즈칸과 그의 아들, 손자들이 그때의 개념으로 글로벌 통신망과 하이웨이를 건설해 세계를 팍스 몽골리카로 통합한 것이 시진핑에게 신중국의 특색 있는 사회주의로 글로벌 리더가 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영감을 주었을 수 있다.

시진핑의 일대일로는 21세기판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건설해 중국 국내에서는 주민들의 불평이 팽배한 서부 저개발지대를 일대일로의 일대(육상 실크로드)에 편입, 경제의 지역 간 균형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일대는 시안에서 출발해 신장위구르,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거쳐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이른다. 일대일로로 연결되는 나라들의 인구는 44억 명, 국내총생산(GDP)은 2조1000억 달러로 세계 인구의 63%, 세계 GDP의 29%를 차지한다. 국제 정치·경제의 큰 흐름을 바꿔놓을 장대한 프로젝트다. 이것이 시진핑이 추구하는 ‘중국의 꿈’이다. 칭기즈칸이 이룬 게 ‘팍스 몽골리카’였다면 중국의 ‘시황제(Emperor Xi)’가 이루고 싶은 것은 당·청 성대(盛代)를 확대 재생산한 ‘팍스 시니카’가 아닐까.

일대일로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프로젝트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서쪽 끝 도시 카스(喀什·Kashgar)와 인도양으로 발을 내밀고 있는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을 잇는 중·파 경제회랑(CPEC)이다. 450억 달러를 투입해 3000㎞ 길이의 도로·철도·송유관·광케이블로 두 나라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다. 도로와 철도 연변에는 공업단지와 자유무역지구를 만든다.

CPEC는 미국·일본·인도·호주의 신경을 날카롭게 찌른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는 국경 분쟁이 끊일 날이 없다. 인도와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과다르항을 해군기지로 쓸 생각을 하고 있다. 과다르항이 중국에 장악되는 것은 단순히 중동산 석유를 지금보다 훨씬 싼 수송비로 수입할 수 있다는 경제적 이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다르항에서 중동산 석유를 바로 카스로 보내면 사실상 미국 해군이 장악하고 있는 호르무즈와 믈라카 해협, 영토분쟁 중인 남중국해를 통과하는 리스크에서 벗어난다는 전략적 가치가 높다. 중국은 베트남과도 양랑일권(兩廊一圈)이라는 이름으로 중국~베트남 철도 건설에 합의했다.

중국은 미얀마 서부 연안 도시 시트웨, 스리랑카의 햄번토타, 파키스탄의 과다르, 방글라데시의 치타공을 한 줄로 잇는 ‘진주 목걸이 전략’을 구상한다. 중국과 미얀마는 771㎞의 송유관을 건설해 중국이 연간 2200만t의 석유를 수입하는 공사에 착수했다. 총투자 규모는 105억 달러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은 중국의 대도(大都, 오늘의 베이징)를 수도로 원(元) 제국을 건설해 동으로는 한반도, 남으로는 베트남과 라오스까지 복속시켰다. 그러나 그는 해상 경영엔 실패했다.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의 일본 원정과 1293년의 자바(인도네시아) 원정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몽골의 이집트 원정도 아랍 노예들이 세운 나라 말무크의 저항을 만나 물러났다.

시진핑은 몽골의 실패를 거울삼아 일대일로 중의 해양 파트인 일로(One Road)도 야심 차게 추진한다. 중국은 이미 멀리 그리스의 피레우스항을 수출 거점으로 생각하고 46억 달러 규모의 무역·투자협정을 체결했다. 피레우스항은 유럽~중동~아프리카 등 지중해 전체를 연결하는 교역의 요충지다. 중국은 2009년 이미 피레우스항 컨테이너 운영권을 확보했다. 그리스의 해운왕으로 일세를 풍미하던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가 지하에서 잠을 설치고 있을 것 같다.

세계 경영의 영감을 칭기즈칸에게서 얻은 시진핑은 실천적 전략은 마르코 폴로에게서 배우는 것 같다. 마르코 폴로는 1260년 베네치아를 출발해 육상 실크로드를 따라 원나라에 당도했다. 그러나 마르코 폴로는 1295년 귀국길은 바닷길, 시진핑의 일대일로 중 일로를 택했다. 그는 푸저우(福州)의 취안저우(泉州)에서 출항해 싱가포르, 인도 남단의 코마리, 뭄바이를 거쳐 호르무즈해협에 이르러 육지로 올라 흑해와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베네치아로 돌아갔다. 시진핑의 일대일로에는 마르코 폴로의 왕복 여정이 포함된다.

시진핑의 꿈은 무엇인가. 그의 1기 집권 시기에 일부 중국 학자는 조용히 신천하주의 연구를 시작했다. 중국의 전통적 천하주의는 중화(中華)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조공관계였다. 그러나 시진핑의 생각은 중화사상보다 더 진보적, 외부지향적이고 스케일이 크다. 시진핑의 일대일로에는 유라시아 대륙을 넘어 멀리 아프리카 대륙에까지 뻗어간다. 칭기즈칸과 시진핑의 근본적 차이는 전자는 하드 파워로, 후자는 아직은 소프트 파워로 천하를 경영하는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패해 서양 제국주의 열강들에 능욕당한 트라우마를 넘어 ‘팍스 몽골리카’의 확대판인 중국 천하, ‘팍스 시니카’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중 미·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생소한 개념이 등장했다.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연결하는 다이아몬드형 동맹으로 중국 일대일로의 ‘진주 목걸이 전략’에 대항하려는 것이다. 아직 정확한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13일 중앙일보를 방문한 미국 핵 비확산 전문가 로버트 아인혼도 “그게 무슨 개념인지 아직 모른다”며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상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옳은 말이지만 일대일로와의 시간적 일치가 합리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것이 중국을 대상으로 한 단합(gang-up)이라면 한국은 애매모호한 태도로 몸을 빼야 한다. 한국의 번영과 안보를 미국이라는 바구니 하나에 다 담을 수는 없다.

시진핑이 정말 칭기즈칸을 닮고 싶다면 칭기즈칸의 12~13세기판 통신 수단과 고속도로를 이용한 문명 간 연결(connectivity)과 당시로서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법의 지배, 종교의 자유, 약자 배려, 여성의 평등한 사회 참여를 보장하는 열린 나라, 열린 사회를 중국의 내정과 일대일로에 반영해야 한다.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같은 거친 외교는 신천하주의가 아니라 반천하주의다. 칭기즈칸의 몽골은 비단길을 오가는 상인들을 위해 길가에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고 나무가 자라지 않는 지역에는 돌기둥을 세워 이정표를 만들었다. 대정복자답지 않은 이런 섬세함, 그것을 시진핑은 벤치마킹해야 한다. 문명 간의 대결과 충돌이 아니라 칭기즈칸의 문명 간 교류를 재현해야 한다.

김영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