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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도시의 에너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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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소년이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발견하는 곳이 도시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에 대한 정의이다.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성취하려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루이스 칸의 말을 되새긴다. ‘서울비엔날레를 통해 청년들이 도시를 다시 볼 수 있게 하고 싶다’, ‘그들의 미래를 도시에서 발견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기성세대가 만든 현재 우리의 도시가 후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가? 노란 버스에 실려 다니며 생각과 감성을 묻어 둬야 “승자”가 되는 그런 도시에 사는 청년들이 미래의 꿈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선거철이면 후보자들은 하나 같이 일자리 창출을 약속한다. 경기 침체기에 대형 국책 사업을 만들어 반짝 고용 창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산업과 일상에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인공 지능과 자동화만 감안하더라도 근대적인 산업경제가 지탱했던 삶의 방식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과거와 같이 GNP 수치와 주택 건설 호수를 내걸었던 고도성장의 시대, 개발의 시대는 끝났다. 보다 근본적인 삶의 변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사회경제 체제의 변화 없이는 지구 환경의 위기와 사회 불평등의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 우리는 문제가 무엇인지는 안다. 하지만 그 해결책을 거대한 공업단지와 신도시 마스터플랜으로 그려 낼 수는 없다. 공유도시는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라 우리의 도시 공간, 사회 제도, 경제 논리, 생활 방식을 하나하나 바꿔나가는 과정이다.

이번 서울비엔날레를 통해 우선 이러한 문제의 크기를 보여주고자 했다.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 국경을 넘어, 중국과 아프리카의 사막화와 태평양에서 플랑크톤의 급격한 감소를 보여주었다.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자원, 우리가 함께 숨 쉬는 공기, 마셔야 하는 물, 식량의 근본인 땅, 고갈되어가는 에너지 자원이 공유의 근본임을 각인 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광범위한 문제들에 세계 도시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세계 50개의 주요 도시들의 프로젝트와 정책 과제들을 한자리에 모았던 것이다. 서울비엔날레 한편에서 전 지구적인 문제를 보여주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구체적인 기술, 정책, 프로젝트를 통해 해답의 실마리들을 선보였다. 빵을 굽거나 캄캄한 지하에서 꽃나무를 자라나게 하는 태양광 장치, 마을버스에 설치한 센서로 동네 미세먼지를 측정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세운상가 장인과 청년들이 창업한 로봇 회사가 함께 개발한 건축 자재 등 다양한 공유도시의 단면들을 선보였다. 전 지구적인 스케일에서부터 동네 단위의 환경과 산업에 대한 연구 작업, 실용적인 기계 장치의 개발에서부터 도시 공간에서 애플리케이션까지 공유의 과정은 다양한 전문가와 정부, 시민의 협업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할 필요는 없을 수 있지만 건축에 대한 지식만은 분명히 필요하다. 이번 서울비엔날레는 건물과 건축가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건축과 도시에 대한 비엔날레였던 것이다.

서울비엔날레에서 건축을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서울의 도심 현장이다. 서울비엔날레가 일상의 도시 공간에 개입하며 내걸었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생산도시였다. 도시가 젊은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심 제조업이 새로운 모습으로 도시 안에서 살아 있어야 한다. 서비스, 금융, 소비 산업에만 매달려 있는 도시는 결국 사회 양극화의 현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동안 경제 비효율을 명분으로 도심 제조업이 도시 밖으로 내쫓겼지만 장기적인 도시경제의 지속성에서 필수적인 산업 영역이다. 현재 서울에서 제조업에 직접 종사하는 인원은 약 27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수치는 서울 전체의 고용 인구에 비하면 적은 비율이고, 런던 같은 비슷한 규모의 대도시에서 나타나는 고용 수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서울이 특이한 것은 여전히 도심 지역에서 제조업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 세계 선진국의 주요 대도시들이 대부분 상업과 소비의 중심지로 집적되어왔다면, 서울은 전통적 생산 방식과 첨단 디지털 기술이 함께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서울이 공유도시로서 특유의 잠재력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세계 패스트 패션 시장 속에서 작동하는 동대문, 창신동 같은 패션‧의류 지역과 을지로-세운상가의 전자 제품, 인쇄, 기계 업종 밀집 지역 등이 포함되며, 이들은 모두 서울비엔날레의 중요한 현장들이다. 서울비엔날레는 세운상가와 창신동이 갖고 있는 기존의 생산 기능을 탐색하고 전통 제조업 장인들의 아날로그 기술과 젊은 디지털의 지식과 감각이 힘을 합쳐 생산도시로 서울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이러한 도시 재생 과정에는 기존의 주민, 상인, 소상공인을 내쫓는 대형의 신개발이 아니라 도시공간과 함께 스며있는 지식과 기술을 보전할 수 있어야한다. 여기에 새로운 활동과 기술을 투입하고 기존 공간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도시건축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이것이 공유도시의 핵심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는 이제 관료나 계획가, 건설업자 건축가가 일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과 일의 터전을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시민들이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세운상가와 창신동이 젊어져야 한다. 카페와 프랜차이즈, 브랜드숍들이 몰리는 또 다른 소비의 핫 스팟이 아니라 젊은 창의력이 모이는 생산과 창업의 기지로 말이다. 서울비엔날레는 주어진 기간이 끝나면 사라지는 갤러리 안에 머무는 전시가 아니다. 도시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활력 장치로 역할을 할 것이다.

배형민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배형민 감독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을 졸업했으며 MIT에서 건축 역사, 이론, 비평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이며 목천건축아카이브 위원장, 서울시 미래서울자문단, 대통령 직속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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