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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명성교회,하나님과 함께하는 세습도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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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초대형 명성교회가 12일 ‘부자 세습’을 통과시켰다.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가 후임으로 위임됐다. 수년 전부터 교계에서 쉼 없이 떠돌던 ‘명성교회 세습추진설’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명성교회의 등록 교인 수는 10만 명, 연간 재정만 350억 원에 달한다. 장로교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교회다.

명성교회는 장로교 교회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등록교인 수가 무려 10만 명이다. [사진 명성교회]

명성교회는 장로교 교회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등록교인 수가 무려 10만 명이다. [사진 명성교회]

올해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그래서 명성교회의 ‘부자 세습’이 더욱 당혹스럽다. 500주년에 흐르는 개혁교회의 가치를 배신했기 때문이다. 중세의 가톨릭은 부패했었다. 교황의 여자 문제는 종종 불거졌고, 자식을 둔 교황까지 있었다. 심지어 교황의 아들이 교황이 된 적도 있었다. 요한 11세는 교황의 아들로 이야기된다. 당시 교회법상 30세가 넘어야 교황이 될 수 있음에도, 그는 20세도 되기 전에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일종의 ‘부자 세습’이었다.

루터는 이런 풍토에 강한 반기를 들었다. 왜 그랬을까.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과 거꾸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는 거기에 구원이 없다고 판단했다. 명성교회에서 강행한 ‘부자 세습 ’앞에서도 ‘종교개혁 정신’ ‘마르틴 루터의 사상’ ‘초대교회의 회복 ’같은 기독교의 고귀한 가치는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만다. 명성교회 측은 ‘잠시 내리는 비판의 소나기"라고 판단하는 모양새다. 실제 김삼환 목사 측의 한 장로는 전화 통화에서 “왜 남의 교회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명성교회를 비판하려면, 등록교인이 된 뒤 내부로 들어와서 비판하라”고 강변했다.

김삼환 목사가 명성교회 특별새벽기도를 이끌고 있다. 특별새벽기도 때마다 5만명의 교인이 참석한다. [사진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명성교회 특별새벽기도를 이끌고 있다. 특별새벽기도 때마다 5만명의 교인이 참석한다. [사진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는 매사추세츠 주립대와 프린스턴신학교를 나왔다. 엘리트 경력이다. 그는 2013년에 청어람 아카데미가 공동주최한 종교개혁 기념 세미나에 참석해 “세습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당시 김하나 목사는 교회 세습을 세 부류로 나누며 “아들의 입장에서 운명이라 생각하고 세습한 사람,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세습한 사람, 야심을 가지고 좋게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명성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맡으라고 해도 맡지 않을 것”이라며 “세습 금지는 시대의 역사적 요구”라고 단언한 바 있다.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

그랬던 김하나 목사가 왜 ‘세습 수용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까. 개신교계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자식에게 교회를 넘기려는 원로목사의 개인적 욕망도 있겠지만, ‘승계 이후’에 대한 우려가 더 크지 않았을까.” 통상 큰 교회의 후임 목사가 외부에서 초빙될 경우, 교회에서는 종종 ‘권력 투쟁’이 벌어진다. 원로목사를 둘러싼 장로 그룹은 일종의 기득권 세력이다. 이에 맞서 그동안 소외당하던 장로들이 신임 목사와 결합해 주도권 싸움을 벌인다. 후임 목사로서는 ‘적폐청산’을 내걸며 원로목사가 쌓아온 비리를 폭로하는 게 빠른 길이다. 그래서 “세습이 최고”“아들이 최고”라는 말이 교계에서 정설마냥 떠돈다.

김삼환 원로목사는 장로교 예장통합의 총회장도 역임했다. 총회 규정에 세습금지 조항이 있음에도 노회를 장악해 세습을 강행했다는 비판을 교계로부터 받고 있다. [사진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는 장로교 예장통합의 총회장도 역임했다. 총회 규정에 세습금지 조항이 있음에도 노회를 장악해 세습을 강행했다는 비판을 교계로부터 받고 있다. [사진 명성교회]

2014년에는 명성교회에서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8년간 재정책임을 맡았던 장로 P씨가 투신자살했다. 당시 교회 안팎에서도 큰 논란이었다. 주로 제기된 의혹은 ‘비자금 800억원’이었다. 김삼환 목사 측은 “P장로가 교회 잉여금에 대해 누적 보고를 하지 않고, 해당 연도의 잉여금만 보고를 해왔다. 그건 잉여금이지 비자금은 아니었다"며 "죽음은 개인적 문제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김삼환 목사는 2015년 말 은퇴할 때 명성교회에서 받은 은퇴 위로금 29억원을 교회에 전액 반납하기도 했다. 당시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히려 껌값"이라며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교계 관계자와 목회자들도 상당수였다.

명성교회의 세습이 개신교계에 가져올 파장은 무척 크다. 벌써부터 목회자들은 "교계에 세습불감증이 만연할까봐 걱정이다"고 말한다. [사진 명성교회]

명성교회의 세습이 개신교계에 가져올 파장은 무척 크다. 벌써부터 목회자들은 "교계에 세습불감증이 만연할까봐 걱정이다"고 말한다. [사진 명성교회]

12일 명성교회에서는 김하나 목사의 위임예식이 열렸다. 세습을 확정 짓는 최종 행사였다. 김삼환 원로목사는 “주님이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지 않겠나 확실히 믿고 있다”고 강조했고, 김하나 목사는 “단 한 명만 남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가장 아름다운 교회인 줄 믿는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하나님과 함께하는 세습’이란 말이 떠오른다. 생각할수록 궁금하다.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우리가 아는 ‘성경 속의 하나님 ’인지, 아니면 세습을 위해 따로 만든 ‘그들만의 하나님 ’인지 말이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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