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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카풀, 종일 영업은 불법” vs “공유경제 싹 자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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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JReport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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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강의를 위해 출근하던 시간강사가 이동 방향이 같은 승객을 ‘카풀’로 태운 뒤 소정의 돈을 받으면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 이 시간강사가 이튿날 오후 1시 수업을 위해 출근하면서 카풀 승객을 태운다면 이는 합법일까, 불법일까. 강사에겐 똑같은 출근이지만 법적으로는 논쟁의 소지가 있다.

서울시·카풀업체 뜨거운 논쟁 #출퇴근 시간 명확한 법적 규정 없어 #시 측 “면허 없는 택시” 경찰에 고발 #승객 안전 문제 놓고 입장 엇갈려 #“범죄 우려” “앱에 전부 기록” 팽팽 #IT업계 “택시사업자만 보호” 주장 #“일자리와 일거리의 충돌” 분석도

서울시와 카풀앱 업체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카풀 합법성 논란’에는 이런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택시업체 영업권 보호부터 라이프 사이클 변화 반영 여부, 승객 안전 보장, 신기술 수용에 대한 관공서의 입장까지 간단치 않은 쟁점들이다.

첫째 논점은 ‘출퇴근 시간대는 하루 중 언제인가’에서 시작된다. 카풀업체 ‘풀러스’는 최근 “출퇴근 시간대에만 제공하던 카풀 서비스를 24시간 체제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통상적 의미에서 출근(오전 5시~11시)과 퇴근(오후 5시~다음날 오전 2시) 시간을 분류해 서비스를 제공했으나 라이프 사이클이 다양화하면서 출퇴근 시간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풀러스 측은 “한국 근로자 가운데 3분의 1이 이미 유연근무제에 맞춰 출퇴근하고 있다”며 “환경에 부합하는 제도 정비가 필요해 서비스 이용 시간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풀러스의 새 서비스를 불법으로 보고 있다. 현행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81조는 ‘자가용 자동차를 유상으로 운송용으로 제공하거나 임대·알선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풀러스가 가능했던 것은 81조의 예외사항 ‘출퇴근 시 승용차를 함께 타는 경우’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출퇴근에 대한 명확한 시간 규정이 없다. 서울시는 “풀러스의 새 서비스가 합법이 되면 사실상 24시간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이는 ‘택시 면허가 없는 택시’가 등장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풀러스를 경찰에 고발했다. 여객법을 위반하고 있으니 단속해달라는 취지다.

풀러스 측은 “드라이버가 자신의 출퇴근 시간을 4시간씩 하루 총 8시간, 1주일에 5일간 설정해 사용할 수 있게 해 불법 영업을 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각자 자신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영업하므로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출퇴근’에 담겨 있는 입법 취지를 강조한다. 양완수 서울시 택시물류과장은 “출근자의 교통 수요와 대중교통 공급 사이의 불일치가 생기는 시간대에 운전자 혼자 타고 다니는 자가용 승용차를 활용하자는 게 카풀 도입의 취지”라며 “자가용 승용차로 낮 시간대에도 영업을 하면 택시 면허제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설명했다.

카풀논쟁 쟁점

카풀논쟁 쟁점

승객 안전 문제를 놓고도 입장은 크게 갈린다. 양 과장은 “서울시는 택시 운전자의 전과기록을 면허 취득단계부터 관리하고 입사 후에도 범죄 기록을 꾸준히 조회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공 분야는 문제 발생의 소지를 제도를 만들어 방지하고 있지만 민간 서비스는 책임이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카풀 서비스 ‘럭시’의 최바다 대표는 “운전자 누가 몇시에 어디서 고객 누구를 태워 어디로 이동 중이라는 사실이 앱상에 전부 표시돼 오히려 더 안전하다”며 “카풀 서비스에서 승객과 운전자 간 범죄 사건이 벌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주장했다. 럭시는 카풀 업계 1위 업체로, 현대차로부터 50억원을 투자받을 정도로 사업성을 인정받고 있다. 다만 풀러스처럼 ‘종일 영업’으로 시간을 확대하지는 않아 이번 논란에서 비켜서 있지만 조만간 시간 확대에 나설 계획을 갖고 있다.

국내 주요 카풀 서비스

국내 주요 카풀 서비스

IT업계에서는 서울시가 택시기사를 과도하고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 대표는 “밤 11시에 강남역에서 택시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이런 문제를 수년째 해결하지 못하면서 서울시가 차량공유업을 막는 것은 시민 승객이 아니라 택시업자의 이익만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택시 기사들이 법인택시 운전 대신 같은 노동력을 들여 자가용으로 카풀 서비스에 나서면 사납금 등이 모두 자기 몫이 돼 훨씬 부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직업의 양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기존 영업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재가 전혀 아니다”며 “우버도 안전성을 문제 삼았으나 고급 택시인 우버블랙은 안정성이 담보돼 허가해줬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2년 전 차량공유업체 우버의 서비스를 ‘우파라치(우버+파파라치)’를 도입해 좌절시켰다. 국내에서 실패했지만 우버는 세계시장에서 시가총액 80조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신기술에 배타적이어서는 산업경쟁력만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최 대표는 “삶의 편의를 높이는 기술의 발전은 막는다고 막아지지 않는다”며 “중국에서는 이미 카풀 서비스가 택시를 대체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4차 산업혁명에 서울시가 앞장서겠다는 입장은 이미 여러 차례 발표했다”며 “다만 기술 도입과정에서 부작용을 막는 건 관의 몫”이라고 말했다.

IT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을 ‘일자리(job)’와 ‘일거리(work)’의 충돌로 분석한다. 박용후 피와이에이치 대표는 “기존 기술이나 장비에 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일자리보다 일거리가 중요해진다”며 “기존 법에 없다고 해서 혁신적인 기술을 범죄시하거나, 작은 문제로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기술을 사장하는 우를 범해선 ICT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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