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없는 열기에 뒷걸음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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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호 27면

푸르트뱅글러의 슈만 교향곡 4번 음반. 서거 1년 전인 1953년 5월, 베를린 예수그리스도교회 실황이다.

푸르트뱅글러의 슈만 교향곡 4번 음반. 서거 1년 전인 1953년 5월, 베를린 예수그리스도교회 실황이다.

LP는 1분에 331/3회전을 한다. 책은 속독할 수 있지만 음반은 빨리 회전시킬 수 없다. 베토벤 ‘운명’은 30분, 말러의 3번 교향곡은 80분을 앉아 있어야 전 악장을 들을 수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는 8일이 걸렸다. 네 곡씩 여덟 번의 연주회를 완주한다는 것은 연주자뿐만 아니라 청중에게도 간단치 않은 각오가 필요하다.

푸르트뱅글러의 슈만 교향곡 4번

이렇듯 음악을 듣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클래식음악은 바흐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200년간 축적된 예술 장르다. 나는 그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30년간 음반을 듣고 또 들었다. 결과적으로 3000장의 음반이 거실에 쌓여 있다. 수만 장을 소장한 컬렉터가 보기엔 약소하겠지만 하루에 5장씩 매일 듣는다 해도 꼬박 2년이 걸리는 분량이다. 앞으로는 음반을 줄여 나갈 생각이다. 유한한 삶에 모든 음악을 다 들을 수는 없다. 내 취향을 고려하면 500장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독일 낭만주의 천재 로베르트 슈만의 경우 그 500장 이내엔 석 장을 넘기지 못하는데, 교향곡 4번이 첫 손에 꼽힌다. 다만 그것은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한 것이라야 한다. 그 음반은 나만 특별히 좋아하는 게 아니다. 음반사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현재도 동곡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애호가들의 평을 몇 개 소개한다. ‘푸벵의 유일한 명반’ ‘누구나 동경하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관(管)이 아니라 현(絃)으로 이렇게 시원함을 느낀 적은 없다’ ‘이 이상의 연주를 찾는다면 욕심’….

이 연주를 들으면 뜨거운 난로 앞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스피커에서 밀려나오는 열기를 견디다 못해 자꾸 뒤로 물러나게 된다. 에너지라고 할까, 음량이 큰 것과는 다른 강한 기운이 음악실에 소용돌이친다. 30분 남짓 그 기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피날레를 맞이하면 뜨거운 사우나에서 뛰쳐나와 강물에 풍덩 뛰어드는 시원함을 맛본다.

베를린 필의 포디엄을 물려받은 카라얀은 푸르트뱅글러와 자신을 비교하곤 했다. 전임자가 남긴 녹음도 그에겐 넘어야 할 산이었다. 카라얀은 특히 푸르트뱅글러의 슈만 4번 연주를 면밀히 연구했는지 “3악장에서 4악장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아름답다”고 구체적으로 평가하며, “나도 이런 연주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실현되지 않은 것 같다. 그의 슈만 4번이 베스트로 꼽히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우리는 카라얀이 빈 심포니를 지휘해 슈만 4번을 리허설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지휘의 예술(Die Kunst des Dirigierens)’이라는 제목의 흑백 영상은 작은 체구의 카라얀이 쉰 목소리로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끊임없이 요구하며 교향악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큰 돌덩이를 여럿이서 쪼아 정교하면서도 거대한 조각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작업과도 같아 흥미롭다. 그런데 연주를 들어보면 푸르트뱅글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걸 느낄 수 있다. 카라얀은 전임자의 해석을 따르되 그를 뛰어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연주는 한 마디로 폭발적인 질주다. 그러나 그 뿐, 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일본 도공이 조선의 달 항아리를 흉내 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완벽하게 둥글고 티 없이 깨끗한 백색을 구현할 수는 있어도, 천연덕스럽게 찌그러지고 의도하지 않은 무늬를 얻을 수는 없다. 카라얀의 리허설을 보면 첫 소절부터 모든 부분을 세세하게 다듬어 나간다. 절정에서는 무당처럼 지휘봉을 흔들어 오케스트라가 따라오지도 못하게 만드는 푸르트뱅글러와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지휘자다.

슈만은 교향곡 4번을 아내 클라라에게 바쳤다. 그런 이유로 어떤 평론가는 2악장을 ‘고뇌하는 시인’ 슈만과 ‘구원의 여인’ 클라라의 대화라거나, 3악장은 클라라를 얻기 위해 거쳐야했던 투쟁의 시간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고 보기에는 곡이 너무나 전투적이다. 3악장 스케르초는 듣는 사람 다리에 힘이 들어 갈 정도로 근육질이고, 4악장은 산꼭대기에서 굴린 바위가 골짜기로 떨어져 내려 와장창 처박히는 것처럼 파괴적이다. 장인과 소송까지 불사하며 어렵게 사랑을 차지한 사내의 고통과 환희를 그렸다고는 해도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푸르트뱅글러는 자신의 장기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관현악의 불덩어리로 작품을 활용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뜨겁게 불을 때서 나를 뒷걸음질 치도록 했을 리 없다. 그의 연주 중에는 바이로이트의 베토벤 ‘합창’이 전설로 꼽히지만 나는 슈만 4번을 더 자주 듣는다. ‘라이브러리 500’의 흔들리지 않는 한 장이다.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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