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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떨어졌네 … 생필품 주문하고 결제까지 하는 냉장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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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L짜리 생수를 12통씩 주문해 마시는 이동권(36)씨. 그는 하루종일 시장 상황을 챙기고 채권을 거래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증권맨이다. 출근하려던 순간 물이 떨어진 걸 알고 소셜커머스로 주문해놔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집을 나서자마자 일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물을 주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된다. 퇴근한 뒤 습관처럼 냉장고를 열지만 당장 마실 물이 없다. 이 씨가 자주 겪는 상황은 상당수 직장인도 한 번쯤 경험해 봄 직한 일. 하지만 앞으로는 이 씨의 냉장고가 먼저 마실 물이 떨어진 걸 파악해 물을 주문해 줄 날이 멀지 않았다.

금융과 융합 나서는 IoT 가전 #“센서로 남은 식재료 파악해 쇼핑” #LG전자, 신한과 시스템 개발키로 #삼성 가전은 이미 금융정보서비스 #이통사들도 AI스피커 사업화 박차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냉장고·세탁기·자동차 등 주변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바람 속으로 금융이 파고들고 있다. 스마트 기기로 가전제품을 원격 제어하는 것을 넘어 필요한 상품을 알아서 추천해 구매를 돕는 ‘IoT 결제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혁명의 근거지는 의외로 전통 시중은행과 신용카드사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는 고객의 금고이자 다년간의 구매 데이터를 확보한 금융권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 확장에 나서는 형국이다.

9일 LG전자는 신한금융그룹과 손잡고 IoT 금융 서비스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IoT 가전 기술에 강점이 있는 LG전자와 소비자 구매 데이터 분석 기술을 보유한 신한카드가 협업해 지능형 주문·결제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LG전자는 냉장고와 세탁기·청소기 등 가전제품은 물론 커넥티드 카·스마트홈 사업에도 금융을 결합하기 위해 전사적 태스크포스(TF)도 구성했다.

안승권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스마트 냉장고의 센서 기술로 보관 중인 식재료 양을 파악한 뒤 신용카드사가 보유한 고객 구매 데이터를 활용해 자주 이용하는 상품을 추천할 수도 있다”며 “IoT와 금융이 융합하면, 장 보러 가기조차 바쁜 현대인에게 시간을 선물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자업계로는 삼성전자가 금융과 IoT 융합 사업에 한 발 빨리 움직였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 우리은행과 손잡고 패밀리허브 냉장고 문에 달린 터치스크린으로 은행 계좌 잔액과 예금·대출 만기일·환율조회 등을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 고무장갑을 끼고 있거나 기름이 묻은 손 때문에 스마트 기기를 다루기 힘든 주방 환경을 고려해 음성으로 조리법을 검색하고 식재료를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기술도 삼성카드 등과 구현하고 있다.

가전 전문가들은 미래의 인공지능 가전은 새로운 기능을 내려받아 활용하는, 스마트폰과 같은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승훈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가령 세탁기는 ‘고어텍스 소재 전문 세탁 기능’, 에어컨은 ‘황사 청정 기능’ 등 새롭게 개발되는 기능을 애플리케이션처럼 내려받아 쓰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며 “이때 새로운 기능에 대해 지불해야 할 비용은 IoT와 결합한 금융 결제 기능이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사업 확장 욕구가 강한 이동통신회사들도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스피커를 결제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금융권과 적극적으로 협력 중이다.

SK텔레콤은 하나은행·삼성증권과 손잡고 AI 스피커 ‘누구’를 이용한 환율·주식 시세 조회, 펀드 추천 서비스 등을 이미 개발했다. KT도 케이뱅크 고객을 위한 음성 인식 금융 거래 서비스를 개발했고, 연내에는 주식도 음성으로 살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이다.

LG유플러스는 커넥티드카 기술을 활용해 주유소나 주차장, 드라이브스루 매장에서 결제할 때 차량만 통과해도 결제가 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자동차가 곧 신용카드가 되는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지금은 간단한 결제 기능 위주로 IoT와 금융이 융합되고 있지만, 앞으로 신기술로 가장 앞서 성장할 금융권으로는 보험업계가 꼽힌다.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미래에는 자동차가 파악한 운전자 데이터로 자동차 보험료가, 웨어러블 기기가 파악한 신체 정보로 건강보험료가 책정되는 등 보험사 손해율 산정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IT 기술 활용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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