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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 ‘노동이사제’ 요구 … 금융위는 “주주·근로자 역할 구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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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번 정부 들어 발언권이 세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가 노조의 금융회사 경영 참여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노조 추천인사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제’다. 9일 금융노조와 더불어민주당 이학영·이용득 의원 등이 공동주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 토론회는 금융노조 관계자와 진보진영 인사들이 자리를 메웠다. 축사를 한 이용득 의원은 “지금은 옛날 같은 관치금융은 사라지고 기업의 일방적 횡포가 문제”라며 “노동이사제, 주주제안권 등으로 노사가 함께 책임성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건전경영을 만들어보자”고 주장했다. 이미 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는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하승수 변호사) 선임과 이사회 내 모든 위원회에서 지주 회장을 배제하는 정관변경 안건을 주주제안으로 제출했다. 이를 위해 우리사주 등 직원들이 보유한 주식 0.22%를 위임받았다.

진보진영 인사들과 공동 토론회 #ISS, KB금융 노조 추천 인사 반대

안건 통과 여부는 이달 20일 임시주주총회 표결을 통해 결정된다. 박홍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소유구조가 널리 분산돼 있다 보니 대표이사 회장이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며 “(노동이사제 도입 등) 법 개정을 기다릴 수 없어서 현행 법체계 안에서 주주제안권을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측은 노조의 주주제안에 경영권 침해요소가 포함돼있다는 입장이다.

국민은행 노조가 제안한 두 가지 안건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 (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ISS는 사외이사 추천 안건은 “과거 정치 경력 등이 어떤 기여를 할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회장의 위원회 배제는 “주주가치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노조의 적극적인 주주제안권 행사와 관련해선 주주와 노동자, 두 가지 입장 사이의 이해 상충이 문제다. 자칫 노조가 단체교섭에 힘을 싣기 위한 도구로 주주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서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형주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은 “KB금융 노조처럼 우리사주 조합을 활용해 주주제안권을 써서 정당하게 경영에 참여하는 모습은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다만 주주로서의 제안과 단체교섭 대상자로서의 근로자의 역할을 구분해서 신중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한발 더 나아가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자는 주장도 나왔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주 자격이 없는 노동자도 대표를 이사회 멤버로 넣을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의 경영 참여를 주장하는 인사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나왔다. 과연 노조가 얼마나 국민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느냐는 점 때문이다. 정승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는 “사실 노동운동이 이기적이라는 비판도 받고 국민의 신망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노동이사제로는 부족하다”며 “시민운동세력이 공익이사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은 “현실적으로 노조 추천이사는 장기적 회사 발전보다 노동자의 단기 이익에 치중할 가능성이 크다”며 “금융업이 급변기인데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속도감 있는 변신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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