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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투자자·스타트업 비정상회담 … 한국 벤처들 “콘텐트에 강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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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8일 리스본 웹 서밋 2017의 ‘피치’ 무대에 서 한국 스타트업 푸른밤의 김진용 대표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전영선 기자]

8일 리스본 웹 서밋 2017의 ‘피치’ 무대에 서 한국 스타트업 푸른밤의 김진용 대표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전영선 기자]

“그런데 그 방향제(디퓨저)의 가격이 얼마인지는 모르겠군요.”

포르투갈서 열린 웹 서밋 2017 #170개국서 2000여 개 업체 참여 #‘한국 창업가와 만남’ 뜨거운 열기 #투자자 송곳 질문에 진땀 빼기도 #메인 행사로 열린 ‘피치’ 무대엔 #깐깐하게 선발된 스타트업들 올라 #4분 동안 회사 비전 등 열띤 홍보

‘피움 랩스’의 김민채 디자이너는 8일 포르투갈 리스본 ‘웹 서밋 2017’ 중 진행된 ‘한국 창업가와 만남’ 현장에서 투자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이 회사는 스마트폰과 향을 내는 기기(전자 방향제)를 연결해주고, 이후 아로마 오일을 제공하는 ‘맞춤형 향 사업’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창업해 첫 제품 출시를 눈앞에 둔 피움 랩스의 가장 큰 고민이 투자자의 눈에 바로 포착된 것이다. 이 업체는 지난 7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에 초기 모델을 개당 119~299달러(13만~33만원)에 선보이고 투자를 받았다. 목표액(5만 달러)은 가뿐히 달성했다. 하지만 서비스의 주요 대상으로 삼은 ‘젊은 독신 여성’이 선뜻 지출하기엔 비싸다는 문제점이 남았다. 김 디자이너는 “우리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라며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기능을 단순화한 모델을 추가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커피 캡슐 사업 모델처럼 아로마 배달에서 수익을 내는 구조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큰 기술 콘퍼런스인 웹 서밋에서 유럽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웹 서밋에 한국 업체가 대규모로 등장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그동안은 매년 1~2개의 업체만이 참여했지만, 올해는 한국관을 설치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모집한 스타트업 10개사에 개별적으로 참가한 업체 30곳 등 총 40여 개사가 부스를 만들었다. 사업을 막 굴리기 시작하는 피움 랩스와 같은 신진 스타트업이 시장을 확장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 파트너와 멘토를 만나는 장이 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전시관의 음악 서비스업체 디오션 부스.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전시관의 음악 서비스업체 디오션 부스.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유럽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느끼는 한국 스타트업은 올해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행사 기간 내내 분투했다.

170개국, 2000여개 업체가 참여하고 있어, 어지간한 서비스는 묻히기에 십상이다. 웹 서밋 사무국에 따르면 가장 많은 스타트업을 보낸 나라는 오스트리아다. 다음으로 벨기에·브라질·캐나다·덴마크·프랑스·독일·인도·아일랜드·이스라엘 순이다. 자국 기술 콘퍼런스가 많은 미국은 20위를 기록했다. 그 속에서 한국 스타트업은 특히 한류나 음악 등 콘텐트 기반의 서비스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한국 창업가와 만남’은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KOTRA 스페인 마드리드 무역관이 기획한 비공식 행사로, 유럽 투자자와 한국 창업자가 대면할 기회 겸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대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만남에는 스페인 국영 통신사 텔레포니카의 액셀러레이터인 ‘와이라’, 포르투갈의 ‘스트라티아 인버스트먼트’ 관계자 등 20여 명이 참여했다. 당장은 투자 등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유럽 유력자들과 대화할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게 주최 측 설명이다. ‘한국 창업자와의 만남’에 참여한 한국·일본·베트남 합작 음악 스타트업 ‘디오션’의 마케팅 본부장 인디라 켈디베코바는 “프레젠테이션을 한 뒤 7~8여곳에서 우리 서비스에 관해 관심을 보여왔다”며 “나쁘지는 않은 시작”이라고 말했다.

‘한국 창업가와 만남’에서 진행된 매장 음악 큐레이션 서비스 원트리즈뮤직의 발표.

‘한국 창업가와 만남’에서 진행된 매장 음악 큐레이션 서비스 원트리즈뮤직의 발표.

웹 서밋의 꽃인 ‘피치’(PITCH)에 진출한 한국 스타트업도 있었다. 웹 서밋은 매년 전시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피치 무대 세 곳을 설치한다. 하루에 7개 그룹씩 무대에 올라 자웅을 겨룬다. 참여사는 4분 안에 회사의 비전과 제품·서비스를 요령껏 설명해야 한다. 유력 투자자가 코앞에서 쏟아내는 날카로운 질문도 방어해야 한다. 일종의 서바이벌 대회다. 그러다 보니 매번 길바닥 ‘혈투’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이 흐른다.

피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웹 서밋 사무국에 신청 서류를 내고 사전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올해는 150여개 기업만이 피칭 기회를 잡았다. 올해 이를 통과한 한국 스타트업은 시간제 노동자의 근무기록과 급여를 계산해주는 ‘알밤’ 서비스를 내놓은 푸른밤이다. 8일 오후 ‘피치 1’ 그룹에 속해 무대에 오른 김진용 푸른밤 대표는 알밤 크기의 비콘(beacon)을 매장에 붙이는 방식으로 근무자를 관리하는 기술과 회사 수익구조를 진땀을 흘리면서 설명했다. 웹 서밋은 그룹별로 가장 성적이 좋은 스타트업을 뽑아 예선을 치르고 행사 마지막 날인 9일 우승자를 공개한다.

테크크런치(매년 9월)를 비롯해 유럽 기술 축제인 슬러시(매년 11월), 대형 테크 기업이 주인공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매년 2월) 등 기술 콘퍼런스가 늘어나면서 스타트업 진출을 지원하는 각 기관도 고민이 늘었다. 행사는 많은데 참여 효과를 실감하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게다가 예산은 한정적이다.

올해 한국관을 운영한 한국콘텐츠진흥원 김상현 콘텐츠 코리아랩 본부장은 “콘퍼런스마다 특징이 다르고 특정 시기에 특정 행사가 주목받는 사이클도 있어 실무적인 고민이 많다”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웹 서밋(Web Summit)

2009년 아일랜드에서 시작한 세계 최대 규모의 기술 콘퍼런스. 투자자와 스타트업이 교류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해부터 개최지를 더블린에서 리스본으로 옮겼다. 170국에서 약 6만명이 리스본 메오 아레나 행사장을 찾았다. 전시 스타트업 2000여개, 투자자 1400여명, 언론매체 2600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긱(Geeks·괴짜)을 위한 다보스 포럼(세계경제포럼)’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리스본(포르투갈)=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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