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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돌아온 나훈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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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나훈아의 히트곡 ‘잡초’ 첫 소절이다. 한때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뭔가 속에서 울컥 올라오곤 했다. 연예계라는 거친 바다를 헤쳐온 가수 나훈아로부터 기운을 받았다고나 할까. ‘이것저것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의 심정도 그랬을 것이다. 대중의 아린 구석을 아우르는 노래의 힘이다.

2년 전이다. 경주에 문을 연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것처럼 나훈아의 데뷔곡은 1966년 발표된 ‘천리길’이 아니었다. 해당 노래가 수록된 음반은 69년 출시됐고, 그보다 1년 먼저 나온 ‘파도 넘어 천리길’ ‘내 사랑’이 다른 가수의 노래와 함께 각각 다른 앨범에 실려 있었다. 신인이라 독집 음반을 낼 형편이 못 됐다. 대중음악평론가 고종석씨는 “나훈아가 각인되기 시작한 건 68년 ‘사랑은 눈물의 씨앗’부터였다”고 했다.

요즘 돌아온 나훈아가 화제다. 지난 주말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11년 만의 복귀 무대를 펼쳤다. 사흘 동안 1만여 관객이 몰렸다. ‘명불허전’ ‘돌아온 가황(歌皇)’ 등의 상찬이 잇따랐다. 그를 기다려 온 중장년 팬들의 오랜 갈증을 풀어줬다는 얘기다. ‘표정 하나하나에 (관객들) 함성. 선거 유세하는 줄(알았음)’이라는 젊은 네티즌의 후기도 회자됐다.

이번 공연은 ‘나훈아의, 나훈아에 의한, 나훈아를 위한’ 자리였다. 별다른 홍보 없이 티켓 파워로만 승부했다. ‘트로트 황제’로서의 자존심에서였다. 또한 노련한 선택이었다. “9년 전 분노에 찬 기자회견 후에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괴담에 대한 멋진 반격”(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같았다. 2008년 1월 26일 1면 중앙일보 제목도 ‘소문 공화국-나훈아 회견으로 본 괴담의 사회학’이었다.

나훈아의 진격은 향후 부산·대구 콘서트로 이어질 전망이다. 내년에는 공식 데뷔 50주년을 맞는다. ‘드림 어게인(Dream Again)’을 내세운 이번 공연만큼이나 ‘가요계 전설’로서의 부단한 변모를 기대해본다. 지난 7월 발표한 같은 제목의 새 앨범에 대한 평가가 곱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100세 시대, 올해 칠순에 접어든 그의 카리스마에 지갑을 열 꽃할배가 한둘이 아닐 테니까.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