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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사드 풀리자 … 관광업계, 벌써 유커 유치 호들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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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영주 산업부 기자

김영주 산업부 기자

지난 7일 퇴근 시간을 앞두고 한국관광공사 홍보실이 바빠졌다. 한한령(限韓令)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중국단체 여행객(游客·유커) 3000명이 다음달 말 방한한다는 소식이 한 매체를 통해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직 중국 쪽 반응은 없다’고 하던 관광공사는 뜻밖의 희소식에 곧바로 확인에 나섰다.

중국 단체여행객 3000명 방한설 #30분 만에 해프닝으로 확인돼 #인센티브 노리는 중국 현지 브로커 #무리한 요구하며 여행사 좌지우지 #잘못된 관행 고쳐 재도약 준비해야

그러나 30분 만에 해프닝으로 끝났다. 중국지사를 통해 확인해보니, 당사자인 중국 측 기업으로부터 “그런 계획이 없다”는 회신이 왔다.

업계가 추정하는 풍문의 생산·유통과정은 이렇다. 보통 대규모 인센티브(기업이 포상 목적으로 직원에게 제공하는 여행)는 중간에 에이전시가 끼게 마련이다. 사실상 브로커에 가깝다. 브로커는 수천명 규모라는 머릿수를 무기로 각국에 추파를 던진다. ‘3000명 모셔 드리면 뭘 해줄 수 있나?’라는 식이다. 제안을 받은 여행사와 호텔 등 여행업계와 지자체는 단체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선물 보따리를 준비한다.

여러 개의 카드를 쥔 브로커는 막판까지 저울질해가며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으로 행선지를 택한다. 실제 한국의 경우 지자체가 단체 여행객 1인당 1만~2만원의 유치 인센티브를 여행사에 지급하고 있다.

브로커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봄 무산된 중국 A기업의 방한 조건에는 ‘만찬에 VIP(대통령)를 초청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지난해 화제를 몰고 온 수천 명 규모의 ‘치맥 유커’도 알고 보니 속 빈 강정이었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5성급 호텔 관계자 A씨는 “여행사로부터 1박에 5만원으로 해주면 숙박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이 단체는 ‘3만~4만 원대 호텔’에서 숙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여행 시장은 중국인에게 여전히 매력적이다. 면세점 등 쇼핑 부문에서 분명한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보다 신중하다. 양국이 ‘한·중 관계 개선’을 발표한 지난달 31일 중국으로 날아가 1주일 동안 현지 여행사·항공사를 만나고 온 뉴화청국제여행사 우성덕 대표는 “그들도 우리처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한국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한령이 내려진 올 3월 이후 중국 관광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0만 명 이상 줄었다. 한국관광공사는 중국 관광객은 연말까지 합쳐 약 400만 명으로, 지난해의 절반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숫자로만 보면 유커가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기 전인 2013년과 같은 수준이다. 여행업계는 유커의 수가 고스란히 빠진 ‘400만명’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군살이 쏙 빠진 현재 상황이 관광업계의 체질개선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다.

때맞춰 업계는 자정 움직임도 보인다. 제주관광협회는 지난 6일 덤핑상품, 무자격 가이드, ‘인두세’ 금지 등 자정안을 내놓았다. 인두세란 유커를 유치하기 위해 중국 현지 여행사에 지불하는 돈으로, 저가덤핑 상품의 원인이 됐다. 한국관광공사도 8일 ‘코리아 럭셔리 트래블 마트’을 열고 한옥호텔, 명인 공연 등 럭셔리 여행 콘텐트 개발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중국 단체 여행객이 다시 온다고 해도 그간의 관행은 오히려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간 우리가 배를 곯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영주 산업부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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