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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스마트폰 뚝 자르니, 테트리스 구조가 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스마트폰 디자인 속 과학

2011년 4월,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디자인 때문이었다. 애플은 자신이 특허를 보유한 둥근 모서리와 격자무늬 아이콘 디자인을 삼성전자가 무단 사용했다고 봤다. 하지만 2011년 1심 판결 때 9억3000만 달러였던 특허 배상금은 2015년 2심 때 3억9900만 달러로 줄어든데 이어 다음 판결에선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과거 애플이 문제 삼은 '둥근 모서리' 디자인은 대다수 최신 폰이 채택하고 있을 정도로 특허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프레임에 구멍 뚫어 무게 줄여…뉴턴 '가속도 법칙' 따른 충격 완화 기술 #각종 부품들 테트리스처럼 빈틈없이 결합해 '얇은 디자인' 구현 #이어폰 단자 없애는 애플…"이어폰 없으면 폰 두께 더 얇아져" #독특한 스마트폰 색상, 셀로판지처럼 필름 여러장 겹쳐 표현

실제로 최근에 나온 스마트폰은 차이점을 명확하게 잡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디자인이 비슷해졌다. 진화 방향도 비슷하다. 제조사 로고를 뒷면으로 돌리고 베젤(테두리)을 최대한 줄여 폰 전면을 디스플레이로 채운다. 여기에 디스플레이 양옆 모서리를 휘는 엣지형 디자인도 대세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디자인 혁신 경쟁 강도가 미약해진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경계를 허물 '접는 스마트폰' 개발은 폰 제조사들의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

중앙일보는 24일 시판 중인 스마트폰을 분해하고 칼로 잘라보며 스마트폰 디자인에 적용된 과학의 원리를 파헤쳤다. 실험 대상은 LG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V30으로 정했다. 이 제품은 6인치 대화면 폰이면서도 158g 무게로 가볍다. 군사 훈련에서 쓸 수 있는 미국 국방성 군사표준규격(MIL-STD 810G)을 획득할 만큼 내구성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마트폰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내부 메탈 프레임의 빈공간에 강도에 지장이 없을 만큼의 구멍을 뚫었다. [중앙일보 영상 캡쳐]

스마트폰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내부 메탈 프레임의 빈공간에 강도에 지장이 없을 만큼의 구멍을 뚫었다. [중앙일보 영상 캡쳐]

우선 V30을 분해하면 폰의 뼈대가 되는 금속 프레임에 여러 개의 구멍이 뚫린 것을 볼 수 있다. 카메라와 이어폰 잭·배터리 등이 위치한 부분을 뚫은 것은 프레임 내구성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무게를 줄일 수 있는 알고리즘에 따라 설계된다. 폰 무게를 줄인 것은 폰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렸을 때 최대한 파손을 줄이기 위해서다. 힘은 질량 곱하기 가속도(F=MA)란 뉴턴의 '가속도의 법칙'에 따라 질량이 작을수록 충격으로 가해지는 힘이 적어지는 원리다.

다른 부품과 테트리스식으로 조합해 스마트폰의 두께를 얇게 하기 위해 배터리를 계단식으로 디자인했다. [중앙일보 영상 캡쳐]

다른 부품과 테트리스식으로 조합해 스마트폰의 두께를 얇게 하기 위해 배터리를 계단식으로 디자인했다. [중앙일보 영상 캡쳐]

폰 허리 부분을 잘라보면 지문인식 모듈과 이어폰 잭·스피커 등 각종 부품이 테트리스 구조로 오밀조밀하게 결합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더욱 얇은 폰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부품과 부품 사이에 빈틈을 두지 않고 짜 맞춘 것이다. 배터리를 계단 모양으로 디자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건식 LG전자 연구원은 "디스플레이를 작동시키는 부품을 배터리 위에 위치하도록 디자인하다 보니 배터리 한쪽을 움푹 들어가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부품과 테트리스식으로 조합해 스마트폰 두께를 얇게 만들기 위해 배터리를 계단식으로 디자인했다.

다른 부품과 테트리스식으로 조합해 스마트폰 두께를 얇게 만들기 위해 배터리를 계단식으로 디자인했다.

절단면을 전체적으로 보면 금속 프레임과 양쪽 모서리 금속 테두리가 알파벳 'H'자 형태를 그리고 있다. 건축용 철골에 쓰이는 H빔의 디자인을 본뜬 것이다. H빔은 가벼우면서도 'L'자나 'C'자형 빔보다 휘어짐에 강해 산업용 철강 자재로 많이 쓰인다. 폰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디자인을 건축 자재에서 찾은 것이다.

점점 대화면을 원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전면 하단 홈버튼이나 회사 로고가 뒤로 빠지고, 이 자리마저 디스플레이가 채우게 됐다. 이런 풀스크린 디자인을 가능하게 만든 건 '베젤 밴딩' 기술이다. 기존에는 전자 신호를 영상 신호로 바꿔주는 디스플레이 구동부가 홈버튼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대화면을 위해 홈버튼을 포기하면서 같은 자리에 있던 구동부를 디스플레이 뒷면으로 접어 넣는 이 기술을 적용하게 된 것이다.

스마트폰 전면에 꽉찬 화면을 구현하기 위해 전자 신호를 영상 신호로 바꿔주는 디스플레이 구동부를 디스플레이 뒷면으로 접어 넣었다. [중앙일보 영상 캡쳐]

스마트폰 전면에 꽉찬 화면을 구현하기 위해 전자 신호를 영상 신호로 바꿔주는 디스플레이 구동부를 디스플레이 뒷면으로 접어 넣었다. [중앙일보 영상 캡쳐]

디스플레이 양쪽 모서리가 휜 엣지형 디자인에도 최적의 곡률(디스플레이가 휘어진 정도)을 찾는 제조사의 전략이 숨어 있다. 폰 전면에 제조사 로고가 없어져도 곡률만으로 어느 회사 제품인지를 찾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 곡률은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을 때 그립감은 높이고, 모서리 부문 영상이 일그러지는 현상은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지점에서 설정된다.

애플과 구글·화웨이 등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신제품에서 이어폰 단자를 없애는 것도 디자인과 연관이 있다. 류형곤 LG전자 연구원은 "눈에 보이는 이어폰 단자는 3.5㎜에 불과하지만, 폰 내부에는 5㎜ 두께의 이어폰 제어 모듈이 들어 있다"며 "이어폰 단자를 없애면 스마트폰을 훨씬 얇게 만들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의 색상을 표현하는 단어도 독특하다. 모로칸 블루·라벤더 바이올렛 등 색을 발견하게 된 동기를 앞쪽에, 소비자가 구별할 수 있는 색깔 이름을 뒷쪽에 배치해 작명한다. 가령 '모로칸 블루'는 모로코에서 발견한 파란색이란 의미다. 이런 색상은 여러 장의 셀로판지를 붙여 새로운 느낌의 색상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스마트폰 뒷면을 덮는 강화유리 위에 금속 느낌을 살리는 '렌티큘러 필름'과 특유의 색상을 구현하는 여러 장의 필름을 붙여 제작한다.

내년부터 접거나 둘둘 말아 사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디자인의 스마트폰이 이른 시일 안에 대체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형욱 IT 칼럼니스트는 "접을 수 있거나 두루마리형 스마트폰이 개발되려면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중앙처리장치(AP)·배터리 등 부품도 접거나 휘는 제품이 동시에 개발돼야 한다"며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스마트폰 디자인이 나오려면 여러 단계의 기술 혁신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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