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정치적으로 '의뢰' 받는 적폐 수사 방식은 문제 많다

중앙일보

입력 2017.11.08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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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의 ‘적폐 수사’ 방식을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검찰은 청와대·국정원·행정부처가 내부적으로 자체 조사한 특정 사안을 ‘의뢰’라는 형식으로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하고 있다. 청와대의 세월호 상황 보고서, 국정원의 댓글 조작, 연예인 블랙리스트,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의혹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서울중앙지검에만 ‘적폐 청산’이란 이름의 굵직한 수사 의뢰가 16건에 달하고, 중앙지검 전체 검사 중 40%가 적폐 수사에 매달려 있다. 수사 방식과 검사 동원 규모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현 정부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지시로 각 부처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용 중이다. 국정원의 경우 13건을 수사의뢰한 상태다. 법적으로 수사의뢰는 범죄 혐의를 믿을 만한 이유가 있으니 수사를 해달라는 ‘부탁’에 불과하다. 반드시 처리해야 할 강제성이 약하다. 그러나 정권 차원에서 정치적 의지를 담은 경우는 그 무게가 다르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 내부에선 정권의 수사 지휘를 받아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는 자조가 나온다고 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천명한 현 정권이 자기부정에 빠지고 있다.

수사의 공정성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행정부의 적폐청산 TF는 주로 진보 성향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캐비닛이나 컴퓨터를 뒤져 기밀을 열람한 뒤 의뢰할 사안을 ‘선별’하고 있다. 때론 확인되지 않은 의혹까지 부풀리며 언론에 흘린 뒤 검찰에 던져 버린다. 언제부터 대한민국 검찰이 민간인의 하명을 받드는 수사기관이 됐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고용노동부·복지부 등도 줄줄이 적폐 수사를 의뢰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표적 수사’ ‘정치 수사’ 논란을 피할 수 없다. 더 이상의 수사 의뢰는 검찰 스스로 사양한다고 밝힐 필요가 있다. 그게 정권과 검찰이 다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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