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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조기 위암 얕보지 마세요…내시경 시술 고집하다 암 키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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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박준철 교수의 건강 비타민

한모(72·대구시)씨는 2015년 위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4㎝ 크기의 암을 발견했다. 암은 위와 식도가 맞붙은 곳에 있었다. 병원에서는 위를 다 잘라내는 수술(전절제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씨는 내시경으로 위암을 제거하는 시술(ESD·내시경 점막하 박리술)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걸 원했다.

위암 내시경 시술 편리하지만 #전이 없고 모양 분명해야 맞아 #암의 형태 불규칙하면 어려워 #시술 후 10년간 추적 검사해야

조기 위암에는 내시경으로 암 덩어리와 주변 조직을 떼는 ESD가 주로 쓰인다. 내시경 끝에 칼이 달려 있는데, 이걸 이용해 암 덩어리를 도려낸다. 위벽은 크게 점막·점막하층·근육층·장막층으로 구성된다. 위암이 점막·점막하층에만 있으면 조기 위암이라고 한다. 근육층 등으로 퍼지면 진행성 위암이다.

한 직장인이 위 내시경 검사를 받고 있다. 국가건강검진에 따라 40세가 넘으면 2년마다 무료로 위 내시경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사진 신촌세브란스병원]

한 직장인이 위 내시경 검사를 받고 있다. 국가건강검진에 따라 40세가 넘으면 2년마다 무료로 위 내시경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사진 신촌세브란스병원]

조기 위암이면 무조건 ESD 시술이 가능할까. 암은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조기 위암은 내시경으로 떼어낼 수 있는 게 사실이다. 환자들도 그렇게 이해한다. 그렇다고 모든 조기 위암을 ESD로 치료할 수는 없다.

ESD 시술 받은 조기 위암의 유형

ESD 시술 받은 조기 위암의 유형

ESD 시술이 가능하려면 암이 림프절로 전이되지 않아야 한다. 림프절은 지하철 노선처럼 우리 몸에 퍼져 있는 면역기관을 말한다. 또 위암의 형태가 분화암인지 여부가 중요하다. 분화암은 정상 세포 모양이 많이 남아 있으며, 암 조직의 모양이 분명하다.

반면에 미분화암은 암의 모양이 불규칙해 어느 부위까지 암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정 지점까지가 암이라고 생각해 제거했는데 숨어 있는 부분이 남을 가능성이 커 ESD를 하기 어렵다. 조기 위암에 무리하게 ESD를 하면 림프절·원격 전이가 드물게 나타나기도 한다. 적절한 암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

한씨는 다행히 ESD가 가능한 조기 위암이었다. 초음파 내시경 검사와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 조직검사를 했더니 ‘림프절 전이 없이 점막에 국한된 4㎝의 분화암’이었다. ESD 시술을 받았고 6개월마다 위내시경과 복부 CT 검사를 받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조기 위암 중 미분화암은 수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ESD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미분화암에 적용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는 재발·전이 때문이다. ESD 시술 후 위암 재발률이 수술보다 높고, 림프절 전이율이 같은 크기 분화암에 비해 높다.

일부 미분화암에 ESD 시도

미분화 조기 위암의 ESD와 수술 비교

미분화 조기 위암의 ESD와 수술 비교

최근에는 2㎝ 이하 미분화암에 ESD를 시도한다. 미분화암 중 발병 초기에 성격이 얌전한 반지세포암(SRC)에 ESD를 적용할 수 있다. 반면에 성질이 고약한 나쁜 암(저분화 선암)은 부위가 작아도 수술이 바람직하다. 지난해 연세암병원에서 ESD 시술을 받은 517명 중 약 10%인 53명이 미분화암이었다.

ESD 미분화암 환자의 치료 결과는 어떨까. 필자는 지난달 국제학술지(Surgical endoscopy)에 미분화 조기 위암 환자의 ESD 치료 효과를 발표했다. 연세암병원 위암센터를 찾은 미분화 조기 위암 환자 493명을 ESD(111명)와 수술(382명)로 나눠 2006~2012년 추적·관찰했다. 추적 기간은 47~60개월이다. 암 크기는 ESD그룹 평균 9.7㎜, 수술 13.2㎜였다. 입원 기간은 ESD가 평균 5.2일로 수술(8일)보다 짧았다. 합병증 발생률은 ESD(9%)가 수술(3.9%)보다 높았지만 출혈·미세천공 등으로 단순 합병증이었다. 수술은 폐렴·감염, 수술 후 장폐색 등 다양했다. 생존율은 차이가 없었다. 재발률에서는 차이가 났다. 위암 재발률은 ESD에서 11.7%(13명)로 수술그룹(0.8%·3명)보다 높았다. 암을 잘라낸 부위에서 재발하는 국소 재발률은 ESD에서 10명(9%), 수술그룹에서 1명(0.3%)이었다.

미분화암 ESD 건보 안 돼

미분화암의 ESD 시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본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건강보험이 되는 ESD 비용은 70만원 선이다. 비보험인 미분화암은 120만원 정도다.

미분화암에 ESD 시술을 검토할 때는 몇 가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림프절 전이가 있으면 위암만 떼어내는 ESD가 아닌 림프절까지 떼어내는 위절제 수술을 택해야 한다.

둘째, 미분화암은 경계가 명확히 보이지 않아 ESD 시술 후에 암이 남을 가능성이 있다. 잘라낼 범위를 정할 때 시술자의 경험이 중요하다. 암 수술·시술에서 어느 정도까지 잘라내야 하는지는 오래된 숙제다. 암이 있는 부위를 중심으로 적게 잘라내면 수술 뒤 삶의 질, 입원 기간, 비용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암 일부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많이 잘라내면 암을 확실히 제거하지만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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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ESD 시술 후 2년간 6개월마다 검진을 받는 게 좋다. 그 후에도 10년까지 연 1회 위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일부 환자는 5년이 지나면 ‘완치’라고 생각하고 정기검진을 빠뜨린다. 정모(70·충북 충주시)씨는 2010년 위내시경 검사에서 암이 발견돼 ESD로 제거했다. 매년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별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정씨는 5년이 지난 뒤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초 속이 쓰려 위내시경을 받았는데 위암이 림프절까지 전이된 것을 발견했다. 위 제거 수술을 받았다.

연세암병원 위암센터 연구팀이 지난해 국제학술지(Gastrointestinal endoscop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매년 ESD로 조기 위암을 잘라낸 환자 중 3.3%에서 위암이 발견된다. 이 비율은 시술 후 5년이 지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ESD나 수술을 받은 뒤에는 꾸준히 정기검진을 받아야 암이 재발하더라도 빨리 발견할 수 있고 치료도 수월하다.

결론은 조기 위암 환자의 대부분은 ESD로 시술하는 게 좋다. 다만 암 덩어리가 불규칙하게 형성된 미분화암일 경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런 암은 원칙적으로 복강경 또는 개복수술을 하는 게 맞다. 다만 미분화암 중에서 덩어리가 작거나 상대적으로 초기 성격이 순한 형태면 ESD를 시도해도 좋다.

금연·금주 필수 … 등산·수영은 한 달 뒤에

조기 위암 환자가 내시경 점막하박리술(ESD)을 받은 후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시술 후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해 과거 생활습관으로 돌아가기 쉽다. 조기 위암도 언제든지 재발할 우려가 높다. 금연·금주는 필수다. 맵거나 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햄·소시지 등 가공육류는 되도록 먹지 않는다. 퇴원 직후 산책이나 맨손체조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하면 좋다. 등산·수영·헬스 등 격렬한 운동은 한 달 지나서 하는 게 좋다.

◆박준철 교수

연세대 의대 졸업, 연세대 의대 교수, 대한소화기암학회 위식도항암연구회 간사,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내시경기기·스텐트 연구회 학술위원, 소화기인터벤션의학회 학술위원

박준철 연세암병원 위암센터 교수·소화기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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