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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드러난 조세회피처 X파일...한국인 232명 포함

중앙일보

입력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대규모 조세 회피처 자료를 공개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월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 등 각국의 정상 및 유력 정치인이 대거 연루됐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한국인 232명이 여기에 포함됐으며, 한국가스공사와 효성 등이 조세 회피처에서 편법 거래를 한 의혹이 있는 거로 나타났다.

ICIJ, 버뮤다 로펌 자료 1340건 공개 #엘리자베스 여왕, 월버 로스 미 상무 장관 등 유력 정치인 포함 #나이키, 애플도 세금 회피 의혹 #한국 가스공사, 효성 그룹도 연루

국제탐사언론인보도협회 홈페이지 캡쳐

국제탐사언론인보도협회 홈페이지 캡쳐

ICIJ는 5일(현지시각) 조세 회피처로 유명한 영국령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Appleby)’의 1950∼2016년 기록을 담은 내부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내용을 공개했다. 이번에 유출된 자료는 파일 용량이 1.4테라바이트(TB), 문서 1340만건 규모다. 지난해 4월 파나마 페이퍼스를 입수했던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이 이번에도 자료를 입수해 ICIJ와 공동으로 분석했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Paradise Papers)’로 명명된 ICIJ의 이번 프로젝트에는 미국 뉴욕타임스(NYT), 영국 가디언, BBC방송 등 세계 67개국 언론사 96개사 소속 언론인 382명이 참여했으며 한국에서는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참여했다.

애플비는 버뮤다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1898년에 설립된 법률회사다. 버뮤다에 있는 본사 이외에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케이맨제도, 세이셸 등 세계 주요 조세 회피처 11곳에 지사를 두고 각국 부호와 다국적 거대기업 등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 등을 통한 조세 회피ㆍ재산은닉 등을 지원해왔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연합뉴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연합뉴스]

자료에는 유명 정치인과 기업들이 대거 등장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사유 재산 1000만 파운드(약 145억원)를 역외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왕의 재산을 관리하는 랭커스터 공국(Duchy of Lancaster)은 이를 조세 회피처인 케이맨제도와 버뮤다의 기금에 투자하고, 일부는 빈곤층을 착취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영국 전자제품ㆍ생활용품 체인 브라이트하우스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케이맨 제도에 설립한 ‘WL 로스 그룹’을 통해 조세 회피처인 마셜제도에 본사를 둔 해운회사 ‘내비게이터’를 인수했다. 로스는 이 회사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 운영하는 기업에 투자해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엘리엇 매니지먼트 설립자 폴 싱어,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 헤지펀드 투자자 로버트 머서 등도 애플비 고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러시아 사업가 유리 밀너가 트럼프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의 부동산 업체에 투자한 사실도 확인됐다.

다국적 기업인 나이키나 애플 역시 조세 회피처를 통해 적극적으로 탈세에 가담했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러시아 국영 금융기관들로부터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타파는 6개월여간 유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문서 내부에 기재된 거주지 주소, 여권번호, 국적 등을 통해 한국인 232명이 포함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들 중 조세회피처 설립 서류에 한국 주소를 기재한 한국인은 197명이었고, 한국인이 조세회피처에 세운 법인은 90곳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코스닥 상장기업 등 중견업체부터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과 대기업 등도 포함됐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현대상사는 2006년 버뮤다에 ‘현대 예멘 LNG’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이 회사에 자사가 보유한 예멘 LNG 지분 5.88%를 모두 넘겼다. 이후 현대상사는 이 페이퍼컴퍼니의 지분 48%를 한국가스공사에 넘기는 거래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 한국가스공사 측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자는 것은 현대상사측의 제안이었다”라며 “ 세금을 모두 납부할 경우 이는 자동적으로 요금에 반영돼 소비자의 부담으로 전가되기 때문에 (국내 법인 설립은) 적절하지 않은 거로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뉴스타파는 효성그룹이 지난 2006년 케이맨제도에 설립했다가 2015년 돌연 청산한 페이퍼컴퍼니 ‘효성 파워 홀딩스’ 관련 거래 내역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ICIJ는 지난 2013년 처음 조세회피처 문건을 공개했다. 당시 뉴스타파는 전재국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아들 김선용씨,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고(故) 이수영 OCI 전 회장,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 연극인 윤석화씨 등이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세운 사실을 보도했다. 국세청은 이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다. 지난해에는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스’가 공개됐다. 한국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 씨를 비롯해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의 자녀 영배ㆍ미숙 씨 등의 이름이 올랐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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