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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 핵 폭탄이 내 머리 위로 날아오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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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 북한이 발사한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 화성-12형.                [중앙포토]

지난 8월 29일 북한이 발사한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 화성-12형. [중앙포토]

북한의 김정은은 과연 우리 머리 위로 핵폭탄을 날려 보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없다. 워낙 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은 이 문제에 초연한 듯 보인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체념에 가깝다. 100kt급 핵폭탄이 서울에 떨어지면 일시에 500만명이 죽는다고 하니, 상상 자체가 안 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서소문사진관] #핵전쟁시 지하철역은 안전한 대피소인가? #북한의 핵 공격시 3~6분 안에 대피해야 #자신의 위치와 가까운 대피소 확인 필요 #지하철역사는 대부분 민방위대피소로 지정 #핵전쟁을 대비한 물품과 시설은 전혀 없어

정부도 핵전쟁에 대비한 훈련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지 않는다. 전쟁은 어떻게든 막아야 할 일이지, 시민들이 대규모로 대피훈련을 하는 모습은 외국 관광객 발길만 돌리게 할 뿐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에 하나 핵폭탄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의식적으로 피해왔으나, 직접 대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전쟁이 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실제상황'이 발생하면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북한이 평양에서 동해 쪽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이다. 방향만 돌리면 언제든 우리를 향해 날아올 수 있다.

위 그림을 유의해서 보시기 바란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행정안전부가 제작해 무료로 배포한 '안전디딤돌'이라는 포털 앱이다. 이것을 이용하면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민방공대피소를 검색할 수 있다.
기자가 근무하는 중앙일보 편집국에서 검색하니 '지하철 2호선 시청역'이 맨 위에 뜬다. 유사시에 달려가야 할 곳이 시청역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중앙일보 주변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경우도 비슷할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징후를 보이거나 실제로 발사한 정황을 포착하면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에서 공습경보 사이렌을 울린다. 편집국에는 뉴스 채널이 24시간 방송되기 때문에 경보가 울리는 순간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경우 북한 미사일이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6분이다. 휴전선 부근에서 쏘면 3분, 중국 접경지역에서 쏘면 6분이다. 핵폭탄 발사와 동시에 경보가 울렸다면 3분 이내에 대피해야 일단 안전하다. 기자는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가 2호선 시청역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그곳까지 어떻게 가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해 봤다.

기자가 근무하는 중앙일보 사옥 8층에서 1층까지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했다. 145계단이다. 회사 현관에서 지하철역 9번 출구까지는 180걸음, 지상에서 지하철역 승강장까지는 다시 139계단이다. 이 거리를 달려서 가는데 3분 14초가 걸렸다. 실제상황에서 더 빨리 움직인다면, 경보 즉시 출발하면 휴전선 부근에서 발사한 미사일보다 빨리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로 확인됐다.

위 동영상은 중앙일보 8층 편집국 기자의 자리에서 2호선 시청역 승강장까지 뛰어가면서 직접 촬영한 것이다. 스톱워치를 겸했다. 1층까지 도착하는데 1분 15초가 걸렸는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면 이렇게 빨리 내려오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동시에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라. 빌딩에서 생활한다면 비상계단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 두어야 한다.

실험을 한 시간은 오후 네 시경이었는데 거리에 행인이 별로 없었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달린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9번 출구에서 상가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틀면 계단이 좁고 가팔라진다. 공습 사이렌이 거리에 울려 퍼지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이 계단에 몰려들면 대형 압사 사고가 우려된다.

지하 1층의 대합실, 2층의 개찰구를 거쳐 3층의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 스마트폰의 동영상은 3분 10초를 지나고 있었다. 북한에서 날아온 핵폭탄이 용산의 주한미군 지휘부를 타격했다 하더라도 일단 즉사는 면한 셈이다.

서울에는 민방위 기본법에 의해 257개 지하철역사가 대피소로 지정돼 있다. 수용인원은 2,376,797명이다. 3.3제곱미터당 4명으로 계산한 수치다. 서울 지하철은 시민의 약 25%를 수용할 수 있는 민방공대피소인 셈이다.

그러나 지하철역이 핵 공격 시 어떤 수준의 안전을 보장하는지 확인해 보자. 과연 공습경보를 듣자마자 달려온 나의 생명을 지켜줄까. 서울지하철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 모습이다. 매일 출퇴근할 때 드나드는 이곳이 중앙일보에서 가장 가까운 민방공대피소 입구다.

상가까지 내려가 바깥을 올려다본 모습이다. 외부에 개방돼 있고, 오른쪽 계단 입구의 차단장치도 철창형 셔터라 외부 공기가 유입된다. 지하 3층 승강장까지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는 시설은 없다. 이것은 핵폭탄이 터졌을 때 방사능 낙진이 유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낙진을 피하려면 출구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 지하철 환기 방식도 외부 공기 유입식이기 때문에 낙진을 막자면 환기를 중단해야 한다.

지하로 뛰어 내려가면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된 곳이다. 경사가 가파르고 폭은 서너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다. 공습경보 실제상황에서 주변 시민들이 한꺼번에 달려내려 갈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서울지하철 시청역에서는 1호선과 2호선이 만난다. 좌측이 1호선, 우측이 2호선이다. 2호선 승강장은 녹색 부분인데 지하 3층에 19.89m 깊이다. 좌측의 청색 부분이 1호선 승강장인데 11.15m 깊이다.

핵 전문가에 의하면 핵폭발 시 원점 주변은 지하까지 붕괴하지만 3km 이상 떨어지면 지하는 안전하다고 한다. 북한이 서울 용산의 주한미군 지휘부를 타격한다고 가정하면 용산에서 서소문까지는 약 5km이므로 지하철 승강장에서는 핵폭발의 최초 충격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을수록 안전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호선 승강장이다. 3분 이내에 이곳에 도착했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평소 출퇴근 시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이곳이 안전한 핵전쟁 대피소일까? 승강장은 내부 순환선 양방향 승객들이 같이 전철을 타고 내리는 공간이다. 폭은 12걸음(약 8m), 길이는 열차 10량 길이와 같은 약 195m다. 제법 넓은 것 같지만, 계단, 기둥 등 구조물과 자판기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출퇴근 시간에는 붐비는 곳이다.

실제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을 때 이 장소가 어떤 모습일까? 달리던 전철에서 쏟아져 나온 승객들까지 이곳으로 오면 발 디딜 틈이나 있을까?

비상시를 대비한 물품은 무엇이 있을까. 구호 용품 보관함이 먼저 눈에 띈다. 이것은 전쟁에 대비한 것이 아니라,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화재에 대비해 비치한 것이다. 보관함에는 화재용 긴급대피 마스크가 26개, 면수건 1박스, 생수 2병이 들어있다. 마스크는 모델명 SCA119F의 방독면으로 개당 취득액은 38,406원이다.

이 방독면의 용도는 '화재용'이라고 명시돼 있는데, 방사성 물질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지는 알 수 없다. 가능하다 해도 구호 용품 함은 승강장에 5개, 2층에 2개가 있을 뿐이다. 방독면은 모두 합쳐야 약 180개뿐이다.

지상 시설이 파괴되면 전기 공급이 끊어질 것이다. 비상 조명등을 손 닿는 곳 여러 군데에 비치했다.

승강장 구석과 중간에 철제 사다리를 몇 개 준비해 두었다. 평소 출퇴근 때는 눈에 잘 띄지 않던 것이다. 비상시에 승강장과 선로를 오르내릴 수 있다. 사람이 승강장에 가득 차 선로로 내려가거나, 달리다가 멈춘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승강장으로 올라올 수 있다. 승강장에 비치된 비상 대비 물품은 이 정도다. 핵전쟁을 대비한 대피소의 모습은 전혀 아니다.

지상에서 핵폭탄이 터지면 방사능 낙진을 피해 지하에서 3주를 버텨야 한다. 승강장에 비상식량은 없다. 먹을 것이라곤 자판기의 스낵류와 음료뿐이다.

사람이 모인 곳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화장실이다. 2호선 시청역의 화장실은 승강장이 아닌 지하 2층의 출구 부근에 두 개가 있다. 둘 다 소규모다. 질서 지키며 사용한다 해도 길게 줄을 서야 하지만, 출구 부근은 방사능 낙진이 흘러들어올 것이다.

결국, 내 근무처와 가장 가까운 대피소인 지하철역은 핵전쟁 시 거의 쓸모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먹을 것도 없고, 대소변을 처리하기도 불가능한 공간에서 며칠을 버틸 것인가? 그것도 수천 명이 모여든 좁은 공간에서.

지하철 역사 곳곳에 와이파이 중계기가 녹색 불빛을 반짝인다. 거대 도시의 신경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핵폭탄이 지상에서 터지면 저 불빛도 꺼질 것이다. 사람들은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먹통 스마트폰을 붙들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에 빠져들 것이다. 유사시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글·사진=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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